항목 ID | GC0690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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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李洞- |
영어공식명칭 | Geumidong Dolmen |
이칭/별칭 | 금이동 지석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 산117-1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방문식 |
조성 시기/일시 | 청동기시대 - 금이동 고인돌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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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0년 - 금이동 고인돌 기전문화재연구원 지표 조사에서 최초 확인 |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 산117-1 |
성격 | 고인돌 |
양식 | 개석식 |
크기(높이,지름) | 90㎝[길이]|1.1m[너비]|35㎝[높이] |
[정의]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개설]
고인돌의 형태에 따른 구분은 탁자식(卓子式), 기반식(基盤式), 개석식(蓋石式), 위석식(圍石式)의 4종류가 있지만, 한반도의 지리적 분포에 따라 편의상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북방식은 한강 이북에서 주로 발견되고, 기반식은 영·호남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어 남방식으로 불린다.
시흥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과 북방식이 모두 발견되고 있다. 그래서 시흥 지역이 북방식의 남방 한계선으로 여겨지는 경향도 있다. 보고서마다 차이는 있지만, 종합하여 보면 시흥 지역은 계수동 9기, 금이동 1기, 정왕동 1기, 조남동 1기, 군자동 1기 등 고인돌이 총 13기가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3기만 정식으로 보고 및 관리되고 있다. 지정 문화재는 경기도기념물 제103호 조남리 고인돌 1기가 있고, 계수동 고인돌과 군자동 고인돌은 비지정 문화유산이다.
고인돌은 인공적인 흔적이 남은 거대 구조물인 경우가 많아서 이에 얽힌 민속과 신앙도 종종 관찰되는 편이다. 특히 계수동 고인돌은 안골 주민들에 의해 해마다 계수동 안골 장승 고사가 거행되기도 하는 등 민속 신앙과 의례가 간혹 보고되고 있다.
[위치]
시흥시 금이동 산117-1 칠리제저수지 맞은편 높이 92m의 산 정상부 구릉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금이동 고인돌은 2000년 기전문화재연구원[지금의 경기문화재연구원]의 지표 조사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계수동 고인돌과는 달리 주변에 청동기시대 유물 산포지나 다른 유적들이 분포해 있지 않아 지리적 관련성을 찾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형태]
덮개돌 아래 작은 굄돌 2개가 있는 형태로 개석식 고인돌이라 생각된다. 덮개돌의 모양은 부정형이며 성혈(性穴)[풍년을 기원하거나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든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90㎝, 너비 1.1m, 높이 35㎝이다. 굄돌은 두 개로 크기는 길이 20㎝, 너비 45㎝와 길이 28㎝, 너비 38㎝이다.
[출토 유물]
금이동 고인돌에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관옥(管玉)[대롱옥]이 출토되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다만 실물 자료의 현황과 위치는 확인할 수 없다.
[현황]
금이동 고인돌 주변은 산림이 우거져 있고 별도의 온전한 통행로가 없어 방치되고 있다. 덮개돌은 지상에 노출되어 있고, 굄돌은 일부가 지면 위에 드러나 있다. 인근에도 고인돌로 생각되는 상석이 토사에 묻혀 있으나 정확하지 않고 별도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