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군인민위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357
한자 始興郡人民委員會
영어공식명칭 Siheunggun People’s Committe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훈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9월연표보기 - 시흥군인민위원회 조직
해체 시기/일시 1945년 12월 12일연표보기 - 시흥군인민위원회 공식적인 업무 중단

[정의]

광복 직후 경기도 시흥 지역에 설립된 민간 자치 기구.

[개설]

일제 패망 직후 지방 행정 업무를 담당할 기구가 필요하였다. 당시 시흥 지역에서도 1945년 9월경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행정과 치안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일제의 시흥군 청사를 접수할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였던 시흥군인민위원회는 1945년 말 미군정이 불법화하면서 공식적인 업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설립 목적]

시흥군인민위원회는 일제가 도맡았던 지방 행정과 치안, 교육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변천]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 선언으로 조선은 식민지에서 벗어났다. 정치적·행정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조선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건준]의 주도 아래 전국적으로 건준 지부가 구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치안유지회', '자치회' 등 지방 행정과 치안 유지를 위한 자생적 조직도 지역별로 생겨났다. 건준은 1945년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이라는 정부 조직으로 개편을 선언하고, 산하 지방 지부를 인민위원회로 재조직하게 했다.

시흥 지역에서도 1945년 9월경 시흥군인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45년 미군정의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시흥군인민위원회는 일제강점기 안양읍[지금의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에 있는 시흥군 청사를 접수하여 실제 군 업무를 담당하였다. 지금의 시흥시 지역인 소래면[당시 부천군 소속] 인민위원회도 신천리에 있던 일제강점기 면사무소에 사무실을 두고, 식량 확보·치안 유지 등 행정 업무 등을 수행하였다.

시흥군인민위원회는 임시 자치 조직의 성격이 강하였으나, 1946년 1월 7일 군 위원과 상임위원회 선거를 거쳐 정식으로 결성되었다. 그러나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가 유일한 지방 행정 조직이라고 인정하였던 미군정은 자체 조직 정비가 이루어지자 인민위원회를 부정하였다. 미군정은 1945년 12월 12일자로 인민위원회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전국의 인민위원회와 치안대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반면 38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은 지역의 인민위원회를 기반으로 정치와 행정 조직을 정비하였다. 북한 정권은 인민위원회 선거라는 형식을 거쳐 1948년 수립되었다. 6.25전쟁 당시 북한은 점령하는 지역마다 인민위원회를 구성해 행정 업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1950년 7월 시흥 지역을 점령한 북한은 임시 인민위원회를 조직한 데 이어 선거를 통해 인민위원을 선출함으로써 인민위원회에 대표성과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광복 직후의 자치 기구 성격의 인민위원회와 6.25전쟁 당시 인민위원회는 역사적 맥락과 기능이 달랐다.

[의의와 평가]

시흥군인민위원회는 광복 직후 짧은 기간이지만 일제강점기 시흥군 청사를 접수해 식량 확보와 치안 유지 등 당시의 다급한 현안에 대처해 나갔다. 인민위원회를 민간 자치 기구라고 보면 당연한 대응이지만, 좌익 계열인 조선인민공화국의 지방 조직이었기 때문에 시흥군인민위원회는 미군정에 의해 불법화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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