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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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休復 |
영어음역 | Yu Hyub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서령[서산]. 할아버지는 유기(柳沂)[?~1410]이고 아버지는 유방경(柳方敬)이다. 삼촌은 유방선(柳方善)[1338~1443]이고, 사촌동생은 유윤겸(柳允謙)[1420~?]이다.
[활동 사항]
유휴복(柳休復)은 일찍이 삼촌인 유방선에게 두보(杜甫)의 시를 배웠다. 이에 1443년(세종 25) 사촌동생인 유윤겸과 함께 『두시언해(杜詩諺解)』 편찬 사업에 참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휴복은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 서산 지역에 세거하며 번성했던 서령 유씨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당시 서령 유씨는 태종 때 할아버지 유기가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된 사건으로 과거를 볼 수 없는 처지였다. 이에 1455년(세조 1) 유휴복은 유윤겸과 함께 과거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는 상소를 올려 허락을 받았다. 이후 유휴복은 과거를 통해 관직이 교리에 이르렀으며, 이때부터 서령 유씨들이 다시 벼슬길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성현(成俔)[1439~1504]은 자신의 저서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두시(杜詩)를 해석하는 데 있어 유휴복과 유윤겸을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칭송하였다. 덧붙여서 “탁월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아버지의 죄에 연좌되어 과거를 보거나 벼슬을 할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깝다. 세종이 집현전에 명하여 아무런 직책도 없는 유휴복과 유윤겸을 기용하게 하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를 영예로운 일이라 여겼다.”고 적고 있다.
[학문과 저술]
유휴복은 두보의 시 전편을 52부로 분류하여 한글로 번역한 『두시언해』 편찬 사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두시언해』는 원나라 때 편찬된 『찬주분류두시(纂註分類杜詩)』를 원본으로 삼아 두보의 시 1,647편과 다른 사람의 시 16편에 주석을 달고 한글로 풀어쓴 번역집으로, 초간본과 중간본이 있다. 초간 『두시언해』 간행 사업은 1443년(세종 25) 4월에 시작되어 38년 만인 1481년(성종 12)에 끝났다. 이 책은 유휴복을 비롯하여 유윤겸, 승려 의침(義砧), 조위(曺偉) 등이 주해를 달았는데, 당시 신분과 처지를 막론하고 두보의 시에 통달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참여하도록 했던 대대적인 번역 사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