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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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周鎬 |
이칭/별칭 | 유전(有田),길전(吉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금순 |
[정의]
일제 강점기 일본 공산당 활동을 통해 민족해방운동을 한 서귀포 출신 항일 운동가.
[활동 사항]
1912년 서귀포시 상예리 4435번지에서 출생한 강주호(姜周鎬)는 1929년 일본으로 가서 1931년 12월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전협] 화학지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일본 공산당이 1931년 조선과 대만 등의 완전독립을 정치 강령에 두고 당 중앙에 민족부를 설치하여 일본 공산당이 조선의 민족 해방 운동을 원조할 의무가 있음을 천명하며 약탈 영토의 해방과 일본 군대의 철병을 내세우자, 강주호는 1932년 현호경(玄好景)의 권유로 일본 공산당에 입당하여 동(東)구 문서 배포계 활동을 하였다.
당시 일본 경찰은 일본 오사카 지방에서 활동하는 제주 출신 사상 운동가가 3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강주호 등 100여명을 통신, 뉴스 혹은 출판물 등을 통해 불온사상을 유포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요시찰 인물로 지정하여 감시 하였다. 강주호는 1933년 4월 현호경의 추천으로 오사카 시위원회 문서배포계로 활동하고, 7월 간사이 지역위원회 및 시위원회의 문서배포계 활동을 거쳐, 1933년 남(南)지구원 및 동(東) 지구 책임자로, 민족 해방운동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다 1933년 9월 검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