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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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속하는 행정리. 당동리 마을에 원당이 있어서 당골, 당동, 원당으로 부른 데서 당동리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1490년 경 밀양박씨가 처음 들어온 후, 무안박씨와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602년 진도읍성 북쪽에 있던 서원이 당동리 북쪽으로 옮겨지고, 1778년에 양사재(養士齋)가 세워지면서 번창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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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쌍정리에 속하는 행정리. 논 가운데 말샘이 있었기 때문에 두정(斗井)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의신면에서 남문거리로 가는 길과 군내면, 고군면에서 남문거리로 들어오는 삼거리 길로 삼거리로 불리었고 돌벅수가 있어서 벅수거리라고도 불리었으며 장사 들독이 있었다. 1470년 경 양천허씨와 청주양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1700년경에 다른 성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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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가장 중요한 생산 기반 시설은 상가이다. 상가는 성서리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진도읍 내의 상권은 역사적으로 보면, 성서리에서 남동리와 쌍정리 등으로 확장되었다. 철마광장의 남쪽 경계선에서 남동리의 중심부로 도로가 관통되기 이전만 해도 성서리가 진도읍 상권의 주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도읍 상권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은 버스터미널의 위치와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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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농회 : 영농회는 성동리에만 결성되어 있다. 이 영농회는 1985년에 결성되었으며, 2006년 현재 회원은 63명이다. 월 2회의 모임을 갖고, 영농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한편, 생산 경영에 관한 사안들을 협의한다. 또한 영농회는 마을의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작목반 : 성서리에 구기자 작목반이 조직되어 있다. 7명으로 구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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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조선시대 진도군의 관아가 있던 성안을 법적으로 성내리라 하며, 성안을 동·서로 나누어 그 동쪽을 성동리(城東里)라 하였다. 1792년경 청주한씨의 입향 후 김해김씨·밀양박씨·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진도읍성 안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다. 성동리는 1980년대까지 진도읍의 중심지였으나 남동리가 신흥시가지로 개발되면서 활기를 많이 잃었다. 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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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속하는 행정리. 성내리를 이분하여 성동리(城東里)와 성서리(城西里)라 하였을 때, 성내리 서쪽에 있다 하여 성서리라 하였다. 옛날에는 성안의 관아 땅으로만 활용하였다고 전해지는데, 1792년경에 전라남도 진도읍성 안의 서쪽으로 청주한씨가 입거한 이후 차츰 밀양박씨 등 다른 성씨가 입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북쪽에 철마산[304m]이 자리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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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인의 산업별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성내리에는 비농가가 많고, 이곳이 진도읍의 중심이어서 농경지 면적은 적은 편이다. 전체 경작지는 188㏊인데, 논은 60㏊이고, 밭은 128㏊, 임야는 10㏊이다. 2005년의 진도읍사무소 통계에 의하면, 성동리 거주자가 경작지하는 면적은 112㏊로 59.6%이고, 성서리의 경작지 면적은 76㏊로 40.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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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 의하면, 성내리의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는 총 666명이었다. 남자는 351명이었고, 여자는 315명이었다. 농업,임업,수렵업 종사자가 354명이었는데, 남자보다 여자가 월등하게 많았다(남자 124명, 여자 230명). 제조업 종사자는 총 19명이었는데, 남자는 13명, 여자는 6명으로 농업 관련업과는 반대였다. 전기,가스,수도,위생 시설 서비스업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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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생산 과정 가운데 상업은 광주나 목포 등의 대도시에서 상품을 도매 또는 중매로 들여와 소매하는 형태이다. 농업은 고령인 소유의 농경지는 임대로 경작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경지 면적이 적어 자가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성동리의 경우 전체 농경지 가운데 27.7%가 휴경지일 정도로 농업 의존도가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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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인 남동리, 쌍정리 등에 다양한 업종의 상가들이 개업해 있고, 진도군에서 가장 큰 진도읍 매일시장이 인접해 있어서 생산한 상품들은 이곳을 통해 판매 및 유통하고 있다. 농업 생산물의 판매 유통은 다른 농촌마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성동리에서 생산되는 주요 농산품은 쌀, 구기자, 배추, 대파 등인데, 자급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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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城內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진도읍에 속한 마을이다. 성내리는 성안 또는 줄여 성내라고도 하는데, 성동(城東)마을과 성서(城西)마을을 행정리로 두고 있다. 성내리의 마을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왕의 동상리(東上里), 동중리(東中里), 동하리(東下里), 서상리(西上里), 서하리(西下里)를 합쳐 성내리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구한국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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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강(郡岡)[산] 성안에 있는 산으로 공원이 되었는데, 성이 있다. 성내(城內)[마을] 성내리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성내리(城內里)[마을] 성안, 성내라고도 부르며 진도읍성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성안 또는 성내리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마을 이름이 처음으로 명명되었다. 진도군청, 진도등기소, 농협중앙회, 진도교육청 등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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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 성동마을은 진도읍 중심가에 위치한 마을로서 비농가가 70%를 차지한다. 전체 270가구에서 230가구가 비농가이고 40가구만이 농사를 짓고 있다. 대부분 관공서에 다니거나 상업을 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성동마을 내에는 농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인근마을에 농지를 소유하고 있거나 인근마을의 농지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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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날(음력 1월 1일) 성동마을에서는 설날 0시경에 차례상을 차린다. 차례상에 메를 올리는 집안도 있고 떡국을 올리는 집안도 있다. 설날 아침에는 설빔을 입고 가족과 친지에게 세배를 한다. 세배를 받으면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세배를 마친 후에는 산소에 성묘를 간다. 설날 아침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가면 안 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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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 총회 성동리의 마을 총회는 매년 1월에 개최하고 있으나, 회의 날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2006년의 경우에는 1월 16일에 마을 총회를 개최했다. 마을 총회에서는 지난해의 마을 수입과 지출 등 마을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고하고, 이장 및 마을 임원들을 선출한다. 이장의 임기는 2년이다. 성서리의 경우는 총회 개최가 일정하지 않고, 참석자는 적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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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강공원 내 현충탑 앞에 게이트볼 경기장이 15년 전에 조성되었다. 따라서 성동리 노인들은 이곳에서 게이트볼을 자주 하고 있다. 성서리에는 한 명만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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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도계 : 성동리에만 상도계가 있었는데, 3년 전에 해산했다. 성동리의 상도계는 약 15년 전에 결성되었으나, 젊은이들이 가입을 하지 않아 계속 유지할 수가 없다고 한다. ◦ 성동마을은 200년 전부터 마을의 주요 성씨인 김해김씨, 창녕조씨, 무안박씨, 밀양박씨 등 8현의 영전이 모셔져 있는 향현사(鄕賢祠)에서 함께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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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 1792년경 청주 한씨가 입향한 후 김해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등이 입거하면서 마을을 형성했다. 한때 성동리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성씨는 한씨였다. 한편 성서리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인구의 변화가 많아 다성적 특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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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 성동리와 성서리로 구분된다. 이장도 각 마을별로 있으며, 두 개의 독립된 공동체가 결합되어 있다. 성내리, 특히 성서리는 가구 및 인구 이동이 빈번하고, 변화가 많아 정확한 통계가 어렵다. 따라서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활용하여 그 추세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성내리의 가구수는 1968년 조사 당시 285가구였으나, 126가구가 증가하여 2006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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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인접마을인 교동리 275번지에 향교가 있으며, 역시 인접마을인 남동리에 진도천주교회와 통일교회가 있다. 한편 성내리에는 진도교회(감리교)와 진도중앙교회가 있다. 그리고 인접마을인 쌍정리에는 원불교 진도교당이 있다. 성동리는 약 30가구가 장로교계 기독교인이고, 3가구 정도가 감리교계 기독인이다. 불교는 10여 가구인데, 진도읍에 소재한 영룡사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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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리에만 총 3개의 친목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가장 오래된 것은 약 40년 이상 되었다. 두 번째는 약 10년 정도 된 친목계인데, 다른 마을 사람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세 번째는 칠성계라는 명칭의 형제계인데, 7가구의 부부동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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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리의 경우에는 한씨들이 매우 많았다. 현재는 다수가 이사를 하여 수가 감소했으나, 여전히 10여 가구가 한씨이다. 현재는 박씨가 많고, 이들의 친척관계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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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은 진도군의 중심지이고 성내리는 진도읍의 핵심지이다. 본래 진도읍은 1437년(세종 19)에 부내면이 되었다가 1873년(고종 11)에 진도면으로 개칭되었고,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행정개편이 있었지만 성내리는 읍성의 안쪽에 있다 하여 처음부터 성안 또는 성내로 불렸다. 법정동은 성내리이지만 행정동은 진도초등학교가 있는 성동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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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진도읍성’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1900년대 초 진도읍성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관청 이외의 건물과 시설들이 하나둘 건립되었다. 물론 진도읍성 내에 관청 및 통치 기구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읍성들과 마찬가지로 관청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주택을 비롯하여 유지 및 상대적으로 신분과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이 입거하면서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성내리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