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세워진 단군을 배향(配享)하는 사우(祠宇)·묘당(廟堂). 고대인들은 노거수 아래에 돌을 쌓아 단군에 향사하는 제단을 설치하였고, 발해에서는 보본단과 대숭전을 수축하였다. 고려에서는 단군묘, 숭령전, 단군릉과 단군묘를 설치하고, 삼성사를 세웠다. 조선에서는 단군묘와 삼성사를 수리하는 등 국조숭배를 계승해 왔다. 그러나 일제는 우리 민족의 단일민족정신을...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세워진 단군과 기자를 모신 사우. 일제는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단군전을 모두 폐지시켰다. 이에 뜻있는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단군전 건립을 극비리에 암중모색하여 오던 중 1919년 3·1 운동을 기점으로 논의가 활성화되었다. 진도군에서는 1922년 1월 15일 100여 명의 유림들이 단기사 건립을 위해 기성회(회장 박진원)를 발족시켰다. 한승복(...
일제강점기 운수업에 종사한 사업가. 1886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서 청주한씨 한용민(韓用珉)과 장성동(張星東)의 3남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옥천(玉泉)이다. 부인은 문순석(文順碩)이다. 1961년 향년 76세로 타계하였다. 1920년 진도운수주식회사 이사를 거쳐 진도군참사를 지내고 전라남도 평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3년 한승이가 중심이 되어 단군과 기자(箕子)를 모...
일제강점기 기업가. 1876년 진도읍 동외리에서 청주한씨 한용민(韓用珉)과 장성동(張星東)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옥초(玉樵)이다. 1946년 향년 71세로 타계하였다. 아들 한평교(韓平敎)는 서울대학교를 나와 진도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진도의 사립 광신(光信)학교를 나와 서울로 유학하여 양정의숙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호남측량학교를 나왔다. 중추원의관을 지냈다. 진도군 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