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서 전해지는 들노래. 논일이 끝난 뒤 그해 가장 농사를 잘 지은 집의 상머슴을 소에 태우고 마을로 들어오면서 부르는 풍장소리로, 진도군의 다른 지역에서는 흔히 ‘길꼬냉이’라고 부른다. 1989년 10월 24일에 군내면 둔전리에 사는 최소심(여, 1908~1992)에게서 채록하였다. 어 구부요 굵은 독은(굵은 돌) 넘어 딛고 잔잔독은(잔돌) 가라 딛어(...
-
고사리를 꺾으면서 부르는 민요. 고사리타령은 부녀요(婦女謠)의 하나로 ‘고사리 꺾는 소리’라고도 부른다. 황해도의 신계군, 경상북도의 영덕군·영양군, 충청남도의 보령군, 전라북도의 장수군, 전라남도의 진도군과 해남군을 비롯해서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가사는 대개 가난의 한스러움과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나타내며, 노동요의 형태를 갖추면서 단순하고 불규칙한 박자로 부른다. 강강술래의 여...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전해지는 금골산 탑에 얽힌 이야기. 1979년 8월 1일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마을에서 지춘상이 조사하였고, 제보자는 이 마을에 사는 이성광(남, 71세)이다. 금골산 탑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두 가지이다. 하나는 탑 안에 이 세상의 일을 모두 알 수 있는 책이 들어 있었으나 누군가가 훔쳐갔다고 한다. 또 하나는 일제강점기 때 탑이 있는 땅 소유...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있는 돌팍재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돌팍재 떡흙전설」은 우리나라 섬 지방에서 주로 전해 내려오는 거인 설화의 영향을 받은 이야기로, 현재 진도군에서 전승되고 있는「지심뫼 전설」이나「이음바위 전설」, 「고막뫼 전설」과 비슷한 ‘산이동’과 ‘산멈춤’이란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1979년 8월 1일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마을에서 지춘상이 조사하고,...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마을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 1979년 8월 1일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마을에서 지춘상이 조사하였으며, 제보자는 그 마을의 손판기(남, 61세)이다. 금골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장군대좌격(將軍對坐格)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보면 산과 같은데 반대편에서 보면 장군이 앉아 있는 형상으로서, 금골산 앞에 있는 조그만한 섬이 장군의 숨인 인통이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맘바등이란 바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맘바등이란 군내면 용장리 서편에 있는 흑색의 큰 바위를 말하는데, 옛날 옛적 한 신선이 그 바위 안에 엄청나게 많은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이야기이다. 아주 오래된 옛날, 그 바위에는 도선(道詵)이라는 신선이 살았는데, 그 바위 속에는 큰 창고가 있어서 진물보물(珍物寶物)이 엄청나게 많이 쌓여 있었다고 한...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 망바위전설은 고려후기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승화후 온(溫)을 왕으로 추대한 뒤, 진도를 본거지삼아 몽골과 맞서 싸우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망바위는 군내면 용장리 방북(현 오룡초등학교)의 주산인 대암석을 말한다. 고려후기 진도로 내려온 삼별초군들이 이 바위에 올라, 세곡이나 보물을 싣고 가는 배...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마을에서 전해지는 명풍수에 관한 이야기. ‘이승’이란 인물이 명풍수가 된 배경을 이야기한 설화로, 경기도 김포지방에서 전하는 「조헌과 괴호」란 설화와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79년 8월 1일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마을에 사는 박길종(남, 58세)이 구연하였다. 이승은 서모자식으로 태어났으나 그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어릴 때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있는 금골산(상골산) 암자에 얽힌 이야기. 금골산(상골산) 중턱에 있는 상굴암이란 암자에서 쌀이 나왔으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쌀 나오는 바위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전해지는 광포전설로서, 고군면 향동리에 있는 굴바위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전한다. 1979년 8월 1일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마을에 사는 이성광(남...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월가리에 있는 이씨보에 얽힌 효행담. 『동국여지승람』경주조(慶州條)에 실려 있는 「효불효전설」과 비슷한 이야기로서, 바람난 어머니를 위해 돌을 쌓아 보를 만들어 드림으로써 어머니를 뉘우치게 한다는 내용이다. 아득한 옛날 월가리에 살던 이씨 가문에 청상과부가 아들 둘을 기르면서 수절하고 살았다. 그러다 이씨 부인은 ‘떡절이(덕병리)’에 사는 어느 미남과 눈이...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지심뫼에 관한 전설. ‘도사’라는 신령한 존재가 산을 움직인다는 모티프는 우리나라 여러 지방에서 전해지는 거인 설화와 맥이 닿는다. 진도군 지산면 길은리에서 전해지는 「이음바위 전설」과 유사한 형태의 이야기이다. 지심뫼는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동쪽에 있는 산으로, 산꼭대기가 서쪽 방향으로 쑥 불거져 나온 모양을 하고 있다. 아득한 옛날...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서 전해지는 풍수 예언담. 군내면 용장리의 동북방으로 ‘대투(大鬪)개재’를 넘어 연동리로 가는 길 왼쪽으로 넓게 펼쳐진 평야에 얽힌 이야기이다. 지금은 ‘한개뻘등’과 오류리와 연동리의 벽파진평(碧波津坪)까지 합쳐서 평야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한개뻘등이 없이 산 밑까지 해수가 출렁이는 해변이었다. 예로부터 이곳에 장차 군읍(郡邑)이 옮겨온다는 전설이 전...
-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한학자 겸 민속음악가. 한학자 출신인 해송(海松) 곽문환은 「흥 타령」, 「육자배기」 등의 이론정립에 힘을 쏟은 진도 민속음악의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명이다.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 59번지에서 아버지 곽영섭과 어머니 박선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부인 이동덕과의 사이에 곽영주·곽영호·곽준영·곽계월·곽남호 등의 자녀를 두었다. 집안사람이나 자녀 중에서 곽문환처...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10년 현풍곽씨 중파인 곽병기의 3남 가운데 차남으로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에 고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933년 3월에 경성사립중동학교를 나와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하였다. 경성사립중동학교 때부터 사회과학에 뜻을 두고 공산주의 서적을 읽었다. 보성전문학교 재학 중에 학우 조규영와 함께 세창고무공장 여공 김수부, 김유순 등...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곽재필은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에서 가장 부자였던 곽병문의 아들로 1911년에 태어났다. 진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에 경성고등예비학교 1년 수료 후 퇴학했다. 진도청년동맹 박두재의 지도 아래 사회주의 서적을 읽기 시작하였다. 고향에 돌아와 조규선과 협의하여 1933년 1월 15일에 박종협·박동인·곽병휘·이재석과 함께 비밀결사 자각회를 발족했다. 곽...
-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구춘홍은 진도다시래기보존회를 꾸릴 초창기부터 조직이나 연행에 관여하며 진도 민속음악을 짊어지고 갔던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구춘홍은 1918년 군내면 분토리 176번지에서 부 구택용과 모 곽한의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유덕과 결혼한 뒤 구승회, 구명회, 구영회, 구관회, 구지회, 구애숙 등의 자녀를 두었다. 구춘홍은 타고난 민속음악적 기질을 가지...
-
전라남도 진도군의 행정면. 군내면은 진도군에 속한 7개 면 중의 하나로 10개의 법정리와 28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면적 2,244.9㏊에 1,668세대가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는 3,896명(남1,871명, 여 2,025명)이다. 군내면에 속한 무인도는 3개이다. 940년(태조 23년)에는 가흥현으로 불리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지방 관제 변...
-
...
-
...
-
진도군의 모든 원수는 저수지에서 취수하고 있으므로, 덕병리 역시 취수탑을 통한 취수형태를 취하고 있다. 진도군의 취수지는 4개의 수원지에서 취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회동수원지는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위치하고 있고, 제방의 규모는 길이는 232m이고 높이는 24.5m이다. 시설용량은 861㎦이고 급수구역은 진도읍 지역이다. 녹진수원지는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에 위치하고 있...
-
군내면 덕병리에서 진도로 가는 옛길은 읍장을 가는 길과 동일하다. 마을 서쪽 솔갯재를 넘어 '이십오'와 '얼가리'를 지나 진도읍으로 통했다. 덕병에서 진도읍까지는 20리 길로 2시간가량 필요했다. 당시 초등학교는 모작굴을 넘어서 1시간가량 걸어가야 했으며, 중학교는 읍내의 진도중학교를 이용했다....
-
덕병리는 진도의 대표적인 갯벌이 있는 어촌마을이었다. 무안과 목포의 낙지잡이 전문가들이 와서 낙지를 잡아갈 정도였다. 고막, 바지락을 캐고, 운저리(표준어로는 문절망둑이 맞으나 이 지역에서는 운저리라 부름)을 잡아 읍내 장에 팔고 반찬을 하기도 했다. 일제시대 덕병에서 용인으로 잇는 원을 막았다. 그리고 2000년대에 덕병을 둘러싼 마을 한의와 내리를 막는 방조제가 완공...
-
...
-
덕병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의 법정리이다. 또한 법정마을 덕병리의 행정리 명칭이기도 하다. 법정리인 덕병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왕의 용인리(龍仁里)와 한의리(寒衣里), 덕병리 일부를 합쳐 이루어진 마을이다. 행정구역 개편 때 자연마을 덕병리의 일부는 둔전리(屯田里)로 병합되기도 하였다. 덕병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
-
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이병일(남, 76세, 덕병 노인회장) 씨와의 면담조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이 항의 내용은 행정리로서 덕병리에 있는 지명만을 대상으로 기술하였다. 가심재[고개] 덕병에서 분토리의 분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옛날에 전통혼례를 치르면서 가마를 타고 분산마을 쪽으로 넘어가야 할 때에도...
-
덕병마을은 마을 앞으로 넓은 들을 끼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벼농사와 밭농사 등 농업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도 농사 주기에 맞추어져 있다. 주요 작물은 벼, 대파, 월동배추, 담배, 고추 등이다. 주민들은 기계화 등의 요인으로 인해 농사주기가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다고 하였다. 덕병마을은 아직도 마을 공동으로 하는 행사가 많다. 음력 1월...
-
(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성주고사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밥을 지어 제일 먼저 성주상에 차린다. 그리고 손 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담는다. 성주동우의 쌀은 조심해서 밥을 지어먹거나 장에다 내다 팔았다. 한 제보자는 집안이 안 좋으려면 성주동우 쌀 색깔이 좋지 않다고 하였다. (3) 생업력 만생종 벼와 조를 수확한다....
-
(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시제 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메주 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짚으로 엮어서 메주를 띄운다. (3) 생업력 대파를 출하한다....
-
(1) 주요 행사 -총회 매년 12월 말일에 결산총회를 한다. 총회에서는 1년간의 운영실적을 보고하고, 재정을 결산하고 새해 예산을 세우며, 이장을 선출한다. (2) 세시풍속 -동지 이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전에는 집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김장 담그기 이달 중순경에는 김장을 한다. 배추김치, 동치미 등을 담아 겨우내 먹을 수 있도록...
-
(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설점치기 12월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 비가 많이 와서 농사시절이 좋다고 하였다. (3) 생업력 월동배추와 대파를 출하하고 고추 모판을 만든다....
-
(1) 주요 행사 -망제(望祭) 덕병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모시는 마을제사를 망제라고 부르고 있다. 제사를 모시는 장소는 세 군데로, 마을의 남서쪽에 위치한 당집(당할머니)과 마을로 통하는 삼거리(대지신과 객귀), 마을의 북쪽 끝 바닷가로 통하는 곳에 서있는 장승이다. 즉 망제는 당할머니제사, 거리제, 장승제를 포함한 명칭이다. (2) 세시...
-
(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하루달날(음력 2월 1일)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은 사람날이라고 하여 쌀밥 먹고 잘 노는 날이었다. 또한 손끄스럼 지진다고 하여 콩을 볶아 먹었다. 나락, 콩, 보리를 볶아서 툭툭 튀면 그해 곡식이 잘 여문다고 했다. 하루달날 먹는 칡은 약이 된다고 하여 이날 칡을 캐서 먹었다. -경칩 이날 올챙이를 먹으면 약이 된다...
-
(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삼질날 삼질날은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고 알고 있으며, 이날 시제를 모시는 집안도 있다. -한식 이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이달에 대파 못자리를 만들고 이달 말부터 5월까지 대파를 옮겨 심는다. 조생종벼의 경우 4월 초에 볍씨를 담그고, 만생종벼의 경우에는 4월 20일 이후에 볍씨...
-
(1) 주요 행사 -경로잔치 매년 5월 어버이날 근경에 65세 이상 노인들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경로잔치를 벌인다.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먹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2) 세시풍속 -4월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일반인들은 휴일이기 때문에 놀러가는 날이다. (3) 생업력 이달에 대파를 옮겨 심고 조생종벼의 경우에 5월 10일경에 모...
-
(1) 주요 행사 -면민체육대회 면민체육대회는 군내면민들의 체육행사이다. 이 행사에 덕병마을 주민들도 참여하여 이웃마을과 경쟁을 하면서 우의를 다진다. 매년 5월에 치러지지만 선거 등 특별한 경우에는 6월에 하기도 한다. (2) 세시풍속 -단오날 이날은 오만가지 풀잎이 다 약이 된다고 하여 풀잎을 뜯어서 말렸다. (3) 생업력 모내기를 하고 나면 바로 콩과 깨를 갈고 6월 10일경...
-
(1) 주요 행사 -충제 덕병마을에서는 음력 6월 1일에 충제를 지내는데, 지금까지 중단된 적이 없다고 한다. 충제를 모시는 장소는 마을 인근의 달마산에 있는 충제터이다. 음력 5월 말일 오전에 제관과 도움을 줄 마을사람들이 충제터에 올라가 차일을 치고 제물을 장만하여, 그날 밤부터 새벽까지 충제를 지낸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미리 마을에서 제...
-
(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백중 예전에는 백중날도 큰 명절이었다. 이날은 도랑신네가 곡식 정하는 날이라고 하여 논밭에 나가지 않았으며 음식을 걸게 장만하여 먹고 차례상을 차렸다. 그리고 보리쌀을 맷돌에 갈아서 가래밥, 보리빵, 보리설편을 해먹었다. 지금은 백중을 쇠는 집은 거의 없다.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무리한다. (3) 생업력...
-
(1) 주요 행사 (2) 세시풍속 -추석 추석에는 타지에 나가 있던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고 조상에게 성묘한다. (3) 생업력 추석 무렵부터 조생종 벼를 수확하고 월동배추를 이종한다. 콩, 깨를 수확하고 마늘을 심는다. 이달에 해남에서 담배를 수매한다....
-
...
-
...
-
덕병리의 마을 임원으로는 이장, 개발위원, 청년회, 부녀회, 반장 등이 있다. 또 마을회의로는 연말결산총회 격인 동계, 이장이 필요시 개최하는 정기회의, 임원회의 등이 있다. 동계와 정기회의는 마을주민들 모두가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며, 임원회의는 마을원로, 반장(다섯 명), 노인회장, 부인회장이 참석한다. 마을 운영과 관련된 경미한 일은 대부분 임원회의에서 결정한다. 동...
-
마을 앞에는 갯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었다. '솔목'이라고 부르는 이 방풍림은 어느 시기에 조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나무, 팽나무 특히 대나무가 많았다. 그리고 바다 쪽으로는 모래사장이 발달해 학생들의 대표적인 소풍 장소였고 놀이터였다. 이곳 방풍림을 지키는 일은 구장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었다. 나무가 귀하던 시절에 방풍림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홍역을 앓다...
-
2006년 6월 현재 덕병리는 102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는 남자 108명, 여자 117명이다. 덕병리는 행정리로, 덕병마을은 물론 용인과 한의마을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마을들은 백조도래지인 나리방조제를 둘러싸고 있다. 이곳 나리방조제를 막기 전까지 용인마을은 염전을, 한의마을은 김 양식을 많이 했던 어촌마을이었고, 덕병마을도 바지락과 낙지 잡이 등이 많이 이루어졌던 지역...
-
덕병리에는 설씨가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마을에 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각성받이 마을로, 많을 때는 42개 성이 함께 거주했으며 지금은 20여 성씨가 마을을 이루고 있다. 각성받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동성으로 이루어진 마을보다 단결심이 더 좋아 군내면 체육대회 등에서 1등을 하며, 청년회를 당할 마을이 없다. 1970년대 조사된 자료(『진...
-
원래 덕병리는 덕저리, 떡저리, 또는 덕병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건너편 금골산 남서자락의 용인리와 달마산 건너편의 한의리를 합쳐서 법정리명인 덕병리로 병합했다. 그러나 장승이 서있는 마을로 당산제를 모시는 곳은 바로 석장승이 있는 덕병마을이다. 1400년경 처음 마씨가 시거했고, 그후 밀양 손씨들의 증손들이 들어와서 퍼졌으며, 경주 최씨, 신안 주씨도...
-
...
-
진도의 특이한 마을민속 중의 하나는 도깨비굿이다. 덕병마을 말고도 예전에는 많은 마을들에서 도깨비굿을 했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도깨비굿은 정기적으로 하는 경우와 비정기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정기적인 경우는 매년 정월 14일날 밤에 행해지는 것이며, 비정기적인 경우는 전염병이 돌 때 하는 것이다. 마을에 따라서는 정기적으로 하는 곳도 있지만, 덕병마을에서는 전염병이...
-
전통적인 마을로는 보기 드물게 북향을 하고 앉은 덕병마을은 앞쪽으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수백년간 그 들판을 삶의 터전으로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시사철 땀을 흘려왔는지 모른다. 농촌에 전해지는 속담에 따르면 2월 초하루면 농부가 썩은 새끼줄을 들고 뒷산에 목매달아 죽으러 오른다고 한다. 농사가 시작되는 철이면 농부들에게는 고행의 나날이 기다리고 있다. 한여름 뙤약볕 아...
-
마을 사람들은 들에 나가면 농부요, 집안에 들어오면 부모이다. 그들은 애를 써서 들에서는 곡식을 키우고 집에서는 자식을 키우지만,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탄생과 성장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연의 저 쪽에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있어서 그 힘에 의존하지 않고는 들판의 곡식도 집안의 자식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눈으...
-
...
-
당집에서 제사가 끝나면 다시 제관 일행은 굿을 치는 사람들과 더불어 마을 앞 삼거리 길에 차일을 쳐둔 거릿제터로 향한다. 예전에는 이때 마을길 양쪽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나왔으며, 길굿을 멋있게 치고 놀았다 하는데 요즈음은 구경을 나온 마을 사람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차일 속에는 거리신에게 바칠 제상을 차린다. 과일과 나물, 메와 국, 그리고 제주 등 간단하다. 거릿제는...
-
망제가 끝난 후, 정월 대보름날 오전에 마을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마을총회를 연다. 이장을 중심으로 하여 마을의 일을 협의하고, 임기가 되면 새로 이장도 선출할 수 있으며, 특히 망제를 결산하게 된다. 총회를 하면서 나누어먹기 위해 음식을 다소 넉넉히 준비해둔다. 마을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총회를 하면서 술을 한 잔씩 돌리고 준비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50여년 전에 없어진 풍속...
-
망제와 관련되어 그 영험을 물었더니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복받은 사람은 없어도 해을 입은 사람은 많다고 대답했다. 궁극적으로 망제는 복을 받기 위해 모시지만, 그러기 위해서 더욱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뜻으로 올렸으며, 망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 구전이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마을사람들에게 당할머니가 때때로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망제를 더 이상 모시지 말자는...
-
예전에는 정월 14일 밤 10시경에 당집에서 당할머니에게 당제를 모셨다. 지금은 시간을 앞당겨 8시 30분경에 시작한다. 제물을 마련한 제관의 집에서 굿을 치는 사람들을 앞세우고 제물을 들고 당집을 향한다. 예전에는 당집 앞에 수령 250년 정도의 큰 팽나무가 있었는데, 태풍에 넘어져 죽고 지금은 가정집 담장 안에 당집만 남았다. 당집은 1평 정도로 시멘트집에 양철지붕을 하였으나...
-
매년 정월 대보름에 덕병마을에서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동제를 모셔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력으로 정월 14일 제반 준비를 끝내고 저녁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마을신들께 제사를 올린다. 전라도에서 동제를 부르는 가장 일반적인 이름은 당산제(堂山祭) 또는 당제(堂祭)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지역에 따라 구별이 되는데, 내륙지역은 당산제라고 부르...
-
망제는 매년 정기적으로 모시기 때문에 정월이 되면 이장을 중심으로 망제를 올리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예전에 제주(祭酒)를 제관의 집에서 만들어 썼을 때는 최소한 망제를 모시기 5일 전부터 준비와 금기기간이 시작되었다. 제주는 몇 동이를 앉힌다. 제사를 지낼 때는 맑은 청주를 떠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망제 다음날 마을사람들이 모여 총회를 할 때 함께 나누어 마신다. 예전에 세무서...
-
망제를 모시기에 앞서 마을에서는 굿을 치기 위해 농악대가 꾸려진다. 농악대에도 역시 스스로 깨끗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여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굿물을 들고 농악을 치고 다녔지만 요즈음은 극히 소수, 때로는 3인 정도만이 참여하여 흉내만 낼 때도 있다고 한다. 초저녁부터 농악은 시작된다. 이때는 농악이 아니라 제례악으로서 굿물이 쳐진다. 우선 마을회관에서 출발...
-
지세로 보아 마을이 허한 곳과 강한 곳이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풍수지리로 보자면 뒤에는 산이 자리잡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가 전통적인 마을의 전형이다. 그리고 산들도 주산(主山), 진산(鎭山), 안산(案山) 등이 있어 마을을 보호한다. 마을의 뒷산이 좌청룡 우백호의 모습이면 더욱 좋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풍수지리적 요소들 중에 혹시 부족한 것이 있으면 인공물을 만들어...
-
요즈음 문화재의 도난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골동품의 값이 오르면서 문화재급의 유물들이 도심(盜心)에 노출되어버렸다. 예술품은 그렇다 치더라도 예전 같으면 경외의 대상이었던 신앙유물마저도 도난을 당하는 예들이 많다고 한다. 문중의 고문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찰의 탱화나 묘 앞의 문인석 등도 문화재청에 도난신고가 된 예가 허다하다. 덕병마을에는 언제 세운...
-
장승의 일차적인 기능은 잡귀의 침입을 막는 것이다. 마을 입구나 사찰 입구에 세우는 장승은 나무로 만든 목장승과 돌로 만든 석장승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일차적인 기능은 나뿐 액이나 잡귀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지역수호신적 역할이다. 덕병마을 역시 마을 사람들은 장승이 전염병을 막아주고 나쁜 귀신이 마을에 침입하는 것을 또한 막아준다고 믿고 있다. 장승의 목에는 이미 낮에...
-
망제를 올리기 위해서는 제관을 뽑는다. 예전에 제주를 담아 제사를 모실 때는 약 5일 전에 제관을 선정하여 술을 앉히도록 하였지만, 지금은 소주를 사다 제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13일 경에 정한다. 요즈음은 2명의 제관을 뽑는다. 본래 3명이 맡았으나 사람들이 제관 맡기를 꺼리기 때문에 2명으로 줄였다. 매년 제관은 새로 뽑는다. 아무나 제관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의 일년...
-
망제를 모시기 위해 14일 아침부터 바쁘다. 이장을 중심으로 제사를 모실 곳을 청소하고, 필요한 설비를 하게 된다. 아침나절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당집을 청소한다. 당집 주변과 당집 안을 깨끗이 쓸어 청소를 하고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깐다. 그리고는 거리제를 모실 마을의 삼거리길로 간다. 역시 주변을 청소하며 여기에 차일을 친다. 차일은 네 기둥을 세우는 대신에 바람이 통하지 않도록...
-
동절기의 마을신앙이 망제로 모셔진다면, 하절기에 모시는 마을신앙은 충제이다. 지금까지도 매년 제관을 뽑고 제물을 장만하여 음력으로 6월 1일이 되면 마을에서는 충제를 모셔오고 있다. 제관을 뽑을 때 생기복덕을 보아서 연령에 맞는 사람 중 두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대문간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제사 비용은 마을자금으로 충당을...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고운 마음과 밝은 지혜를 기르자’는 교훈 아래,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다양한 취미생활로 자기 소질을 가꾸는 어린이, 기본 생활습관이 몸에 밴 예의 바른 어린이, 스스로 자기 몸을 단련하는 건강한 어린이의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36년 5월 4일 군내공립보통학교 부설 둔전간이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조상의 얼과 전통을 이어받아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애국인), 꾸준히 배우고 익혀 자기 성장에 힘쓰는 사람(실력인), 사고력을 신장하여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창의인), 심신 단련에 힘써 명랑하고 건강한 사람(건강인), 맑고 착한 정서를 함양하여 건전하고 예절바른 사람(예절인)을 기르는 것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71년...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속하는 행정리. 금골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1878년경 이천서씨가 처음 거주하였다고 전한다. 북쪽에 금골산의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있으나 대부분 지역은 낮은 구릉지로 되어 있다. 면의 중앙에 있으며, 동쪽은 둔전들, 서쪽은 군내호, 남쪽은 고두산, 북쪽은 금골산과 각각 접하고 있으며, 안농리와도 가까이 있다. 교통은 마을의 동쪽으로는...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금골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진도대교를 지나 국도 18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군내면 둔전리의 행정리인 금골리에 이르게 된다. 고인돌은 금골리 뒤편에 자리한 군내중학교 소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100m 정도 가다 보면 고갯마루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규모는 490×400×60㎝이며, 받침돌이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다. 덮개돌의 평면형태는 장타원형이...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있는 팔각석재. 금골사 팔각석재는 현재 해언사 경내에 소재하고 있다. 팔각형의 모양으로 높이 37㎝, 직경 78㎝이며, 해원사지(海院寺址)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석재는 부도에 딸린 부재로 보이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연대는 고려시대로 보인다. 이밖에 석재 외에도 옥개석 1매가 함께 갖추어져 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있는 산. 금골산은 해발 193m에 불과하지만,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우뚝 솟은 기이한 산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조각가가 일일이 예술작품을 조각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수십 길 절벽에는 층층바위를 이룬 곳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이 있는가 하면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 또는 짐승으로 연상케 하는 기암괴석들이 산 전체를 수놓고 있다. 1498년...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금골산에 있는 조선 전기 마애여래좌상.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금골산(金骨山)[해발 193m]에는 수도처로 사용된 세 개의 굴(상굴·서굴·동굴)이 있는데, 이중 동굴(東窟) 안에 금골산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굴은 입구가 너른 편이며 서너 명이 기거할 수 있는 크기이다. 마애불은 굴의 한가운데 남동 방향으로 새겨져 있으며, 진도의 비옥한 토지와 한...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에 특별히 전하는 입향조는 없으며, 일제강점기 때 신동마을 등성이에 주변의 영세민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남쪽의 금골산(金骨山), 서쪽의 도암산, 북쪽의 망금산(望金山)[111m] 사이 낮은 구릉지에 있다. 면의 중부에 있으며, 동쪽은 바다, 서쪽은 고지리, 남쪽은 안농리, 북쪽은 녹진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교통은 마을...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지적 기본능력의 배양(智), 공동체 발전에 공헌(德), 강인한 체력의 소유(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技)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62년 4월 10일 군내국민학교 금성분교로 개교하였으며, 1966년 4월 10일 금성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 1996년 3월 1일에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변경되어 금성초등학교가 되었으며, 20...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의 입향조는 나씨와 이씨이다. 본래 군일면의 지역으로서 나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범바우, 신기를 병합하여 나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의 건배산[118m]이 있을 뿐 대체로 주변 지역이 낮게 형성되어 있다. 마을 뒤에 있는 나리저수지의 물로 논농사를 경작한다. 또한 마을 앞은 바다를 막은 방조...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나리에 있는 방조제. 진도군에서 최근 행하고 있는 간척사업으로는 군내지구와 보전지구 간척지 개발사업이 있다. 그 중 군내지구의 나리방조제는 진도 간척사상 소포 간척 다음으로 규모가 큰 사업장이다. 나리방조제에는 이미 건설된 나리2방조제와 군내지구에 현재 건설 중인 나리방조제가 있다. 1878년 준공된 나리2방조제는 간척 면적 30㏊, 몽리 면적 29㏊, 방조...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입향조는 창녕조씨 조중문(曺仲文), 밀양박씨 박대린(朴大麟)으로 임진왜란 전후시기라고 한다. 서쪽에 철마산(鐵馬山)[304m], 망적산[266m]이 남북으로 걸쳐 있고, 북쪽에는 고두산(高頭山)[252m]이 있다. 마을의 주변은 대체로 낮은 지형으로 되어 있고, 군내천의 지류가 있어서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면의 남...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 내동산마을에서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제사. 내동산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룻날 자정에 마을 공동으로 제를 모시는데, 이를 거리제라고 부른다. 제사의 목적은 마을에 잡귀가 붙지 못하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거리제는 원래 마을회관 앞에 있는 소나무 아래에 제단을 마련하여 모셨으나 20여년 전에 소나무가 고사한 후로는 마을회관 안에서...
-
진도의 전통 세습무계. 진도의 세습무계에서 노씨무계의 비중은 매우 작다. 노씨무계 중 1960년대 후반까지 군내면 송산리에 거주하며 판을 소유하고 굿을 했던 노00는 1970년대에 들어서 고군면 오일시 이완순에게 판을 팔아버렸다. 노00의 차남(69)은 “내가 총각 때 이완순과 결혼할 뻔했다. 그때는 완순이가 아니라 귀자라는 이름이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
관광진흥법에 의해 1988년에 지정·개발된 지정관광지. 녹진관광지는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통해 진도 땅으로 들어오는 진입부에 위치하여 진도관광의 관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녹진관광지는 당초 15만 6천 200㎡의 면적으로 지정되었으나, 제2진도대교의 건설과 주5일제 실시 등 관광여건이 크게 개선됨에 따라 지정 면적을 21만 4천㎡로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있는 나루. 1656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진도 우역(郵驛) 항목에 녹진나루 이용자들을 위한 녹진원(鹿津院)이라는 여행객 숙소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형이 사슴의 뿔처럼 생겨서 녹진리(鹿津里)라 하였으며, 녹진나루는 녹진리에서 유래하였다. 진도군 군내면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해남군과 마주보고 있다. 녹진나루 앞에는 물살이 거센 울...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지형이 사슴의 뿔처럼 생겼으므로 녹진이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죽전리, 대사리, 신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녹진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의 망금산(望金山)[111m], 서쪽에 도암산[122m]이 있을 뿐 대부분 지역이 낮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의 북부에 있으며, 동...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망금마을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산포지. 진도대교를 지나 진도각휴게소에서 송산리 방향으로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1.5㎞ 정도 가다 보면 무궁화공원이 나온다. 유적은 공원의 서쪽 구릉 일대에 산재해 있다. 이 유물산포지는 망금산[114.1m]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온 구릉의 말단부에 해당되며, 유적의 남쪽은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해안선과 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속하는 행정리. 1670년경 이씨가 처음 거주하였다고 한다. 마을 뒤 도암산[122m]이 있을 뿐 비교적 낮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면의 중북부에 있으며, 동쪽은 금성리, 서쪽은 고지리, 남쪽은 도암산, 북쪽은 대야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교통은 마을 앞으로 잘 발달된 도로가 있어 북쪽으로는 대야리를 지나 진도대교, 남쪽으로는 용인리를 거쳐 송산리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대사리에 있는 저수지. 1969년 준공했다. 독굴산 남쪽 계곡에 있다. 대사저수지의 둑 길이는 111m이며 둑 높이는 9.5m이다. 수혜 면적은 48.3㏊이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속한 행정리. 1950년 군내북초등학교가 36년 신동에 개설했던 둔전간이학교를 녹진, 죽전, 대사지구의 중심거리이자 삼거리인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이곳을 대사(大沙)와 구별해 대야(大野)라 하고 학교 건설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취락이 형성되었다. 동쪽에 망금산(望金山)[111m]이 있을 뿐 구릉지에 속하고 있어 지형은 낮은 지대이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1445년 이 동네 뒷산에 국영목장이 개설되고 둔전으로 간척사업이 이뤄졌던 것 같다. 목장을 위해 신안주씨가 들어오고 간척을 위해 밀양손씨가 들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의 지역으로서 덕저리, 떡저리, 또는 덕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인리, 한의리를 병합하여 덕병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덕병마을에 세워져 있는 석장승. 매년 정월 보름에 동제(현지에서는 망제라고 부름)를 모시고 있는 덕병마을에는 진살등이라고 부르는 곳에 언제 세웠는지 모르는 두 주의 장승이 서 있었다. 그러나 1989년 어느 날 이들 장승을 도난당했다. 지금 서 있는 장승은 4년이 지난 후 마을에서 협의를 해서 새로 세운 것이다. 모양은 예전의 것과 전혀 다르지만 글자는 똑같...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 덕병마을에서 모시는 마을제사. 덕병마을에서는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모셔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력으로 정월 14일 제반 준비를 끝내고 저녁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마을신들께 제사를 올리는데, 마을사람들은 통상 망제(望祭)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덕병마을의 망제는 세 곳에서 각기 다른 이...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에서 용인리 사이에 있는 방조제. 1945년 광복 후 덕병리에서 용인리에 이르는 350m의 덕병방조제를 준공하였다. 용인리는 덕병방조제 축조 후 진도 각처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이다. 주민들은 덕병방조제로 새로 생긴 간척지에서 천일염을 시작하였다. 1990년대 들어 멀리 나리방조제가 축조되면서 덕병방조제는 관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진도군 군...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저수지에 위치하였던 백조도래지. 둔전마을에 있는 둔전저수지가 1958년 준공되었을 당시 물고기가 풍부하여 백조 200여 마리가 찾아왔다. 백조도래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군내면 둔전마을 백조도래지를 천연기념물 제101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10여 년 뒤부터 물고기가 줄어들었고 1984년 진도대교가 개통된 뒤로 둔전저수지 옆으로 도로가 지나게 되면서 백...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신동리와 고군면 오류리 사이에 축조한 방조제. 조선 시대 둔전(屯田)이 있었으므로 둔전리라 하였으며, 둔전방조제는 둔전리에서 유래하였다. 1956년 군내면 신동리의 도깨비 불치와 고군면 오류리의 뒷개 사이 1,116m를 막아 둔전방조제를 축조하였다. 둔전간척사업에는 간척지 상류 지역 해면에 저수지를 막는 방식이 이용되었다. 둔전방조제는 군내면의 북동쪽에 위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에 위치한 저수지. 조선 시대 이곳에 둔전(屯田)이 있었으므로 마을 이름을 둔전리라 하였으며, 둔전저수지는 둔전리에서 유래하였다. 1956년 둔전방조제를 막은 뒤 새로 생긴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58년 상류 해수면이던 간척지 약 40㏊에 담수를 채워 둔전저수지를 축조하였다. 담수와 갯벌이 만나면서 둔전저수지에는 물고기가 서식하게 되었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속한 행정리. 망금산 아래가 되므로 만금리가 되었으며, 또는 명량을 망보는 망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의이씨가 진도군 고군면에서 살다가 만금리로 입주하면서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전리, 대사리, 신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녹진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1960년대에 마을이 본격적...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있는 산. 망금산은 망금 뒤에 있는 산으로 진도의 관문산이다. 산의 높이는 115m이다. 산정부에 가로 30m, 세로 20m의 토성이 축성된 흔적이 있다. 백제 이후 바다 물목을 지키는 군대 주둔지였다. 충무공 이순신이 진도를 남도(南道)의 요충(要衝)이라 하였고 조선 선조 때 판중추부사 윤두수가 진도를 "가장 중요한 관방지역(最爲緊關之地)"이라 한...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과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 명량해협은 울돌목이라고도 한다. 명량해협은 이충무공의 3대 해전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길목이다.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 간의 좁은 해협인데, 바다의 폭은 한강 너비 정도의 294m 내외이다. 물길은 동양 최대 시속인 11노트에 이르며 젊은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물소리가 크고, 거품...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분토가 나므로 분톳골 또는 분토라 하였다. 현풍곽씨 목사공파 후손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사리, 동산리, 일부와 군이면의 월가리 일부를 병합하여 분토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의 고두산(高頭山)[252m]이 동서로 걸쳐 있으며, 동쪽은 철천산[1...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자리 잡은 마을. 원래 군내면 산너메 동네로 소포동에서 잔등재를 넘어가기 때문에 한문으로 산월(山越)이라 했으나 구한말에 산월(山月)로 바뀌었다. 김해김씨 사군파 임진왜란 공신 김완(金完) 장군의 종손 김세훈(金世勳)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 김씨 사당 광덕사(廣德祠)가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1424년경 김해김씨 김여숙(金汝淑)의 후손 김상태, 김상재,...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상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상가리 고인돌군은 세 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다. 가군 고인돌은 분토리에서 상가리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 왼쪽 밭에 8기의 고인돌이 동서 2열로 흩어져 있으며, 나군 고인돌은 벽파에서 상가리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 오른쪽 밭에 3기의 고인돌이 동서 1열로 놓여 있다. 다군 고인돌은 상가리에서 송산리 쪽으로 도로를 따라 500m...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 상가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유적. 송산리 상가유적은 농로 확장·포장공사와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급수지를 시설하기 위해 2004년 (재)전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움집 터 1기, 구덩유구 1기가 조사되었다. 유물로는 움집 터 내부에서 적갈색연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군내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500m 정도 가다 보면 상가마을에 이르게...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가는 등성이가 되므로 가는골재에서 마을 이름이 나왔다. 세등리 마을은 참봉공의 증손 곽호례(郭好禮)[1541~1591]가 1560년대에 밀양박씨 박령의 사위가 되어 해남에서 건너와 살면서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이면의 유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등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 세등마을 앞에 있는 민간신앙을 목적으로 또는 경사가 있을 때 축하의 뜻으로 세우는 긴 대. 짐대는 장승과 함께 마을 입구에 세워 마을의 위운을 방지하고 마을을 수호하는 신간(神竿)이다.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세등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에 마을 제사를 모신다. 마을 제사는 별신제라고도 하고 거리제라고도 하는데, 세 신위에게 제사를 모신다. 마을 입구...
-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 세등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마을을 위해 올리는 제사.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에 속했으며, 가는 등성이라는 뜻으로 세등(細登)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고이면의 유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등리라는 이름으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주요 성씨는 현풍곽씨로 곽씨 집안이 마을주민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진도의 곽씨는 목사공파와 참봉공파...
-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손판기는 진도에서 손꼽히는 판소리 명창이면서, 진도의 대표적 마을의례인 덕병리 장승제와 덕병농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1919년에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 800번지에서 아버지 손화남과 어머니 조심개 사이에서 태어난 손판기는 아내 이오덕과의 사이에 손국화·손향화·손지자·손성자·손영숙·손대형·손영찬 등을 두었다. 손판기 외에 국악분야에 종사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소나무가 많아 솔뫼 또는 송산이라 하였다. 입향조로 조씨가 먼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가리를 병합하여 송산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에 있는 고두산(高頭山)[252m]지맥의 동쪽에 해당되며, 동쪽에는 철천산[161m]이 있다. 군내면의 동남부에 있...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진도-해남간 국도변, 속칭 ‘세등고개’ 왼쪽 구릉에 8기의 고인돌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송산리 고인돌군은 원래 15기였으나 그 수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은 8기뿐이다. 1968년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에서 남해안 도서 지역의 고고학적 조사 때 13기가 발굴되어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그 후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 송산마을에서 지내는 마을 시제(時祭). 마을 시제를 동네 시제라고도 부르고 있다. 자식이 없던 송산마을 출신의 경주이씨, 원주이씨, 장흥임씨, 유인 청주한씨, 유인 밀양박씨, 강릉유씨, 유인 창령조씨, 장흥임씨 등이 마을에 재물을 기부하고 제사를 지내달라고 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들의 기부한 재물의 규모는 논 2400평, 밭 300평, 임야 1정 등이...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 송산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진도대교를 지나 국도 18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군내면 송산리 송산마을에 이르게 된다. 유물산포지는 송산마을 북동쪽에 자리한 구릉상에 위치한다. 유물산포지 내에는 송산리 고인돌군이 자리하고 있다. 유물로는 회청색경질토기편, 적갈색연질토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현재 이곳은 도강김씨 세장산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맞은편에...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나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의 입향조는 하동정씨로 이들이 조도면에서 살다가 나리 3반으로 편입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범바우, 신기를 병합하여 나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 건배산[118m]이 있을 뿐 낮은 산으로 형성되어 있다. 군내면의 북서부에 있으며, 동쪽은 나리, 서쪽과...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둔전리에 속한 행정리. 1960년대 둔전간척사업 후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1909년에 밀양박씨 박일흥이 입향한 것으로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산리와 신덕리, 덕병리를 병합하여 둔전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에 망금산과 남쪽에 금골산이 있을 뿐 낮은 구릉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둔전리에 속한 행정리. 1920년에 현풍곽씨가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958년에 신동리와 고군면 오류리에 방조제를 막아서 농토가 간척되자 한국동란 때 황해도 이주민을 정착시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산리와 신덕리, 덕병리를 병합하여 둔전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에 금...
-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북을 칠려면 양태옥이만큼 쳐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춤에 일가를 이룬 양태옥은 1918년 군내면 정자리에서 출생하였다. 「진도 북놀이」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비무계 출신으로 정의현과 함께 진도국악원을 설립하는 등 진도 국악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국악협회 전라남도위원으로 재직하였다. 비무계로 신청을...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연산리에 세워져 있는 선돌[立石].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의 행정리인 연산리에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로 불리는 자연석 2기가 세워져 있다. 미륵할아버지와 미륵할머니로도 불리는 이 선돌은 마을이 형성되면서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한 성촌 시기는 알 수 없다. 연산리 입구 앞으로 포장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50여m 떨어진 거리...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연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지. 진도대교를 지나 국도 18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둔전리 연산마을에 이르게 된다. 연산리 유물산포지는 둔산제로 불리는 저수지의 북동쪽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981년도에 개간하여 현재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진도군 문화유적 조사시 처음 발견된 유적으로 1987년 학계에 보고되었다. 연...
-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연산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올리는 마을제사. 전해오는 말로는 1800년경 서씨가 처음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둔전리 일대와 같이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약 55호 정도가 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마을이 형성된 것은 49년여 전이며, 그 전에는 5~6호 정도만 살고 있었다. 비교적 주변에 토지가 많아 사람들이 이 마을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분토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사리, 동산리, 일부와 군이면의 월가리 일부를 병합하여 분토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에 철마산(鐵馬山)[304m], 망적산[266m]이 남북으로 걸쳐 있으며, 북쪽에는 고두산(高頭山)[252m]이 있다. 마을 주변은 대체로 낮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외동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월가리의 행정리인 외동산리의 ‘동삼뫼’라고 부르는 낮은 구릉 남사면에 12기가 모여 있다. 1977년 문화재관리국의 『문화유적총람』에 처음 보고된 유적이다. 그 후 1979년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와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 때다시 조사되었다. 고인돌들은 덮개돌 일부가 이동되어 있고 하부가 도괴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 외동산마을에 있는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유물산포지. 군내면에서 진도읍 쪽으로 국도 18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분토리 외동산마을이 있다. 고인돌은 외동산마을의 저평한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회색연질토기편, 흑갈색연질토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이곳은 현재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근처에 외동산 고인돌군 1, 2가 자리하고 있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덕병리에 속한 행정리. 제주양씨인 양강암이 제주에서 이거하면서부터라고 전하며, 마을 앞에 한의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이면서 마을이 되었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덕저리, 떡저리 또는 덕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인리, 한의리를 병합하여 덕병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는 금골산(金骨山)이...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용장산 밑이 되므로 용장골 또는 용장이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장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는 군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선황산이 있으며, 남쪽에는 상봉, 일출봉 등이 있다. 농경지의 농업용수로 용장저수지의 물을 이용하고 있다. 군내면의 동부에 있으...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 용장리는 진도읍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선돌은 모두 3기가 있는데, 선돌①은 마을의 북쪽 입구에 위치한다. 선돌②는 선돌①로부터 남동쪽으로 2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선돌③은 선돌②로부터 남서족으로 100m 정도 떨어진 마을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용장리 선돌①의 크기는...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용장마을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물산포지. 용장리는 진도읍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유물산포지는 용장마을 입구 주변에 위치하며, 마을주민들로부터 ‘가전들’로 불리고 있다. 서쪽으로 지방도 801호선이 지나가고 있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경작 중에 이곳에서 많은 양의 기와편들과 자기편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현재 밭과 논 주변에도 상당수의 기와편과 자기편...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용장마을에서 매년 지내고 있는 마을제사. 용장마을에서는 두 종류의 동제가 전해오고 있는데, 하나는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마을제사로서 망제(望祭) 또는 들제라고 부르는 제사이고, 다른 하나는 음력 6월 1일에 지내는 충제(蟲祭) 또는 산제(山祭)라고 부르는 제사이다. 망제는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마을사람들의 소망성취를 기원하면서 올리는 제이나, 충제는...
-
...
-
북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성장한 몽고(蒙古)와 같은 유목민족의 가장 중요한 정복대상은 남쪽의 농경민족이었다. 농경민족들이 지니는 풍부한 생산품이 그 구미를 돋우어 준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금(金)·송(宋)과 함께 고려도 몽고의 침략 대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금을 치고 남송(南宋)과 일본(日本)을 정복하기 위한 기지를 구하려는 목적도 몽고가 고려에 침략의...
-
진도의 삼별초정권은, 이를 나위조차 없는 일이지만, 반몽(反蒙)을 기치로 내세웠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배중손이 노영희 등과 더불어 변란을 일으키고서는, 사람을 시켜 나라 안에 외치기를 몽고 군사가 크게 이르러 인민(人民)을 마구 죽여 대니, 무릇 나라에 힘이 되고자 하는 이는 모두 격구장(擊毬場)으로 모여라’라고 하였다. 잠깐 동안에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들었...
-
진도의 삼별초정권이 조운로(漕運路)를 장악하자 개경정부의 재정상태는 곤핍을 극하게 되었다. 당장 시급한 군량(軍糧)조차 제대로 맞춰서 대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 빨리 진도 를 되찾는 것이 개경정부 존립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원나라의 입장에서도 삼별초와 남송의 동맹을 방지하고 또한 일본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도 를 점령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8...
-
삼별초(三別抄)는 최씨 무인정권에 의해서 창설된 군사조직이었다. 야간순찰과 같은 공적(公的)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게 그 명분이었다. 그 시초는 최씨정권의 제2대 집권자인 최이가 수도의 치안을 빙자해서 창설한 야별초(夜別抄)라는 특수부대였다. 무인의 일당인 악소(惡少)의 무리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막아 그 정권을 공고히 할 목적에서였다. 이 야별초가 후에 소속 군인...
-
삼별초는 반개경정부(反開京政府) 그리고 반몽고(反蒙古)의 노선을 표방하며 거사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초하루의 일이었다. 앞서 같은 해 5월 23일에 재상들이 회의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결정하자 삼별초는 그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킬 속셈을 처음 드러냈었다. “재추(宰樞)가 모여 옛 서울로 돌아갈 것을 의논하고 날을 정하여 방(榜)을 붙이니, 삼별초가 딴...
-
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곧바로 새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도성인 용장성(龍藏城)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둘러싼 용장산성(龍藏山城)의 안쪽, 즉 현재의 용장리 일원이 그곳이다. 여기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변의 고인돌 등으로 미루어 늦어도 청동기시대 즈음에 주민이 거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후 삼국을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도...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용장사에 있는 고려시대 약사삼존불. 진도 용장성 아래에 있는 용장사 약사전에 봉안된 삼존석불로서, 약함을 든 본존과 좌우 협시로 구성된 삼존이며 광배와 대좌를 갖추었다. 고려 전반으로 추정되는 고식(古式)이 보이지만 전반에 걸쳐 시멘트로 보수하여 원형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용장사 삼존석불은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지방화된 개성적인 특징을 보인다. 육계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 용장사지는『옥주지』의 기록에서 그 연혁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1985년에 나온『진도용장성지표조사보고서(珍島龍藏城地表調査報告書)』에 따르면 용장성지는 258만평이라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조사되었다. 이곳에서 조사된 건물지 유구 가운데 초석의 형식 등으로 보아 삼별초군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월가리 마을은 약 600여 년전 홍씨와 양씨가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홍씨와 양씨는 한 사람도 없다. 본래 진도군 군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자리 일부와 군일면의 동산리 일부, 부내면의 당동리 일부, 고이면의 석현리 일부를 폐합하여 월가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월가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 진도읍에서 포장도로를 벗어나 월가리 쪽으로 접어들면 도로 동쪽에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옆에는 주민들이 ‘미륵등’이라고 부르는 작은 고개가 있다. 이곳에서 월가리 쪽으로 300m 정도 가면 도로 동편에 1기의 선돌이 있다. 선돌은 원래 마을 우측의 저수지 부근에 세워져 있었으나 저수지를 만들 때 쓰러져 방치되었다. 그러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월가리 월가마을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월가마을은 외동산마을과 동쪽으로 마주보고 있다. 유물산포지는 월가마을 남쪽의 야트막한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유물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의 기와편, 자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동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월가리 선돌이 자리하고 있다....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월가리에 위치한 저수지. 1963년 군내면 월가리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하였다. 진도읍과 군내면의 경계인 정거름재 밑에 위치한다. 18번 국도가 월가저수지를 지난다. 월가저수지의 면적은 118.6㏊, 제방 높이는 14.2m, 제방 길이는 510m이다. 월가저수지 주변에는 사당 3개가 있다. 월가저수지 아래로 군내천이 흐른다....
-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이병기는 진도에서 판소리의 명창보다 판소리 선생으로 더 유명하다. 이병기에게 판소리를 배워 현재까지 활동 중이거나 ‘이병기 소리’를 하는 제자들로는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의 박병임, 지산면 고길리의 이민석, 지산면 거제리의 박병기 등이 있다. 이병기는 판소리 강습생이었던 이임례와 혼인하여 이태백을 낳았고, 자녀 이태백은 현재 아쟁 전문가로서 목원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세등리에 속한 행정리. 장언리 마을은 밀양박씨와 김해김씨가 둔전 간척답 경작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1952년에 김대영이 둔전 간척사업장 인부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이면의 유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등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는 선황산,...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월가리에 속하는 행정리. 정거리는 월가리 10반으로 편입되어 있다가 2005년 진도군 조례 제18125호에 의거하여 월가리에서 독립되었다. 철마산(鐵馬山)에서 이어진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거치의 산록 완경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월가제(月加堤)가 위치한다. 북동쪽은 고군면 석현리, 북서쪽은 군내면 월가리, 남서쪽은 정거름재를 경계로 진도...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진도군 군이면의 지역으로서, 정자나무가 있었으므로 정자몰 또는 정자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정자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남동쪽은 군내면 월가리, 동쪽은 군내면 분토리, 서쪽은 진도읍 수역리, 북쪽은 군내면 덕병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의 입향조는 밀양박씨로 박맹수의 증조부이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정자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정자마을 앞 250m 가량 떨어진 중매산 아래에 있는 몰무덤재라 불리는 고개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 고개에 말무덤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밭으로 개간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진도군 문화유적 조사시 처음 발견된 유적으로 1987년 학계에 보고되었다. 정자리 유물산포지에서 수습된 유...
-
진도군 군내면 정자리 정자마을에서 올리는 마을제사. 본래 진도군 군이면에 속했지만,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정자리로 바뀌어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입향은 홍씨가 먼저 했다고 전하며, 다음에 들어온 밀양박씨가 현재 14대째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400여년 이상 된 마을이다. 지금은 간척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고려말에 조희주가 이곳으로 귀양을 와서...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녹진리에 속한 행정리. 1400년 말 능성구씨가 입향하였다고 전해지나 사실적 근거는 찾기 어렵다. 해남에서 처음 진도로 건너온 원주이씨, 남평문씨 등의 첫 정착지이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죽전리, 대사리, 신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녹진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서쪽에는 건배산[118m]이 있을...
-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죽전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모시는 마을제사. 본래 진도군 군일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지형이 사슴의 뿔처럼 생겼다 해서 녹진(鹿津)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죽전리, 대사리, 신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녹진리라 불리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울돌목, 망금산, 노적봉 등의 고적이 있어서 유명하다. 죽전마을에는 1400년대 말 능선구씨가 입향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금골산 어귀에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 현재 금골산의 어귀에 금성초등학교가 있는데, 원래 이곳에는 고려시대 때 지어진 해원사(海院寺)가 있었다고 전한다. 진도 금골산 오층석탑은 금성초등학교 교정 가에 위치해 있다. 진도 금골산 오층석탑은 단층의 기단에 오층의 석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1층 탑신의 폭이 좁으면서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지대석은 4장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있는 농업기술 연구·보급을 위한 지방 행정기관. 농업발전에 관한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연구·개발·보급함으로써 진도군의 농업생산성과 농업경쟁력을 높여 궁극적으로는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는 데 목적이 있다. 8·15광복 이후 농촌진흥을 위한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1947년 12월에 전라남도에는 지방교도국이, 전라남도 진도군에는 농사교도소가 설립되었다. 1957년...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鶴洞)과 진도군 군내면 녹진(鹿津) 사이를 연결하는 교량. 진도대교는 1981년 4월 27일 기공식을 갖고 1984년 10월 18일 준공되었다. 하지만 32t 이상의 차량통행이 곤란한 2등교로서, 진도 농산물이 뭍으로 원활히 수송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따라 1999년부터 제2진도대교 건설이 제기되어, 2005년 12월 15일 쌍둥이 다리로 개통...
-
진도대교 준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탑. 1984년 10월 18일 진도대교가 준공됨에 따라 섬이던 진도가 육지와 연결된 것을 기념하여 현대건설이 건립한 기념탑이다. 진도대교 준공탑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녹진관광지 내에 세워져 있다. 진도대교 준공탑은 기념 조형물 형태로 지어진 탑이다. 상단에는 화강암으로 된 환조물이 있고, 하단에는 대리석 위에 부조가 새겨져 있다. 상...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있는 산성. 초축시기는『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고려 말 삼별초의 진도 진입 시에 왕온이 쌓은 것으로 밝히고 있으나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통일신라의 유물이 주를 이루고 있어 이 시기에 산성이 가장 활발하게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 삼별초와 정유재란 당시의 명량대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최소심은 1908년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성장배경이나 집안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최소심은 젊어서부터 강강술래뿐만 아니라 「진도 아리랑」도 잘 불렀으며, 특히 밭일을 하면서 부르는 「남도 들노래」를 비롯하여 많은 민요 가창에 능했다. 양홍도(梁紅道)의 뒤를 이어 1976년 강강술래 기·예능보유자로...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속해있는 섬. 명량대첩 당시 수장(水葬)된 일본 수군의 피가 스며들어 붉게 보인다 하여 피섬으로 부르게 되었다. 피섬은 규석 계열의 붉은색 암반으로 이루어졌다. 진도군과 해남군 사이에 있는 명량해협(울돌목) 가운데 위치했으나 지금은 녹진관광지에 포함되어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망금산 관방성에서 50m 거리에 있다. 피섬의 면적은 331㎡, 높이는 2...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분토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사리, 동산리 일부와 군이면의 월가리 일부를 병합하여 분토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에는 고두산(高頭山)[252m]의 줄기가 동서로 걸쳐 있는데, 그 중간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군내면의 남부에 있으며, 동쪽은 송산리, 서쪽은 정자리, 남쪽은 월...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한사리 190번지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절터. ‘한산사(寒山寺)’ 또는 ‘한사’로 전하고 있지만 문헌기록에는 없다. 이 마을의 정순홍씨 밭에 소재하고 있는데 주민들은 이곳을 ‘절고랑창’ 또는 ‘절골’이라 부르고 있다. 한사리사지는 군내면 한사리 190번지, 즉 한사리 마을 뒤 북쪽편의 마령산 아래 저평한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절터에서 삼층석탑으로 보인...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한사리 한사리사지 내에 있는 석탑재.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한사리 190번지에 있는 한사리사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사리사지 석불좌상이 같은 터에 있다.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석탑의 각 부재가 흩어져 있어서 원형을 파악할 수 없다. 옥개석은 3개이며, 기단과 탑신을 이루고 있는 석재도 있다. 재질은 화강암이다. 기단 한 변의 길이는 71㎝,...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덕병리에 속한 행정리. 원래는 섬이었으나 1970년대 간척사업으로 연륙되었다. 정자리 북쪽 섬이라 옛말에 따라 ‘하늬섬’이라 했던 것이 한문으로 한의(寒衣)가 되었다. 마을의 입향조는 현풍곽씨와 경주김씨로 1815년경에 입촌한 것으로 전해온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덕저리, 떡저리 또는 덕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한의도(寒衣島)와 덕병리 사이에 위치한 방조제. 1963년 임회면 석교리 출신 박정준이 수류 지구 간척지 매립허가를 받아 한의도와 덕병리 학동 사이 1㎞에 제방을 축조한 후, 한의도와 전두리 사이 3.4㎞에 10년 동안 제방을 축조하였다. 진도군 군내면의 서남쪽에 위치한다. 803번 지방도에서 갈라진 4차선 도로가 한의방조제를 지난다. 한의방조제의 길이는 4...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 원래 사찰의 명칭이 해언사(海堰寺)·해안사(海岸寺)·해월사(海月寺) 등으로도 전해내려 오고 있으나 가장 오랜 기록인 이주(李胄)의 『금골산록(金骨山錄)』에 해원사(海院寺)로 기록되고 있다. 해원사지(海院寺址)는 군내면 둔전리 94-1 일대 금골산 아래의 금성초등학교 교정에 위치한다. 1973년 학교주변을 정리하면서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