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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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朱潛 |
이칭/별칭 | 청계(淸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오경택 |
출생 시기/일시 | 1194년 - 주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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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212년 - 주잠 중국 남송에서 고려로 건너 옴 |
몰년 시기/일시 | 1260년 - 주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24년 - 주잠 주천 서원에 배향 |
출생지 | 주잠 출생지 - 중국 하남성 낙양시 신안현 |
거주|이주지 | 주잠 이주지 - 전라남도 나주시 |
거주|이주지 | 주잠 이주지 - 전라남도 화순군 |
거주|이주지 | 주잠 이주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
사당|배향지 | 주천 서원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신안(新安) |
대표 관직|경력 | 비서각 직학사 |
[정의]
고려 후기 남송에서 귀화하여 진안에 은거한 신안 주씨 시조.
[가계]
본관은 신안(新安), 호는 청계(淸溪). 증조할아버지는 주자(朱子)이고 할아버지는 안양후(安陽候) 주야(朱埜)이고 아버지는 광국후(光國候) 충무공(忠武公) 주거(朱鋸)이다. 아들은 추밀원밀직사(樞密院密直司)를 역임한 주여경(朱餘慶)이고 손자는 지도첨의사(知都僉議事)를 역임한 주열(朱悅)이다.
[활동 사항]
주잠(朱潛)[1194~1260]은 중국 하남성 낙양시 신안현에서 태어났다. 본래 남송 대의 인물로 과거에 급제한 이후 한림 학사(翰林學士)와 태학사(太學士)를 거쳐 관직이 비서각 직학사(秘書閣直學士)에 이르렀다. 그 후 점차 국운이 쇠하던 남송이 원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게 되자 1212년(강종 1) 주잠은 가족과 문인 도성하(陶成河)·두행수(杜行秀)·섭공제(葉公濟)·유응규(劉應奎)·조창(趙昶)·주세현(周世顯)·진조순(陳祖舜) 등 7명의 학사(學士)들을 이끌고 고려로 피신하였다.
처음에는 전라도 금성(錦城)[현 나주시]에 거주하였다가, 얼마 뒤 원나라의 세조가 고려로 피신한 송의 구신(舊臣)들을 압송해 가려고 하자 다시 전라도 능성(綾城)[현 화순군]으로 옮기면서 이름을 적덕(積德)으로 바꾸었다. 이후 다시 무주 무풍면(茂豊面)을 거쳐 진안군 주천면 신안촌에 은거하다가 1260년(고려 원종 1)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의 주천 서원(朱川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