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21 |
---|---|
한자 | 玲瓏臺 |
이칭/별칭 | 김장군조대(金將軍釣臺)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복교리 82-1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태성 |
건립 시기/일시 | 1568년 - 영롱대 건립 |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3년 - 영롱대 중건 |
이전 시기/일시 | 1975년 - 영롱대 도로 확장 공사로 이건 |
이전 시기/일시 | 1987년 - 영롱대 주암댐 건설로 이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7년 1월 5일 - 영롱대 전라남도 화순군 향토 문화유산 제34호로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7년 - 영롱대 중수 |
현 소재지 | 영롱대 -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복교리 82-13 |
성격 | 누정 |
양식 | 단층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로 재실을 갖춘 구조 |
정면 칸수 | 2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광산 김씨 문중 |
관리자 | 광산 김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화순군 향토 문화유산 제34호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있는 조선 전기 김곤변이 지은 누정.
[개설]
영롱대의 주인 김곤변은 퇴계의 문인으로 한강 정구, 은봉 안방준, 송강 정철,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의 당대 명사들과 교우하였다. 김곤섭은 산수를 사랑하여 광주에서 일부러 이곳으로 이거하여 마을 동쪽 농암(瓏巖) 위에 이 영롱대를 지었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호를 농재산인(瓏齋散人)이라고 하였다. 그의 조카였던 의병장 김덕령 역시 숙부인 김곤변을 마치 친부모처럼 잘 따랐다고 한다.
[위치]
현재 화순군 남면 복교리 82-13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선조 때 사람 농재(瓏齋) 김곤변(金鯤變)[1541~1592)이 건축하였다. 그의 조카인 충장공 김덕령(金德齡)[1567~1596]이 광주에서 이곳까지 와서 낚시를 했다는 일화로부터 혹자들은 김장군조대(金將軍釣台)라고도 부른다. 정내에는 정조 때에 내려진 「김충장 유사서(金忠壯遺事序)」가 편액되어 있다. 1903년에 중건하였으며, 석교 마을 앞을 흐르는 충용강 가에 있었으나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하여 1975년에 이건되었다가 1989년 주암댐 공사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형태]
영롱대는 단층의 팔작지붕 골기와를 얹은 누정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에 중재실이 있는 구조이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기둥 1주와 서까래, 그리고 번와만 하였을 뿐, 모든 부재는 건립 당시의 것이라고도 한다.
[현황]
제액은 정구가 썼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영롱대 정사 중수 상량문」이 있다. 2007년 1월 5일 전라남도 화순군 향토 문화유산 제34호로 지정되었고 광산 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롱대는 매년 광산 김씨 집안에서 방첩(榜牒)을 내어 보성, 화순, 광주 등지에서 유림들이 음력 4월 5일에 모여 시회를 열었는데, 주암댐 공사 이후에 그 맥이 끊겼다고 한다. 누정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한 무형의 전통을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시회가 다시 열릴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