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1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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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務安朴氏烈女閣 |
영어공식명칭 | Muan Bakss Yeollyeogak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372-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경 |
건립 시기/일시 | 1737년 - 무안박씨 열녀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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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7년 - 무안박씨 열녀각 중수 |
현 소재지 | 무안박씨 열녀각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372-2 |
성격 | 열녀각 |
양식 | 목조기와 맞배지붕형식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여흥민씨 문중 |
관리자 | 여흥민씨 문중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열녀각.
[개설]
열녀 무안박씨는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품성이 곧고 정숙하였으며, 법도에 따라 행동하였다. 19세에 해남군 마산면 남송리 민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민정수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출가한 지 3년 만에 남편이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다. 무안박씨는 슬픔에 겨워하다 몸이 야위어 갔다. 남편의 장례 일정이 정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웃을 찾아가 “나는 이미 죽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무슨 마음으로 구차하게 질질 끌겠습니까? 다만 시아버님은 간장병을 앓고 계시고, 어린 아들은 마마를 겪고 있는데 아직까지 낫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만 품어 두고 머리 숙여 생각에 잠긴 채 기다려왔습니다. 이제 시아버님의 병환이 조금 나으셨고, 남편의 장례 날짜도 정해졌으니 나는 죽어서 마땅히 남편과 한 무덤에 묻히는 귀신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가을 암행어사 한광해(韓光海)가 지나다가 무안박씨의 빈소를 보고 조정에 열행장을 올렸다.
조정에서는 1737년(영조 13)에 정려(旌閭)를 명하고, 열녀각(烈女閣)을 건립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 관찬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1759] 해남 열녀조에 처음 기록이 나온다.
[위치]
무안박씨 열녀각(務安朴氏烈女閣)은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372-2 서림공원 안에 있다.
[변천]
조정에서는 1737년(영조 13)에 정려(旌閭)를 명하고, 열녀각(烈女閣)을 건립하도록 하였다. 현재의 열녀각은 여흥민씨 후손에 의해 1977년 중수된 것이다.
[형태]
무안박씨 열녀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태이다. 내부에는 열행 사실이 기록된 편액 2기가 있다.
[현황]
무안박씨 열녀각은 1977년 중수되어 여흥민씨 문중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있다. 열녀각 바로 앞에는 최근에 세운 ‘열녀무안박씨정려사적비(烈女務安朴氏旌閭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무안박씨 열녀각과 나란히 민씨 집안의 4충신을 모신 충신각이 있다.
[의의와 평가]
무안박씨 열녀각은 조선 시대 열행을 실천한 인물의 정려각으로 귀중한 정신 문화유산이며, 4충신이 배출된 여흥민씨 문중사를 살필 수 있는 해남 향토학 현장 자료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