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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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達儒 |
영어공식명칭 | Im Dalyu |
이칭/별칭 | 영유(永有),묵암(默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경 |
출생 시기/일시 | 1829년 - 임달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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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88년 - 임달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90년 - 임달유 조봉대부 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에 증직, 정려 포상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
사당|배향지 | 임달유효자각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장흥(長興) |
[정의]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효자.
[가계]
임달유(任達儒)[1829~1888]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영유(永有), 호는 묵암(默巖)이다.
[활동 사항]
임달유는 1829년(순조 29)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우애가 깊었고 커서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서리나 우박이 내리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하지 않았다. 밤늦게 돌아오면 산에서는 호랑이가 들에서는 귀신이 길을 안내하며 보호해 주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생사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입에 피를 넣어드려 며칠 더 연명하도록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 때와 같이 시묘살이에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임달유는 1888년(고종 25)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임달유의 효행이 널리 알려지자 박상덕(朴相德) 등이 조정에 건의하여 1890년(고종 27) 조봉대부 동몽교관(朝奉大夫童蒙敎官)에 증직되었고, 같은 해 정려를 포상받았다. 현재 임달유효자각(任達儒孝子閣)은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에 있으며 정면과 측면 각 한 칸의 맞배지붕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