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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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與顔 |
영어공식명칭 | Min Yeoan |
이칭/별칭 | 자우(子愚),귤주(橘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윤섭 |
출생 시기/일시 | 1565년 - 민여안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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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1년 - 민여안 중사마시 갑과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646년 - 민여안 사망 |
출생지 |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동외리 |
거주|이주지 | 전라남도 나주시 |
묘소|단소 |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여흥 |
[정의]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신.
[개설]
민여안(閔與顔)[1565~1637]은 본관이 여흥(驪興), 자는 자우(子愚), 호를 귤주(橘洲)라 하고, 속칭 민처사(閔處士)라고 하였으며 해남의 귤정 윤구, 귤옥 윤광계와 더불어 ‘해남 3귤’로도 불린다
[활동 사항]
민여안은 1565년(명종 20) 해남읍 동외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눌재(訥齋) 박상(朴祥),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으로부터 학문을 익혔다. 1601년(선조 34) 중사마시(中司馬試) 갑과(甲科)에 합격해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다.
민여안은 학문이 높았으며 해남 남각산 아래에 초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윤광계, 백진남(白振南) 등과 가깝게 지내며 학문적으로도 교류하였다. 만년에는 현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로 이주해 살다가 1646년(인조 24) 사망하였다. 민여안 사망 후 지역 유림이 해촌사(海村祠)에 추배하기로 결의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문과 저술]
민여안의 저술로는 시문집인 『귤주집(橘洲集)』이 전한다. 『귤주집』에는 여러 편의 시가 실려 있으며 남각산 아래에서 안빈낙도하며 신선처럼 살고자 한 민여안의 삶이 엿보인다.
[묘소]
민여안의 묘소는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