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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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坪里山城 |
영어공식명칭 | Ilpyeongri Mountain Fortress |
이칭/별칭 | 당뫼산성,일평리성,죽금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 854-32 일대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신동범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 일평리 산성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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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3년 - 일평리 산성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 재조사 |
현 소재지 | 일평리 산성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 854-32 일대 |
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1.1m[높이]|5.4m[길이]|250m[둘레]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자 해남현의 치성이었던 산성.
[개설]
일평리 산성(日坪里山城)은 삼국시대 토기편이 수습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축조된 성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해남 지역은 백제에 병합된 이후 백제식 행정 구역인 현산면 부근에는 새금현(塞琴縣)이 설치되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침명현(浸溟縣)이 되었으며, 고려 때 해남현(海南縣)이 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 황원군(黃原郡)·죽산현(竹山縣)과 통합되어 해남현이 되었다. 일평리 산성은 1412년(태종 12) 치성(治城)을 옥산고성으로 옮기기 전까지 해남현의 치소였다.
[건립 경위]
일평리 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평리 산성은 조선 초기 해남현의 치성으로 해남 반도 해양 교류의 중심지로 보인다.
[위치]
해남군 현산면 일평리는 해남면사무소 소재지이다. 현산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가면 해발 52.2m의 낮은 산 하나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당뫼’라 부른다. 당뫼를 따라 올라가면 산성이 나오는데, 일평리에 있어 일평리 산성이라 하며, 당뫼에 있다고 하여 당뫼산성, 또는 일평리성, 죽금성(竹禁城)이라고도 한다.
[형태]
일평리 산성은 산성의 형태가 테뫼식이다. 테뫼 형태는 속에 돌을 넣어 다지고 바깥은 흙으로 다져서 성을 쌓는 석심토축(石心土築)이다. 입지 조건 및 축조 방식에 따라 축조 시대를 삼국시대로 추정하기도 한다. 산성의 중봉 남벽에서는 옹관편 및 경질토기편 등이 집중적으로 수집되었다. 일평리 산성에 인접한 현산초등학교 뒤편은 본래 고분군이 밀집한 지역으로 다량의 가야토기가 출토되었다.
[현황]
일평리 산성은 본격적인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2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의 조사에 따르면 높이 1m, 길이 15m의 석축이 남아 있으며 건물지의 주춧돌로 보이는 구조물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2013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그 사이 훼손이 더욱 심해져 성의 범위를 확인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성의 남동쪽 성벽 일부가 확인되고 나머지는 민묘 조성과 대나무 숲이 우거져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남아 있는 성벽은 높이 1.1m, 길이 5.4m 정도이며, 성의 둘레는 250m로 추정한다.
[의의와 평가]
일평리 산성은 해남현의 치성이었던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 송지·완도 방면으로 백방산성, 고다산성, 읍호리성지 등이 외호하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 일평리 산성은 고대 해양 교류의 중심지였으며, 이후 치소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