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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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原縣 |
영어공식명칭 | Hwangwon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황산면|산이면|문내면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신동범 |
제정 시기/일시 | 757년 - 황원현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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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940년 - 황원현이 황원군으로 개정 |
관할 지역 | 황원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황산면|산이면|문내면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을 비롯하여 황산면·산이면·문내면 등 화원반도 일대를 주축으로 하였던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개설]
통일신라 9주 가운데 무주[무진주, 지금의 광주광역시] 관할의 군현 수는 15군과 43현이었다. 당시 황원현은 양무군(陽武郡)의 영현(領縣)에 속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황원현(黃原縣)은 백제 때에 황술현(黃述縣)이었는데,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이름이 바뀌었다. 주군현 간의 영속관계를 강화하면서 행정구역명이 바뀌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양무군조에 따르며 “황원현은 원래 백제의 황술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에 따르면 “황원군(黃原郡)은 본래 백제의 황술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쳐 양무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 들어 내속시켰다. 삼내도(三內島)·죽도(竹島)·노도(露島)가 있다.”라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황원은 본래 백제의 황술현이었는데, 신라에서 황원으로 고쳐서 도강(道康)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고쳐서 영암의 임내(任內)로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황원은 본래 백제의 황술현이었는데, 신라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양무군에 딸린 현이 되었으며, 고려 때에는 영암군에 예속되었다가, 뒤에 본현에 내속되었다. 목장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황원현은 현재의 화원반도 지역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현재의 화원면을 비롯하여 황산면·산이면·문내면 등 화원반도 일대로 비정하기도 한다. 또 치소는 황원곶과 인접한 문내면 용암리 원문토성으로 보고 있다.
[변천]
해남 지역은 삼국이 정립되는 시기까지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4세기 근초고왕 무렵 백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복속되기는 했으나 다시금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다. 해남이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에 들어간 것은 6세기 성왕대 담로제 실시 시기와 5방(方) 1군제(郡制) 사이인 것으로 보인다. 백제 때에 황술현이었다가 통일신라 때에 황원현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양무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때 이르러 황원군(黃原郡)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영암군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 1447년(세종 29) 진도군과 해남현이 분위되는 시기에 문내면 고당이 중심이었던 황원군은 독자적인 행정구역으로 영암군 관할이 되었다. 1447년(세종 29) 죽산현과 황원군이 해남으로 이속되는데 이는 목장이 있었던 황원군을 거리가 먼 영암에서 관리하기 힘들어서 해남현으로 편입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해남 지역 행정구역의 연원과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