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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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淑突 |
영어음역 | Gang Sukdol |
이칭/별칭 | 자양(子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동인 |
성격 | 문신|서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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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몰년 | 1515년 |
본관 | 금천 |
대표관직 | 승문원판교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
[가계]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자양(子讓). 증조할아버지는 강양(姜揚)이고, 할아버지는 강비웅(姜非熊)이며, 아버지는 강희(姜曦), 부인은 성홍령(成洪齡)의 딸이다. 외할아버지는 성복동(成福仝)이다. 증손자로 여주목사를 지낸 강찬(姜燦)이 있다.
[활동사항]
강숙돌(姜叔突)[?~1515]은 1492년(성종 23)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사관(史官)과 의금부도사를 거쳤다. 1496년(연산군 2) 사헌부지평이 되어 공신들의 가자(加資)가 외람됨을 지적하는 등 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사간원사간으로 있을 때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추숭을 반대하다 황해도 재령으로 장류(杖流)되었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1507년(중종 2) 광주목사에 서용(敍用)되었다. 이때 백성들의 진휼(賑恤)을 소홀히 하고 백성들을 다스림에 근면하지 못하다는 경기도관찰사의 장계에 따라 한때 파직되었으나,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에 다시 서용되었다. 1514년(중종 9) 좌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추천으로 청백리로 녹선(錄選)되었으며, 그 포상으로 가자되어 당상관에 올라 행호군(行護軍)으로 재직 중에 세상을 떠났다. 성품이 본래 청렴하여 집이 몹시 가난하였으며, 글씨를 잘 써서 당대에 명필로 이름이 높았다.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