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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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明永懷園 |
영어공식명칭 | Royal Burial Site of Yeonghoe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 141-2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만용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1년 10월 25일 - 광명 영회원 사적 제35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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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광명 영회원 사적 재지정 |
성격 | 묘소 |
건립시기/일시 | 1646년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 141-20 |
소유자 | 국유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
[정의]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소현세자의 빈 강씨의 묘소.
[개설]
광명 영회원(永懷園)은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제1왕자인 소현세자의 빈 강씨의 묘소이다. 강씨의 본관은 금천이고, 시호는 민회빈(愍懷嬪)이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와 고령신씨(高靈申氏) 사이에서 5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1627년(인조 5) 9월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12월에 가례를 올렸다. 1636년(인조 14) 원손인 이석철(李石鐵)을 낳았고, 이어서 별손인 이석린(李石麟)과 군주(君主)[딸] 세 명을 낳았다.
강빈(姜嬪)은 병자호란 뒤인 1637년(인조 15)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갔다가 잡혀간 지 9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이후 강빈과 반목하던 인조의 총비(寵妃) 조소용(趙昭容)에 의해 “강빈이 인조를 저주하였다”는 무고와 수라상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를 받아 후원 별당에 유치(幽置)되었다가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646년 3월 사사(賜死)되었다. 이어 강빈의 친정어머니와 4형제는 모두 처형 또는 장살(杖殺)되었고, 어린 세 명의 아들도 모두 귀양을 갔다. 효종 때 황해도관찰사 김홍욱(金弘郁)이 신원을 건의했으나 묵살되었고, 1718년(숙종 44) 비로소 복위되었다.
[위치]
광명 영회원은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141-2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민회빈 강씨가 사사되고 선산인 경기도 광명시에 묻힌 지 73년이 흐른 1718년(숙종 44) 4월 민회빈 강씨의 무고함이 판명되어 위호를 복위시키고, 시호는 민회빈이라고 정하여 신원(伸寃)시켰다. 또한 숙종은 민회빈 강씨의 총명함과 덕을 칭송하면서, 손수 제문을 지어 민회빈 강씨의 원혼을 위로하는 한편, 묘소를 개봉하는 대규모의 역사를 진행시켜 소현세자의 신주를 함께 묻게 하였다. 민회빈 강씨의 묘는 처음에 민회원으로 추존되었다가 1903년(고종 40)에 다시 광명 영회원으로 개칭되었다. 일명 애기릉, 아왕릉(兒王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형태]
광명 영회원의 봉분 앞에는 혼유석, 장명등이 있고, 봉분의 좌우에는 문인석, 망주석, 석양, 석마, 석호 등이 있으나, 비석과 정자각은 남아 있지 않다.
[현황]
광명 영회원은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5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