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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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貢- |
영어의미역 | Gongseokgol Village |
이칭/별칭 | 공세동,유등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영수 |
[정의]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조선 명종 대에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성몽규(成夢奎)가 살면서 군자감에서 필요로 하는 공물과 세금을 받아들이고 출납하였던 곳이어서 공세동이라 하였다. 이후 발음이 변하여 공석이 되었다.
[형성 및 변천]
공석골은 조선 말기 시흥군 남면 유등리(柳等里)에 속하였고, 1914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가학리에 속하였다. 1964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가학3리에 속하였고,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속하였다. 현재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학온동 7통이다. 유등리는 마을 동쪽에 문화유씨 묘역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문화유씨족보』에 따르면, 광해군의 장인 유자신(柳自新)[1533~1612]의 고손으로 성균관진사를 지낸 유성균(柳聖龜)[1620~1671]의 묘를 쓴 뒤로 지후사공파 후손들이 묘 아래에 세거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 이후 창녕성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광명·시흥·안양 일원에서 성씨 하면 으레 공석골 성씨를 연상할 만큼 크게 번성하였다.
[현황]
뒷골을 지나 가학로를 북쪽 방향으로 따라가다 고개를 넘으면 공석골이다. 동서로 길게 이루어진 마을로 가학로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어 있다. 가학로 서쪽 지역은 마을 입구부터 음식점과 동진포장 등의 공장 건물이 들어섰고, 공석동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예전의 마을길을 따라 공장과 창고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주택은 몇 동밖에 없고 금형 부품업체인 서울신소재의 공장을 비롯한 조립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예전의 마을 모습과는 많이 바뀐 상황이다.
가학로 동쪽 지역은 도로변에 공세동 마을회관이 있고 그 뒤로 고갯길을 따라 오르면 마을 정자가 있다. 여기서 공석골 위쪽 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을 입구에서 가재골로 이어지는 마을길을 따라 택배 회사 창고, 형제상사, 대광펀칭 등의 조립식 공장과 창고가 들어서서 마을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공석골 출신 인사로는 명종 대에 군자감정을 지낸 성몽규, 1898년과 1904년 두 차례에 걸쳐 시흥 농민 봉기를 주도한 성우경(成禹慶), 1855년(철종 6) 문과에 급제한 뒤 승정원승지·돈녕부도정·사간원대사간을 지낸 성하경(成夏慶)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