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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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梅性 |
영어공식명칭 | Jang Maes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보라 |
출생 시기/일시 | 1911년 6월 22일 - 장매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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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8년 - 장매성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11월 - 장매성 소녀회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11월 3일 - 장매성 광주학생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10월 - 장매성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 선고받음 |
활동 시기/일시 | 1968년 - 장매성 대통령 표창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0년 - 장매성 건국훈장 애족장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1993년 12월 14일 - 장매성 사망 |
출생지 | 전라남도 광주군 부동방면 금계리 |
학교|수학지 | 전남여자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158번길 8[장동 39-12]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 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대표 경력 |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소녀회 회원 |
[정의]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장매성(張梅性)[1911~1993]은 전라남도 광주군 부동방면 금계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장원용과 어머니 최예언 사이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전라남도 광주 지역 학생운동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장재성(張載性)의 동생이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장경례(張慶禮), 박옥련(朴玉連) 등 학생들을 규합하여 소녀회(少女會)를 조직하였으며, 광주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소녀회의 조직이 발각됨에 따라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1928년 11월 5일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장경례, 박옥련 등 학생들을 규합하여 광주사범학교 뒷산에서 항일 학생 결사 소녀회를 조직하였다. 장매성을 비롯한 소녀회 회원들은 조국의 독립과 여성 해방을 목적으로 매월 1회 월례 연구회를 통하여 항일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소녀회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부상 학생 치료, 식수 공급, 돌멩이 운반 등 시위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 학생운동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장재성의 동생이기도 한 장매성은 오빠를 도와 2차 학생 시위 준비과정에서 연락책으로 활동하는 등 시위에 적극 가담하여 경찰 감시를 받았고, 그 후 소녀회의 조직이 발각됨에 따라 1930년 1월 15일 검거되었다.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장매성은 1993년 12월 14일 사망하였다.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2묘역-83호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