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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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炳蘭 |
영어공식명칭 | Mun Byeongran |
이칭/별칭 | 서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찬모 |
출생 시기/일시 | 1935년 - 문병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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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52년 - 문병란 김현승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
활동 시기/일시 | 1979년 - 문병란 제2회 전남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85년 - 문병란 제2회 요산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86년 - 문병란 전남사회운동협의회 공동대표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87년 - 문병란 5월 광주항쟁 시선집 『누가 그대 큰 이름 지우랴』 출간 |
활동 시기/일시 | 1988년 - 문병란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임용, 광주전남민중운동협의회 민중학교 교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89년 - 문병란 남북문화교류협의회 발족 참여, 전국교직원노조 단식 농성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996년 - 문병란 제13회 금호예술상 수상, 제1회 화순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2000년 - 문병란 제1회 광주시 문화예술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2001년 - 문병란 제4회 한림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2003년 - 문병란 구례군 평화문학상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2015년 - 문병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 문병란 문학제 개최, 문병란 문학상 제정 및 운영 |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
묘소 |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산 35] |
성격 | 문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조선대학교 교수|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5.18기념재단 이사|광주비엔날레 이사 |
[정의]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겸 시인.
[개설]
문병란(文丙蘭)[1935~2015]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서은(瑞隱)이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발한 시작 활동과 사회 활동을 전개하고, 『직녀에게』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활동 사항]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도곡공립보통학교[지금의 도곡초등학교]와 광주공립보통학교[지금의 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사범학교 병설중학교와 화순농업고등학교를 거쳐 조선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순천고등학교와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대성학원 등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쳤으며, 1988년부터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봉직한 후 정년 퇴임하였다.
문병란은 김현승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1952년 10월 「가로수」, 1962년 7월 「밤의 호흡」, 1963년 11월 「꽃밭」이 게재되어 등단하였다. 조태일이 월간 시지(詩誌) 『시인』의 주간[1969~1970]을 지낼 때 「문필봉의 뻐꾸기」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발표하였으며, 1971년 첫 시집 『문병란 시집』을 출간하였다. 또한 이규동, 문충성, 이성선, 김봉근, 최승호, 고정희 등과 '실험실' 동인으로 활동하며, 1976년 이후 중단되었던 동인 작품집 『실험실』 3집의 후속인 『민의(民意)』 제4집을 7년 만에 속간하였다. 1977년에 발간한 『죽순밭에서』는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하였다.
문병란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에 학생 시위 관련 및 불온 유인물 제작, 배포 혐의로 수배되기도 하였다. 1982년에는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과 관련하여 김현장, 이경과 함께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유언비어 등을 조작하고, 「살륙작전」이라는 불온 유인물의 초안을 작성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기도 하였다. 1985년에는 『죽순밭에서』의 판매 금지에 이어 1981년 출간한 시선집 『땅의 연가』가 압수되는 수난을 겪었다. 1987년에는 고은, 곽재구, 황지우, 김용택, 양성우, 박남준, 김준태, 김남주, 김하늬, 이승철, 이시영, 신경림 등과 함께 '5월 광주항쟁 시선집'인 『누가 그대 큰 이름 지우랴』[인동]를 출간하였다.
문병란은 1970년대 자유문인실천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86년에는 정광훈과 함께 전남사회운동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전남민족문학인협의회 준비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광주·전남민족문학인협의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87년 4월에는 김지하, 이성부, 조태일, 양성우, 김준태 등 문인 206명과 함께 개헌 촉구 성명을 발표하였으며, 5월에는 민주화교육협의회 공동대표로 '자주교육 선언'을 하였다. 1988년에는 광주전남민중운동협의회 민중학교 교장을 맡았으며, 1989년 3월에는 남북문화교류협의회 발족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7월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으로서 전국교직원노조 단식 농성에 함께 하기도 하는 등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각종 재야 사회단체에 적을 두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5.18기념재단 이사와 광주비엔날레 이사, 광주시 문예진흥기금 심사위원,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문병란은 사회 활동뿐만 아니라 문단 및 작품 활동도 왕성하게 전개하였다. 광주문인협회 고문, 전남문인협회 자문위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광주지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60년대부터 '원탁시' 동인으로서 지속적으로 시작 활동을 전개하여 1990년대 이후에도 10여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2015년 암 투병 중 사망했으며, 영결식은 '민족시인 문병란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저술 및 작품]
문병란은 30여 권이 넘는 시집과 시선집을 출간하였다. 1971년 『문병란시집』[삼광출판사], 1973년 『정당성』[세운문화사], 1977년 『죽순밭에서』[인학사], 1983년 『뻘밭』[한마당], 1985년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풀빛], 1986년 『5월의 연가(戀歌)』[전예원], 19863년 『무등산』[청사], 1987년 『못 다 핀 그날의 꽃들이여』[동아], 1988년 『양키여 양키여(미국 기행시집)』[일월서각], 1989년 『화염병 파편 뒹구는 거리에서 나는 운다』[실천문학사], 1991년 『견우와 직녀』[한길사], 1992년 『직녀에게』[일월서각], 1994년 『불면의 연대』[일월서각], 1994년 『겨울 숲에서』[시와사회사], 1994년 『새벽이 오기까지는』[일월서각], 1999년 『인연서설』[시와 사회], 2001년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시와사람], 2002년 『아무리 쩨쩨해도 사랑은 사랑이다』[인디넷], 2009년 『매화연풍』[코리아기획], 2010년 『금요일의 노래』[일월서각], 2012년 『법성포 여자』[지식을만드는지식] 등이 있다.
시선집으로는 1981년 『땅의 연가』[창작과 비평사], 1983년 『새벽의 서(書)』[일월서각], 2009년 『내게 길을 묻는 사랑이여』[모던], 2015년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인간과문학사]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수상록인 『어둠 속에 던진 돌멩이 하나』[동아]를 1986년에, 강연집으로 『새벽을 부르는 목소리』[동아]를 1987년에 각각 출간하였다. 1994년 시론집인 『무등산에 올라 부르는 백두산 노래』[시와 사회사], 1991년 문학론집인 『민족문학강좌』[남풍], 2011년 영역(英譯) 시선집인 『시인의 간(poet's liver)』[코리아기획], 2017년 일본에서 출간된 시선집 『직녀에게[織女へ]·1980년 5월 광주 외에[一九八〇年五月光州 ほか]』[후바이샤[風媒社]] 등 다양한 저서가 있다.
[묘소]
문병란의 묘소는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9년 제2회 전남문학상, 1985년 제2회 요산(樂山)문학상, 1996년 제13회 금호예술상, 1996년 제1회 화순문학상, 2000년 제1회 광주시 문화예술상, 2001년 제4회 한림문학상, 2003년 구례군 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광주광역시 동구 너릿재 시비공원에 문병란의 시 「호수」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2018년부터 사단법인 서은문학연구소에서 문병란 시인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문병란 문학제'를 해마다 개최하고, '문병란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했었다. 서은문학연구소는 문병란 시인이 2008년 개소한 연구소로, 문병란은 이곳에서 시 창작 및 연구 활동을 수행하였다. 문병란의 사후에는 사단법인으로 개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