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73 |
---|---|
한자 | 李亨元 |
영어공식명칭 | Lee Hyeongwon |
이칭/별칭 | 가연(可衍),성심당(惺心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창우 |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홍문관부제학, 일본국통신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이형원(李亨元)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가연(可衍), 호는 성심당(猩心堂)이다. 할아버지는 이일영(李日英)이고, 아버지는 예문관제학을 역임한 이선제(李先齊)이다.
[활동 사항]
이형원은 1451년(문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正字)가 됨으로써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467년(세조 13)에 임금의 명을 받아 『서경(書經)』의 구절을 교정하였으며, 이듬해인 1468년(세조 14)에는 성균전적(成均典籍)으로 재직하던 중, 전라도에 파견되어 조운과 군기를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형원은 1469년(예종 1)에 천문학관에 임명되었으며, 1472년(성종 3)에는 사헌부집의에 임명되어 전라도 광양·낙안·순천 등지의 공납을 감하여 지역의 분쟁을 막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지역의 조세 감면이나 병력 감축, 조운 제도 개편 등을 골자로 하는 이형원의 상소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479년(성종 10) 이형원은 일본국통신사(日本國通信使)와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에 선발되어 쓰시마섬[대마도]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나, 당시 쓰시마섬에 난이 일어났고 인근 해상의 풍파도 심하였으며, 이형원 자신의 몸도 좋지 않아 조선으로 돌아오는 도중 거제(巨濟)에서 사망하였다. 이형원의 사망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왕이 친히 관곽을 하사하였으며 이형원을 가선대부(嘉善大夫)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추증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형원은 1479년(성종 19) 가선대부(嘉善大夫) 예조참판(禮曹參判)으로 추증되었다. 1946년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죽청리에 세워진 죽산사(竹山祠)에 이형원과 이형원의 아버지 이선제를 비롯한 광산이씨 5위를 배향하였다.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영모각(永慕閣)은 광산이씨 문중의 재각(齋閣)으로, 매년 음력 3월 11일에 이형원을 비롯한 광산이씨 선조들의 합동 시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