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655
한자 所台洞胎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노성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원소재지 소태동 태실 -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태봉마을 지도보기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태봉산에 있었던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인물의 태를 묻은 곳.

[개설]

태실(胎室)이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胎)를 봉안하는 곳을 말하며, 태를 묻은 산을 태봉산이라 불렀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인정하여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태를 보관하는 방법도 신분의 귀천이나 계급의 높고 낮음에 따라 달랐다. 특히, 왕실에서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해서 더욱 소중하게 다루었다. 태실은 일반적으로 태옹(胎甕)이라는 항아리에 안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왕자나 공주 등 왕족의 경우는 돌로 방을 만들어 보관하였다.

[위치]

소태동 태실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태봉마을 뒷산에 있었는데, 현재는 광주광역시 외곽 순환도로 개설로 태봉산이 헐려 정상 부근에 묻힌 태실은 행방을 알 수 없다.

[현황]

전라도 광주 지역에는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북구 신안동에 태실을 보관하는 2개의 태봉산이 있었다. 소태동 태실은 몸통과 덮개가 한 쌍으로 이루어졌고, 화강암을 원형으로 쪼아 만든 덮개가 노출되어 있었다. 태실 덮개의 크기는 지름 90㎝, 높이 30㎝, 둘레 300㎝이다. 신안동 태실에서는 태를 담아 넣었던 백자 항아리와 태의 주인공을 알려 주는 지석 등이 출토되었다. 반면 소태동 태실에서는 태의 주인공을 알려 주는 유물이 일제강점기에 도굴되어 남아 있지 않아 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의 인물일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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