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55 |
---|---|
한자 | 權慄倡義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구동 21-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수경 |
건립 시기/일시 | 1902년 - 권율 창의비 건립 |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37년 - 권율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99년 - 권율 사망 |
현 소재지 | 광주공원 -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구동 21-1] |
성격 | 비 |
관련 인물 | 권율|권재윤|송병순 |
[정의]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권율의 창의비.
[건립 경위]
권율 창의비는 권율(權慄)[1537~1599]의 11세손인 권재윤(權在允)이 1901년에 광주군수로 부임하면서 권율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 이듬해인 1902년에 세운 것이다.
[위치]
광주향교에서 광주공원의 입구로 진입하여 바로 오른쪽으로 난 좁은 사잇길을 따라가면 광주공원 선정비군의 비석이 모여 있다. 여러 비석 중에서 정면 한가운데의 비가 권율 창의비이다.
[금석문]
권율 창의비는 송병순(宋秉珣)[1839~1912]이 비문을 짓고 후손 권재윤이 글씨를 썼다. 창의비 앞면에는 "도원수충장권공창의비(都元帥忠壯權公倡義碑)", 뒷면에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에 제수되어 전라도 각 군현에 격문을 띄운다. 나라가 적의 칼날 앞에 놓였으니 분연히 떨쳐 일어나자".라고 호소한 것이며, 절절한 권율의 호소에 전라도 지역의 의병 천여 명이 모였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