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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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鄕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노성태 |
[정의]
조선 태종 때에 전라도 광주 부용정에서 김문발에 의해 시행된 향촌의 자치 규약.
[개설]
향촌의 자치 규약인 향약은 조선시대 보급되었다.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는 태종 때 김문발(金文發)[1359~1418]에 의해 시행되었으며, 이선제(李先齊)[1390~1453] 등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향약의 보급]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 등으로 잘 알려진 향촌 사회의 자치 규약인 향약은 중국 송나라의 남전여씨 향약에서 기원(起原)하였다. 여씨 형제가 시행한 향약을 주자(朱子)가 가감하여 발전시킨 것이 주자증손 여씨향약이다.
향약이 전국적으로 보급된 것은 조광조 등 사림이 권력을 장악한 16세기 중종 때였다. 그러나 전라도 광주는 조광조 등이 시행한 향약보다 훨씬 앞선 1411년(태종 11) 충청 감사를 지낸 김문발에 의해 시행되었다.
김문발이 전라도 광주 최초로 향약을 시행하였음은 『광주읍지(光州邑誌)』 재학(才學)편에 “황해 감사를 지낸 김문발이 부용정이란 편액(扁額)을 걸고 고을 사람들과 주자의 백록동 규약을 시행하여 풍속을 장려하였는데, 광주향약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라는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김문발이 시행한 광주향약은 『수암원지(秀巖院誌)』의 “광주향약은 태종 때에 김문발의 주도로 향약이 입조되어 시행되었으나 널리 퍼지지 못한 것을 뒤에 이선제가 다시 주도해 향적을 작성하고 향약을 시행하기 시작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볼 때 널리 행해지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향약의 계승]
김문발에 의해 시작된 광주향약을 계승한 사람은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을 지낸 이선제와 광주현감 안철석이었다. 이선제가 시행한 향약 3장과 부칙 등 24조목이 수암서원의 서원지인 『수암원지』에 실려 있다. 제1장은 부모에게 불순한 자, 형제끼리 서로 싸우는 자, 가족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 고을의 연장자를 능멸한 자 등에 대해서는 가장 엄한 상등(上等)의 죄로 논하고 집강이 관청에 올려 법률로 죗값을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2장은 향촌민들이 지켜야 할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제3장은 회의 시의 불참자나 문란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선제가 죽고 난 후 광주향약이 얼마나 지속해서 계승 발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에 만들어져 100여 동안 시행된 양과동 동약을 분석해 보면 이선제가 시행하였던 내용과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김문발이 시작한 광주향약을 이선제가 계승하였고, 양과동 동약으로 계승, 발전되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