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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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遊瑞石山-趙纘韓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72년 - 조찬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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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31년 - 조찬한 사망 |
배경 지역 |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성격 | 한시 |
작가 | 조찬한 |
[정의]
[개설]
「유서석산(遊瑞石山)」을 지은 조찬한(趙纘韓)[1572~1631]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선술(善述), 호는 현주(玄洲)이다. 1572년에 아버지는 조양정(趙揚庭)과 어머니 청주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를 거쳐 형조좌랑, 호조좌랑, 사간원정언, 영암군수, 영천군수, 삼도토포사(三道討捕使) 등을 지냈다. 삼도토포사를 하던 중 영호남의 도적 무리를 평정한 공을 인정받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예조참의에 제수되었다가 동부승지가 되었다. 광해군 말엽 외직을 청해 상주목사가 되었다가 인조반정 후 형조참의, 승문원제조, 좌승지, 선산부사 등을 지냈다. 시부와 서도에 뛰어났으며, 권필(權韠)·이안눌(李安訥)·임숙영(任叔英)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현주집(玄州集)』이 있다.
[구성]
「유서석산」은 50운(五十韻)의 오언배율로 쓴 장시(長詩)이다.
[내용]
유서석산(遊瑞石山)[서석산을 유람하며]
숙포구산벽(夙抱丘山癖)[일찍이 산을 좋아하는 버릇 가지고]/ 유유송차생(悠悠送此生)[유유하게 한평생 보냈다네]/ 정연위속루(淨緣違俗累)[맑은 인연 세상일로 어긋나고]/ 선상조봉영(仙賞阻蓬瀛)[선경 구경은 봉래 영주와 멀기만 하네]/ 행차광산승(幸此光山勝)[다행히 이 광주에 명승이 있어]/ 원인서석명(元因瑞石名)[원래 서석이란 이름 때문이라]/ 창연자만고(蒼然自萬古)[만고에 걸쳐 고색창연하여]/ 치립오삼정(峙立傲三精)[해와 달과 별을 얕보듯 우뚝하여라]
(하략)
[특징]
「유서석산」은 조찬한의 문집 『현주집』 7권에 수록된 오언배율 50운의 장시이다. 서석산은 무등산의 별칭이다.
[의의와 평가]
「유서석산」은 조찬한의 시 세계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한시로, 50운의 장시이기 때문에 17세기 무등산 유람의 자세한 상황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