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3595 |
---|---|
한자 | 光州協律社 |
영어공식명칭 | Gwangju hyupryulsa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명진 |
[정의]
일제 강점기 광주광역시에 있었던 전통 음악 공연 단체.
[개설]
광주협률사는 명창 김채만 사후에 문도들이 스승의 유지를 이어받아 조직한 공연단체이다. 명창 김채만은 전라남도 능주 출신이다. 이날치 문하에서 수련하였고, 광주 속골로 이사해 성장했다. 1902년 김창환의 권유로 상경하여 어전광대가 되어 함께 활동하였다. 궁내부 협률사 해체 후 김창환과 함께 광주로 낙향하여 속골에 머물며 제자들을 키웠는데, 이로 인해 김채만과 그 문도들을 일러 '속골명창'이라 칭하였다. 김채만은 1911년 사망했고, 광주협률사는 그 이듬해 조직되었다.
[설립 목적]
전라도 지역 명창들의 규합과 전국 순회공연을 통한 국악 진흥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광주협률사는 1912년 창립되었는데, 김창환협률사에서 활동하던 인물들 중 김채만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집약되는 구성 변화를 보여준다. 광주협률사는 1920년경 해체되었는데, 이 시기는 전국 곳곳에 권번이 집중적으로 형성되던 때로 협률사에서 활동하던 명창들이 권번의 소리 선생으로 자리 잡으면서 흩어지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1921년에 조몽실·박동실·임옥돌·성원목 등이 합류하여 2세대 광주협률사를 재건한 바 있으나 활동내역은 찾아보기 어렵고, 1920년대 중반에 해산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광주협률사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나 여타의 민간협률사와 같이 주로 삼남지역을 순회하며 공연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뚜렷하게 확인되는 활동으로는 광주협률사 창립공연이지만 시기는 미상이다. 공연 내용은 강용환 연출의 「춘향전」이다. 춘향은 한성태, 월매는 신용주로 남성 소리꾼이 여성의 역할도 맡았다. 두번째 작품 「심청전」 역시 남성 소리꾼만으로 배역이 짜여졌다. 심청은 한성태, 뺑덕어멈 신용주, 심봉사 강용환, 화주승 박준수, 송천자 박화섭, 황봉사는 김정문이 맡았다.
창립공연 연행장소는 광주천변 모래사장의 가설무대로 확인된다. 광주천변의 모래사장은 넓은 평야 같은 규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최초 광주 지역 국악경창대회가 열린 곳이다. 또한 광주에 극장이 형성되기 이전까지 광주 공연문화의 주요 연행 장소였다.
[의의와 평가]
광주협률사는 광주 속골명창 김채만의 제자들을 결속시키고, 광주 지역 판소리의 지속을 유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김창환협률사와 함께 근현대 광주 지역 판소리사 형성의 중요한 사건으로 거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협률사의 활동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또 빠른 시기 해체된 까닭에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