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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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洽 |
영어공식명칭 | Bak Heup |
이칭/별칭 | 박증구,귀산,귀산생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찬모 |
출생 시기/일시 | 1912년 - 박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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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7년 - 박흡 『경향신문』에 「젊은 강사」를 발표하며 등단 |
활동 시기/일시 | 1950~1952년 - 박흡 광주서중학교 국어 교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51~1953년 - 박흡 『갈매기』, 『신문학』, 『시정신』, 『시와 산문』 창립 동인 혹은 창립 회원으로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52~1955년 - 박흡 광주고등학교 국어 교사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962년 - 박흡 사망 |
출생지 |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 |
묘소 | 전라남도 장성군 |
성격 | 문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광주고등학교 교사|광주중앙여자고등학교 서무과장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한 전라남도 장성군 출신의 시인.
[개설]
박흡(朴洽)[1912~1962]은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박증구(朴曾求)이다. 작품 활동 초기 '귀산(歸山)'과 '귀산생(歸山生)'이라는 필명으로 일부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50~1960년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동인 활동을 전개하고, 「못」 등의 시편을 발표한 시인이다.
[활동 사항]
박흡은 월평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리농림학교에 진학하였으나, 5학년 때 독서회 활동을 하다가 퇴학당하였다. 광복 이후 숙명여자전문학교[지금의 숙명여자대학교]와 조선대학교 강사를 역임하였다. 1950~1952년 광주서중학교에서 국어 교사, 1952~1955년 광주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각각 근무하였으며, 이후 광주중앙여자고등학교[지금의 금호중앙여자고등학교] 서무과장을 역임하였다.
1947년 『경향신문』에 「젊은 강사(講師)」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전라남도 광주에 정착한 1950년부터 다양한 동인 활동을 하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흡은 1951년 2월 『갈매기』, 1951년 6월 『신문학』, 1952년 9월 『시정신』, 1953년 10월 『시와 산문』의 창립 동인 혹은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며 활동하였다.
박흡은 광주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문학적 재능으로 촉망받던 많은 문학 청년들을 지도하였다. 광주서중학교 시절부터 문학 동인회 '진달래'를 조직하며 활동하였던 강태영, 박봉우, 윤삼하, 주명영, 박성룡 등 광주고등학교 문예부 1세대들을 지도하였다. 또한 강태열, 박봉우, 윤삼하, 주명영이 '상록' 동인으로 1952년 발간한 『상록집(常綠集)』[학우출판사]에 서문인 「사관(蛇冠)」을 쓰기도 하였다. 이후 광주중앙여자고등학교 서무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1962년 10월 17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박흡의 시편으로는 1947년 5월 8일 『경향신문』에 실린 「젊은 강사」, 1950년 6월 『신천지』에 실린 「못」, 1948년 8월 7일 『평화일보』에 실린 「죽음송(頌)」, 1953년 5월 『신문학』에 실린 「연하(連河)」, 1956년 『시정신』에 실린 「나무 씨를 뿌리며」, 1957년 4월 『현대문학』에 실린 「자세」 등 70여 편이 있다. 2013년 박흡의 시와 산문 등을 집대성한 『박흡문학전집』[국학자료원]이 출간되었다.
[묘소]
박흡의 묘소는 전라남도 장성의 선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