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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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萬鍾 |
영어공식명칭 | Jeong Manjong |
이칭/별칭 | 인보(仁甫),조계(棗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창우 |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예조참판, 함경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낸 문신.
[가계]
정만종(鄭萬鍾)[?~1549]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정만종의 고조할아버지는 정구진(鄭龜晋), 증조할아버지는 정지하(鄭之夏), 할아버지는 정계우(鄭繼禹), 아버지는 정윤적(鄭允績), 어머니는 신자강(申子杠)의 딸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아내는 권승금(權承金)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아들은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등을 지낸 정엄(鄭淹)이다.
[활동 사항]
정만종은 1513년(중종 8)에 진사에 입격하였고, 3년 뒤인 1516년(중종 11) 별시(別試)에 전체 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1525년(중종 20)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사서(司書)와 정언(正言) 등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삼사와 육조를 두루 오가며 다양한 관직을 거쳤다. 중종 때 명나라의 장성황후(章聖皇后)가 죽자, 정만종은 1539년(중종 34)에 진위사(陳慰使)로 명에 파견되어 외교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1540년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1543년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1547년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 1548년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맡는 등 외직 생활도 두루 하였다.
이처럼 조정 안팎을 드나들며 여러 방면에서 실력을 드러낸 정만종에게 눌재(訥齋) 박상(朴祥)은 “해내(海內)에 그대 같은 쾌활한 선비 없네. 평생에 한 사람 몫을 남에게 사양하여 주게.”라고 칭송하였다 한다(『광주읍지(光州邑誌)』).
[학문과 저술]
정만종은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동지사(同知事)로서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