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922 |
---|---|
한자 | -江山制(沈靑歌) |
영어공식명칭 | Pansori-Gangsanje(Simcheongga)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진 |
형성 시기/일시 | 1974년 - 판소리강산제(심청가) 남도판소리가 문화재로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 판소리강산제(심청가) 광주시 문화재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 판소리강산제(심청가) 광주시 무형문화재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 판소리강산제(심청가)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2월 12일 - 판소리강산제(심청가) 이임례 보유자 인정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4호 재지정 |
문화재 해지 일시 | 1995년 - 판소리강산제(심청가) 박옥심 사망으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 지정 해제 |
성격 | 남도판소리 |
토리 | 육자배기 |
가창자/시연자 | 이임례|한해자 |
문화재 지정 번호 |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4호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서편제 바탕의 판소리.
[개설]
1970년 「전라남도 문화재 보호조례」[조례 제425호]가 제정된 후 1974년 남도판소리가 지정되었고, 이어 1976년 판소리강산제(심청가)가 지정되었다. 당시 보유자는 박옥심[예명: 박춘성]이 인정되었다. 1986년 광주시 승격 후 판소리강산제(심청가)는 광주시 무형문화재로 이관되었다가 광주광역시 승격 후 1995년 다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로 변경되었다.
강산제는 박유전(朴裕全)[1835~1906]이 만년에 전라남도 보성군 강산리에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따서 불렀다고도 하며, 흥선대원군이 박유전에 대하여 "네가 제일강산이다."라고 했던 말을 따서 강산제라고도 한다. 강산제는 박유전으로부터 전승되는 근본이 되는 서편제의 유파이다. 정응민(鄭應珉)[1896~1963] 때에 이르러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보성소리[김세종제]와 구분되는 서편제의 한 갈래를 지칭하는 말로 정착되었다.
[구성 및 형식]
서편제는 동편제와는 대조적으로 기교적이며 계면조를 많이 사용하여 애절한 느낌을 준다. 정노식은 『조선창극사』에서 서편제의 특징을 "계면조를 주장하여 연미부화(軟美浮華)하게 하고 구절 끝마침이 좀 질르를 끌어서 꽁지 붙어단인다. 진진연(津津然) 육미적(肉味的)이다. 만수화란격(萬樹花爛格)이다."라고 표현하였다. 서편제 소리는 계면조 창법을 주로 구사하며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화려하게 노래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서편제는 발성의 끝을 길게 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이 좋은 육류의 맛과 같고 수많은 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 화려한 격조를 지닌 소리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용]
판소리강산제 보유자 박옥심은 ‘박유전-정재근-정응민-박옥심’으로 이어지는 유파를 잇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1995년 박옥심 사망 후 제2호 판소리강산제(심청가)는 지정 해제되었다.
이후 1998년 이임례가 보유자로 인정되면서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4호 판소리강산제로 다시 부활하였다. 이임례의 본명은 이추월이며,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출생이다. 진도국악인이자 남편인 이병기에게 학습하였고, 전라남도 목포의 김상용에게 「춘향가」를 학습하였고, 김흥남에게 「흥보가」, 「심청가」를 학습하였다. 김상용과 김흥남은 둘 다 정응민의 제자이다. 이임례의 「심청가」는 정응민의 제자 성창순(成昌順)[1934~2017]에게 학습한 것이다. 45세 때부터 성창순에게 집중적으로 「심청가」, 「흥보가」, 「춘향가」를 학습하였다.
2002년에는 한해자가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나 2012년 타계하였다. 한해자는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생하였고, 정광수·박옥심·공대일 등에게 학습하였다. 강산제 「심청가」 한바탕은 45세경부터 성창순에게서 학습한 소리이다. 성창순 문하에서 198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의 이수자가 되었다.
[현황]
강산제는 정응민이 꽃피웠으나 정응민의 제자들이 광주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여 지금은 광주광역시의 중요한 판소리 유파로 인정받고 있다. 박옥심 보유자의 타계로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었으나, 성창순에게 학습한 이임례, 한해자가 「심청가」를 특장으로 한 판소리강산제의 보유자로 인정받아 맥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