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32
한자 義兵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노성태

[정의]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임진왜란으로 국가가 위태로울 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싸웠던 군대 또는 그 군대의 구성원.

[개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마자 경상도, 충청도를 통해 진격한 왜군은 금세 한양까지 함락하였다. 한편, 다른 지역에 비교해 왜군의 침략을 덜 받았던 전라도 지역에서는 관군이 활약하고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지역을 지키고자 많은 의병이 일어났다.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1592년 5월 29일 의병장에 추대된 후 6,000여 명의 의병으로 북상을 개시하여 은진까지 도달하였지만, 왜군이 호남을 침범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자 북상 계획을 수정하여 금산에서 곽영의 군대와 합세하였다. 고경명은 800여 명의 정예부대로 선제공격을 하였지만, 겁을 먹은 관군이 무너지자 의병마저 붕괴하였고, 고경명은 아들 고인후와 유팽로(柳彭老), 안영(安瑛)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박광옥(朴光玉)[1526~1593]은 임진왜란 당시 신병(身病)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으면서 고경명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전라도 광주에 의병도청(義兵都廳)을 설치하여 군대와 장비, 군량을 모집하여 권율·김천일 부대 등에 조달하였다.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형 김덕홍고경명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전사하고 노모마저 사망하자 장성 현감 이귀, 담양부사 이경린 등의 추천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1594년 담양을 출발, 진주에 주둔하였으며, 조정은 전국의 의병을 김덕령에게 배치하였다. 김덕령의 의병은 진해·고성에 주둔하면서 왜군과 대치하였지만 강화 중이어서 큰 전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1593년 6월에 치러진 제2차 진주성 전투에는 전라도 광주 출신의 고종후, 나주 출신의 김천일, 화순 출신의 최경회 등 3,500여 명의 의병이 주력이 되어 10만 왜군과 처절한 혈투를 벌였으나 진주성이 함락되자 고종후, 김천일, 최경회 등은 진주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고 많은 의병이 전사하였다.

전라도 의병이 주축이 된 금산전투와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전라도를 지켜 낸 싸움이었으며,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보전함으로써 군량미를 쉽게 확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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