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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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州瑞元門-石 |
이칭/별칭 | 광주읍성 동문장승,동문밖 장승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경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7년 - 광주 서원문 밖 석장승 발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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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67년 - 광주 서원문 밖 석장승 이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1월 1일 - 광주 서원문 밖 석장승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8호 지정 |
현 소재지 | 전남대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산 64-1] |
원소재지 |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대의동 41번지 |
성격 | 석조상|석인상 |
크기(높이,둘레) | 와주성선- 164㎝[높이]|40㎝[너비]|133㎝[둘레]|보호동맥- 154㎝[높이]|43㎝[너비]|139㎝[둘레] |
소유자 | 전남대학교 |
관리자 | 전남대학교 |
문화재 지정 번호 |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8호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전남대학교에 있는 2기의 돌로 만들어진 조선시대 장승.
[개설]
광주 서원문 밖 석장승은 광주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의 일종으로 '광주읍성 동문 장승'으로 불리어 왔다. 원래의 위치는 광주경찰서에서 옛 광주교도소 쪽으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 허리가 반쯤 흙에 묻힌 채 서 있었다. 1967년 도로 확장공사[지금의 제봉로] 때 발견되어 전남대학교로 옮겼다. 광주읍성 밖 공북루(拱北樓) 인근에서 발견된 석인상과 생김새가 유사하다.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8호이다.
[위치]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대의동 41번지 주택 앞마당에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는데 도로 폭을 확장하면서 집이 헐려 앞마당의 석장승이 드러났다. 이 자리는 조선시대 광주읍성 동문 밖 해자(垓字)가 통과한 곳이며, 거기에서 160m 떨어진 곳에 동계천이 흐르고 있었다.
[형태]
광주 서원문 밖 석장승은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 웃는 인상인데, 왼쪽의 장승에는 보호동맥(補護東脉), 오른쪽 장승에는 와주성선(媧柱成仙)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일반적인 장승의 얼굴이 아닌 문인석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와주성선은 높이 164㎝, 너비 40㎝, 둘레 133㎝이고, 보호동맥은 높이 154㎝, 너비 43㎝, 둘레 139㎝이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머리에 관모(冠帽)를 쓰고 손에 홀(笏)을 쥔 문인의 모습이다. 광주 서원문 밖 석장승과 공북루 석인상은 생김새가 유사하다.
[현황]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산 64-1] 전남대학교 교내 민주마루 앞뜰에 있다.
[의의와 평가]
석장승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당시 광주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음을 알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