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며 항쟁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5·18민주유공자. 윤상원(尹祥源)[본명 윤개원(尹開源)]은 노동운동가이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 역할을 맡는 등 열흘간의 항쟁 전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에 작곡된 민중가요...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기운[1962~?]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시위에 참여한 뒤 행방불명이 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조선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던 김동수[1958~1980]는 대학생 불교연합 전라남도 지부장으로 석가탄신일 행사 준비로 분주하였다. 행사 준비로 전라남도 목포시에 있다가 광주시에서 일어난 소식을 듣고 광주시로 돌아왔다. 옛 전라남도청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동참하던 중 5월 27일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만두[1936~1980]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 공사장에서 일하던 근로자였다. 5월 20일 최루탄 가스 때문에 일이 중단되어 김만두는 출근을 안 하고 시위 현장에 나갔다가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복만[1952~1980]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내의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역할을 하다가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부열[1963~?]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으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어머니는 김차남이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선호[1935~1980]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청 부근 무등맨션에 거주하고 있었다. 몇 명의 학생들이 무등맨션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중에 확인하려고 쫓아 올라갔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아내는 강을순이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성근[195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새벽 거주 지역 주변을 순찰하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윤수[1953~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고 5월 23일 전라남도 화순군에 사는 누이의 집에 가던 중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지원동 길목에 매복해 있던 공수부대로부터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구두닦이를 하던 김재형[1962~1980]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재화[1954~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역 시위에서 선두에 섰다가 공수부대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정선[1958~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광천동에 있는 무기고를 지키는 단기사병[방위병]이었다. 5월 21일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계엄군을 방어하기 위해 시민들이 광천동 무기고로 몰려오자 김정선은 무기고를 열었고 시민들과 함께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종철[1962~1980]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남도청에서 사망자 시신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아 하였다. 5월 27일 새벽까지 전라남도청에 남아 있던 김종철은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나안주[1953~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던 중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활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류동운[1961~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한국신학대학[지금의 한신대학교] 2학년 학생으로 서울에서 부모가 계신 전라남도 광주시로 내려와 시민군의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호남신학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문용동[195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시민군으로 활동하였다. 문용동은 5월 27일까지 옛 전라남도청에 남아 시민군 무기고를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문재학[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지금의 광주동성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항쟁에 참여해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금희[1963~1980]는 1980년 5월 당시 춘태여자상업고등학교[지금의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5월 21일 부상자 수혈을 위해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나온 뒤 계엄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동국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병규[1961~1980]는 전라남도 광주시로 내려와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격을 맞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성용[196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옛 전라남도청에서 부상자와 사망자 수습을 돕다가 5월 27일 계엄군의 총격을 맞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용준[1956~1980]은 1980년 광주YWCA 신용협동조합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투사회보』를 발행하는 팀에서 필경을 담당하였고,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창권[196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숭의중학교 2학년 재학 중 시위에 참여하다가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현숙[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사상자 수습을 하는 일을 도왔다. 사망자가 급속하게 늘어 박현숙은 시민군과 함께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향하던 중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을 지나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백대환[1961~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전문대학[지금의 송원대학교] 1학년 재학 중 시위대에 참여하였다. 5월 23일 시신을 수습할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는 도중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입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유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서호빈[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학교 화학공학과 2학년 재학 중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선종철[193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통장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위험을 알리는 과정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 살았던 손옥례[1961~1980]는 시내에 외출하고 돌아오던 중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통하는 길목에 매복해 있던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안병태[1956~1980]는 1980년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앞 시위 현장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머리에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안종필[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지금의 광주동성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아들을 밖으로 찾아다니며 말렸던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종필은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항쟁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인섭[194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에 참여하였다가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창근[1964~1980]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신분으로 5.18민주화운동 시위를 하던 중 전라남도 광주시 시외버스공영터미널[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225] 부근에서 머리에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양회남[1950~1980]은 자택 근처 국군광주병원 앞에 쓰러져 있는 단기사병[방위병]을 발견하고 도우려 다가갔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염행열[196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윤상원(尹祥源)[1951~1980]의 본명은 윤개원(尹開源)이다. 윤상원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맡는 등 열흘 동안 항쟁 전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시민군 사이에서 무기 반납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설 때, 윤상원은 무기 반납 반대 입장에 서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계엄군에 끝...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강수[1961~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봉에 맞은 친구의 부상 소식을 듣고 시위에 참여하여 끝까지 항쟁하다가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용충[1954~1980]은 1980년 5월 21일 금남로[광주광역시 동구 관내 명예도로로 지정된 유네스코 민주인권로]에서 군용 트럭에 실린 사상자들을 보고 시위에 참여하여 항쟁하다가 광주교도소 앞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정연[1960~1980]은 1980년 5월 25일부터 옛 전라남도청에서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항쟁 마지막 날인 5월 27일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임정식[1962~1980]은 1980년 5월 22일 집에서 총소리를 듣고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한다고 밖으로 나갔고, 이를 걱정한 어머니가 뒤이어 쫓아나갔다. 총성이 들리는 중에 임정식은 집 근처에서 어머니를 발견하고 달려가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국군광주병원에서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장재철[195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5월 22일부터 시위대에서 활동하였다. 장재철은 수습대책위원회에서 사상자들을 후송하는 차량의 운전을 담당하였다. 장재철은 지원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서 부상자 발생 소식이 들려와 후송 차량을 운전하고 가던 중 봉쇄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계엄군의...
-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활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장하일[1942~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5월 21일 동생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옛 전라남도청 가까이 다다랐을 무렵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하였고, 장하일은 이때 총탄에 맞아 이틀 뒤에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대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전영진[1962~1980]은 5월 21일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옛 전라남도청으로 향하였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던 오후 1시경 전라남도청 근처 노동청 광주지방사무소[지금의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있던 전영진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정민구[1955~1980]는 시민군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남도 광주시 외곽을 순찰하던 중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정지영[1949~1980]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5월 20일 전남대학교에서 계엄군의 구타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정학근[195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조대훈[194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조사천[194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한영길[1950~?]은 1980년 5월 21일 5.18민주화운동 시위에서 시민군 트럭에 탑승해 있던 것이 목격되었다. 그 뒤 가족들이 찾아 헤맸으나 두개골 총상으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알아보지 못하였다.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서 신원 미상의 시신에 대한 지문 감식 결과, 채수길의 시신이 확인된 뒤에 가족들은 시신을...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허봉[1956~1980]은 1978년부터 전라남도 광주시에 있는 들불야학에 다니고 있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5월 15일부터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였던 허봉은 5월 20일 전일빌딩[지금의 전일빌딩245] 근처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힌 뒤 대검에 머리를 찔려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성규[1947~?]는 조선대학교 출신으로 1980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1가[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1가]에서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평소에 대학생들과 교류가 많아 불안한 시국을 잘 알고 있던 홍성규는 5월 18일부터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고, 5월 20일 시위 중 계엄군에게 머리를 구타당한 뒤 사망...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순권[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재수생이었다. 5월 18일부터 줄곧 시위에 참여하다가 5월 20일부터는 옛 전라남도청에서 숙식하며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5월 27일에 계엄군이 전라남도청에 대대적으로 진입하면서 홍성규는 계엄군...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인표[1960~1980]는 1980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달아오르던 민주화 시위에 5월 15일경부터 참여하였다. 5월 18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시에는 계엄군이 투입되었다.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던 때, 홍인표는 형의 심부름을 나와 남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남동] 광천주조장...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황호걸[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낮에는 직장에 다니는 근로자였다. 5월 18일부터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5월 22일부터는 옛 전라남도청에서 사망자 시신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5월 23일 황호걸은 수 명과 함께 사망자를 수습할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