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광주읍성 북문 공북문 밖에 있었던 2층 누각. 공북(拱北)이라는 이름은 북쪽 도성에 있는 임금에 대한 충성의 의미를 담아 지은 것이다. 지리적으로 한양 남쪽에 있는 군현의 성곽 북문이나 북쪽에 위치한 루(樓)에 ‘공북’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경우가 많다. 광주 공북루는 공북문 위에 설치한 문루가 아니라 북문 바깥 쪽에 별도로 건립한 누각이다. 공북루는 지방 관리가 사신을 접...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동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동쪽은 서원문(瑞元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서원문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은데, 동쪽에서 태동하는 상서로운 기운을 받으라는 의미에서 '서원(瑞元)'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서원에서 ‘원(元)’은 주역(周易)에서 원형리정(元亨利貞)...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북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북쪽은 공북문(拱北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광주읍성 북문의 의미는 '북쪽을 공손히 받든다.'는 뜻인데 북쪽은 임금을 상징한다....
-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던 조선 전기 광주읍성 서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지도류와 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광주읍성 서쪽은 '광리문(光利門)'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광주읍성 서문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은데, '광(光)'은 광주를 의미하고, '리(利)'는 주역(周易)에서 원형리정(元亨利貞) 중 서쪽 방위를 의미한다고 한다....
-
광주 지역에 건립된 조선시대의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던 광주읍성 옛터. 1979년에 간행된 『광주시사』에 의하면, 광주읍성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 있었던 1909년부터 1918년 사이에 헐고 도로를 개설하여 신시가지를 조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신. 박이온(朴而溫)[1461~1524]의 본관은 순천(順天)으로, 자는 자화(子和)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석명(朴錫命)이며, 할아버지는 박거소(朴去疎)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박숙선(朴叔善)이고,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愼氏)이다. 동생은 박이량(朴而良), 박이공(朴而恭), 박이검(朴而儉), 박이양(朴而讓)이다. 부인은 광주정씨(光...
-
조선시대 광주읍성 내 황화루 동쪽에 있던 정자. 봉생정(鳳笙亭)은 절양루(折楊樓)[지금의 공북루(拱北樓)], 황화루(皇華樓)와 함께 조선 초기인 1415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571년 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전라도 관찰사로 지방을 순행하며 광주 지역에도 몇 차례 들렀다. 7월 28일 유희춘의 일기에 따르면, 희경루에서 관찰사인 유희춘, 병사 임진(林晉),...
-
고려 말기에 축성된 광주의 읍성과 그 사대문.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동과 서남동 일부에 걸쳐 있던 광주읍성으로 고려 시대 말기에 축성하여 일제 강점기 초에 철거되었으며 사대문과 관아 시설을 갖춘 전라남도 행정의 중심지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동과 양림동에 걸쳐 있는 산. 『동국여지승람』[1481] 광산현 사묘조에 "사직단(社稷壇)은 현의 서쪽에 있다."고 하였고, 『비변사인방안지도』에는 향교 남쪽 산 정상에 두 개의 홍살문이 그려진 '사직(社稷)'이 기록되어 있다. 『광주목지』[1799]에는 "사직단은 주의 서쪽 1리[약 0.4㎞]에 있다."고 거리를 정확히 적었다. 사직단이 있는 산이라고 하여 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던 조선 후기 고택. 외성당(畏省堂)은 안촌(安村) 박광후(朴光後)[1637~1678]가 세우고 거처하였던 곳이다. 박광후의 사후에는 아들 박중회(朴重繪)가 거처하였다. 박광후의 문집인 『안촌집(安村集)』에 외성당에 대한 시문이 실려 있으며, 최익현(崔益鉉)과 기우만(奇宇萬)이 지은 「외성당기(畏省堂記)」가 있다. 최익현은 박광후의 후손인 박만동(朴萬東...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과 북구 청풍동에 걸쳐 있는 산. 『동국여지승람』에 “장원봉(壯元峯)은 무등산 지봉(支峰)으로 속설에 향교가 옛날 봉우리 아래 있었다고 전하고, 고을 사람 중 장원하는 자가 많아 이름이 생겼다.”라는 기록이 있다. 『1872년 지방지도』[광주지도]에는 장원봉이 그려져 있다. 1896년 지도군수 오횡묵(吳宖默)[1834~1906]은 『지도군총쇄록』[1896]에...
-
조선시대 광주읍성 내 객사인 광산관(光山館) 정문에 있었던 2층 누각. 황화루, 공북루, 봉생정, 희경루, 제금루 등은 관아의 누정이다. ‘황화(皇華)’는 고대 중국의 고전 『시경』에 나오는 말로 칙사나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환영의 의미로 부르는 「황화곡(皇華曲)」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
조선시대 광주읍성 객사 광산관 북쪽에 있었던 2층 누각. 희경루, 공북루, 황화루, 봉생정, 제금루 등은 조선시대 광주읍성 관아의 누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