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기운[1962~?]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시위에 참여한 뒤 행방불명이 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남석[1961~?]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사망자 수습을 돕던 중 관을 구하기 위해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던 중 행방불명이 되었다....
-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자, 공무원, 사회운동가. 1952년 목포일보에서 언론인으로 근무하였고, 1956년 민주당 입당으로 정계에 발을 내딛어 1971년~1988년까지 제8대·제9대·제10대·제12대 4선 국회의원 당선 및 제12대 국회부의장직을 지냈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조선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던 김동수[1958~1980]는 대학생 불교연합 전라남도 지부장으로 석가탄신일 행사 준비로 분주하였다. 행사 준비로 전라남도 목포시에 있다가 광주시에서 일어난 소식을 듣고 광주시로 돌아왔다. 옛 전라남도청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동참하던 중 5월 27일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만두[1936~1980]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 공사장에서 일하던 근로자였다. 5월 20일 최루탄 가스 때문에 일이 중단되어 김만두는 출근을 안 하고 시위 현장에 나갔다가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복만[1952~1980]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내의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역할을 하다가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한 체육인. 김복실(金卜實)[1905~1952]은 전라남도 광주군 누항촌[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서 5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얼굴색이 검어서 '먹통'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22년 정동예배당 앞에서 일본 학생 30명과 격돌하여 '배재박치기'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축구·야구·정구 부분에서 심판·코치·감독·선수로 활동...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부열[1963~?]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으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어머니는 김차남이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선호[1935~1980]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청 부근 무등맨션에 거주하고 있었다. 몇 명의 학생들이 무등맨션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중에 확인하려고 쫓아 올라갔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아내는 강을순이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성근[195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새벽 거주 지역 주변을 순찰하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윤수[1953~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고 5월 23일 전라남도 화순군에 사는 누이의 집에 가던 중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지원동 길목에 매복해 있던 공수부대로부터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구두닦이를 하던 김재형[1962~1980]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재화[1954~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역 시위에서 선두에 섰다가 공수부대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정선[1958~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광천동에 있는 무기고를 지키는 단기사병[방위병]이었다. 5월 21일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계엄군을 방어하기 위해 시민들이 광천동 무기고로 몰려오자 김정선은 무기고를 열었고 시민들과 함께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종철[1962~1980]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남도청에서 사망자 시신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아 하였다. 5월 27일 새벽까지 전라남도청에 남아 있던 김종철은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였고, 광주YMCA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이자 광복 이후 여천군수와 국회의원을 역임한 의사 겸 정치인. 김철주(金鐵柱)는 1901년 전라남도 여수군에서 태어나 숭일학교에 진학하였다. 일제강점기 완도중학교 교사와 광주농업실습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이후 전라남도 의사 시험 합격 후 여수 애양원 원장에 취임하고, 여천군 백야에 병원을 개업하였다. 이후...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김필례(金弼禮)[1891~1983]는 1891년(고종 28) 11월 19일 황해도 장연군 대교면 송천리에서 아버지 김성섬(金聖蟾)과 어머니 안성은(安聖恩) 사이에서 5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1892년(고종 29) 김필례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아버지 김성섬은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나안주[1953~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던 중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활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류동운[1961~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한국신학대학[지금의 한신대학교] 2학년 학생으로 서울에서 부모가 계신 전라남도 광주시로 내려와 시민군의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으로 유신독재와 신군부에 반대하여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을 펼친 교육자. 명노근(明魯勤)[1932~2000]은 1932년 9월 연안명씨(延安明氏) 명동열과 창녕조씨(昌寧曺氏) 조말례 사이에 5남 5녀 중 4남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죽산안씨(竹山安氏) 안기만과 진주정씨(晉州鄭氏) 정인용의 딸 안성례와 결혼하...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호남신학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문용동[195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시민군으로 활동하였다. 문용동은 5월 27일까지 옛 전라남도청에 남아 시민군 무기고를 지키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문재학[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지금의 광주동성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항쟁에 참여해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
1980년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운동을 이끈 학생운동가. 박관현(朴寬賢)[1953~1982]은 1953년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에서 아버지 박정한과 어머니 이금녀 사이에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라남도 광주시의 명문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1965년 불갑국민학교에서 광주수창국민학교로 전학하였다. 졸업 후 광주동중학교를 거쳐 광주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973...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금희[1963~1980]는 1980년 5월 당시 춘태여자상업고등학교[지금의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5월 21일 부상자 수혈을 위해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나온 뒤 계엄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있었던 들불야학 교사이자 노동운동가. 박기순[1958~1978]은 전남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여 1978년 6.29학원민주화시위를 주도하였고, 들불야학을 창립하여 강학을 맡았다. 또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최초의 위장 취업 학생으로 노동운동을 하며 고된 삶을 영위하다가 사망하였다....
-
제과업계에서 활동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기업인. 박병규(朴炳圭)[1925~1977]는 전라남도 광주군 극락면 유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아버지 박기룡과 어머니 김병례 사이의 6남 1녀 중 4남으로 출생하였다. 전라남도 광주 출신 기업가로, 해태제과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제과·음료·빙과 등을 생산하여 제과업계 선진화에 기여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동국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병규[1961~1980]는 전라남도 광주시로 내려와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격을 맞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성용[196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옛 전라남도청에서 부상자와 사망자 수습을 돕다가 5월 27일 계엄군의 총격을 맞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용준[1956~1980]은 1980년 광주YWCA 신용협동조합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투사회보』를 발행하는 팀에서 필경을 담당하였고,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나주 출신으로 광주 지역에서 운수업·교통업·항공업 분야에서 활동한 기업인. 박인천(朴仁天)[1901~1984]은 전라남도 나주군 다시면 신석리 동산마을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안곡서당(安谷書堂) 정성호(鄭聖浩)에서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나주군 다시면 영동리 팔현서당(八賢書堂)에서 열린 강경시(講經試)에서 장원하였다. 1946년 4월 7일 전라남도 광주 황금정(黃金町)에...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창권[196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숭의중학교 2학년 재학 중 시위에 참여하다가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현숙[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사상자 수습을 하는 일을 도왔다. 사망자가 급속하게 늘어 박현숙은 시민군과 함께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향하던 중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을 지나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백대환[1961~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전문대학[지금의 송원대학교] 1학년 재학 중 시위대에 참여하였다. 5월 23일 시신을 수습할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는 도중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입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유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서호빈[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학교 화학공학과 2학년 재학 중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선종철[193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통장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위험을 알리는 과정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 살았던 손옥례[1961~1980]는 시내에 외출하고 돌아오던 중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통하는 길목에 매복해 있던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안병태[1956~1980]는 1980년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앞 시위 현장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머리에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안종필[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지금의 광주동성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아들을 밖으로 찾아다니며 말렸던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종필은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항쟁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민석[196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이 거주하던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지원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근방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행방불명이 된 지 8년 뒤에야 행방불명자로 인정을 받고 무명열사로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매장되었다. 그리고 또 21년 뒤 유전자 감식으로 무명열사들의 신원이...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인섭[194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에 참여하였다가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창근[1964~1980]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신분으로 5.18민주화운동 시위를 하던 중 전라남도 광주시 시외버스공영터미널[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225] 부근에서 머리에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양회남[1950~1980]은 자택 근처 국군광주병원 앞에 쓰러져 있는 단기사병[방위병]을 발견하고 도우려 다가갔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염행열[196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1980년 5월 20일부터 24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기록 영상을 제작하여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독일의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1937~2016]는 1963년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카메라맨으로 입사하여 1963년 홍콩의 동아시아 지부로 발령받았다. 이후 일본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에 취재차...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윤상원(尹祥源)[1951~1980]의 본명은 윤개원(尹開源)이다. 윤상원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맡는 등 열흘 동안 항쟁 전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시민군 사이에서 무기 반납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설 때, 윤상원은 무기 반납 반대 입장에 서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계엄군에 끝...
-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이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위원장. 윤영규(尹永奎)[1935~2005]는 1960년 한국신학대학[지금의 한신대학교] 재학 시절 4.19혁명 수습위원, 1976년 광주YMCA에서 청소년 동아리를 지도하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1980년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 재직 시절 5.18민주화운동 수습대책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
-
19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으며 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윤한봉(尹漢琫)[1948~2007]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의 전라도 책임자로 체포되었다. 이듬해 출소하여 '전남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76년에는 '부활절 예배 사건'에 연루되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대구교도소에서 복역하였다. 그...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강수[1961~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봉에 맞은 친구의 부상 소식을 듣고 시위에 참여하여 끝까지 항쟁하다가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용충[1954~1980]은 1980년 5월 21일 금남로[광주광역시 동구 관내 명예도로로 지정된 유네스코 민주인권로]에서 군용 트럭에 실린 사상자들을 보고 시위에 참여하여 항쟁하다가 광주교도소 앞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정연[1960~1980]은 1980년 5월 25일부터 옛 전라남도청에서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항쟁 마지막 날인 5월 27일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진현[1932~?]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현장에 가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가 행방불명이 된 상태이다.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 심의 결과, 5.18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아 국립5.18민주묘지에 묘비만 세워져 있다....
-
연세대학교 정문 앞 시위 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6.10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민주화운동 열사. 이한열(李韓烈)[1966~1987]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광주동산초등학교, 광주동성중학교,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87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당시 한국 사회는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과 개헌을 통한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임정식[1962~1980]은 1980년 5월 22일 집에서 총소리를 듣고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한다고 밖으로 나갔고, 이를 걱정한 어머니가 뒤이어 쫓아나갔다. 총성이 들리는 중에 임정식은 집 근처에서 어머니를 발견하고 달려가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국군광주병원에서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장재철[195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5월 22일부터 시위대에서 활동하였다. 장재철은 수습대책위원회에서 사상자들을 후송하는 차량의 운전을 담당하였다. 장재철은 지원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서 부상자 발생 소식이 들려와 후송 차량을 운전하고 가던 중 봉쇄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계엄군의...
-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활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장하일[1942~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5월 21일 동생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옛 전라남도청 가까이 다다랐을 무렵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하였고, 장하일은 이때 총탄에 맞아 이틀 뒤에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대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전영진[1962~1980]은 5월 21일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옛 전라남도청으로 향하였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던 오후 1시경 전라남도청 근처 노동청 광주지방사무소[지금의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있던 전영진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정민구[1955~1980]는 시민군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남도 광주시 외곽을 순찰하던 중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광주시 출신으로, 해방 이후 6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자,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 1950년 광주상고 교장으로 재직하고, 1954년 제3대 때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제4대·제5대·제6대·제7대·제8대 6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70년 6월부터 1971년 6월까지 국회 부의장직을 역임하였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한 체육인이자 종교 지도자. 정인세(鄭寅世)[1909~1991]는 경기도 경성부 용산면[지금의 서울특별시 마포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YMCA에서 유도와 덴마크식 기계체조를 가르치고, 광복 후 동광원(東光園)이라는 고아원 원장을 지냈으며, 정신질환자의 안식처인 귀일원(歸一園)을 세웠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정지영[1949~1980]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5월 20일 전남대학교에서 계엄군의 구타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정학근[195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조대훈[194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조사천[194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쳤던 여성 사회운동가이며 교육자. 조아라(曺亞羅)[1912~2003]는 1912년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태어나 기독교 장로로 계몽운동에 힘쓴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조아라는 수피아여학교 보통과[지금의 광주수피아여자중학교]를 거쳐 1931년 수피아여학교 고등과[지금의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한 체육인 겸 독립유공자. 주봉식(朱奉植)[1914~1949]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금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청소년의 체육을 단련시키고, 두 차례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2회에 걸쳐 2년 8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전라남도 광주 지역 교육계에 종사한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 주형옥(朱亨玉)은 1899년(고종 36)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태어났으며, 3.1운동에 참가하여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다. 숭일학교, 중동학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일학교 교사, 목포 영흥학교 교사, 광주 숭명학교 교사를 역임하였으며, 광복 이후 광주숭일중학교장, 호남신학교장으로 활...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채수길[1953~?]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던 중 행방불명이 되어 무명열사로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비석만 세워져 있었다. 21년 뒤인 2001년 무연고 사망자 유골에 대한 유전자 감식 결과 채수길의 유골이 발견되어 이름을 되찾고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전개하고, 미군정기 전라남도지사와 호남신문 사장을 역임한 의사 겸 정치인. 최영욱(崔泳旭)은 1891년(고종 28) 전라남도 나주부 광주군[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수기동]에서 아버지 최학신(崔學新)과 어머니 공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복형은 최흥종(崔興琮) 목사이다. 세브란스연합의학교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의료...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한영길[1950~?]은 1980년 5월 21일 5.18민주화운동 시위에서 시민군 트럭에 탑승해 있던 것이 목격되었다. 그 뒤 가족들이 찾아 헤맸으나 두개골 총상으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알아보지 못하였다.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서 신원 미상의 시신에 대한 지문 감식 결과, 채수길의 시신이 확인된 뒤에 가족들은 시신을...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허봉[1956~1980]은 1978년부터 전라남도 광주시에 있는 들불야학에 다니고 있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5월 15일부터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였던 허봉은 5월 20일 전일빌딩[지금의 전일빌딩245] 근처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힌 뒤 대검에 머리를 찔려 사망하였다....
-
8.15광복 이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군사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친 법조인 겸 인권운동가. 홍남순(洪南淳)[1912~2006]은 1912년 7월 20일 전라남도 능주군[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홍창식과 어머니 박도남의 2남 1녀 중 장남이며, 1941년 윤이정과 결혼하여 7남매를 두었다. 1957년 광주지방법원 판사,...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성규[1947~?]는 조선대학교 출신으로 1980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1가[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1가]에서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평소에 대학생들과 교류가 많아 불안한 시국을 잘 알고 있던 홍성규는 5월 18일부터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고, 5월 20일 시위 중 계엄군에게 머리를 구타당한 뒤 사망...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순권[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재수생이었다. 5월 18일부터 줄곧 시위에 참여하다가 5월 20일부터는 옛 전라남도청에서 숙식하며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5월 27일에 계엄군이 전라남도청에 대대적으로 진입하면서 홍성규는 계엄군...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인표[1960~1980]는 1980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달아오르던 민주화 시위에 5월 15일경부터 참여하였다. 5월 18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시에는 계엄군이 투입되었다.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던 때, 홍인표는 형의 심부름을 나와 남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남동] 광천주조장...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황호걸[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낮에는 직장에 다니는 근로자였다. 5월 18일부터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5월 22일부터는 옛 전라남도청에서 사망자 시신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5월 23일 황호걸은 수 명과 함께 사망자를 수습할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