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7년에 광주목이 광산현으로 강등된 사건. 『성종실록』에 광산현 강등 사건과 관련된 기록이 전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정부(議政府) 좌찬성(左贊成) 이철견(李鐵堅)이 와서 성종에게 아뢰기를, “광주 판관 우윤공은 신의 생질(甥姪)인데, 이달 초2일 밤2경(更)에 관아(官衙)로 돌아올 때, 누가 쏜 화살에 맞아 왼쪽 팔뚝을 다쳤습니다. 그런데도 아전(衙前)들은 매우 경황...
-
1907년 5월부터 전라남도 광주를 포함한 전국에서 일본의 국채를 갚기 위해 전개된 운동. 1907년 5월 전라남도 광주의 민중은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차관을 갚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려 하였다. 일제의 강요에 의한 막대한 차관 도입으로 1907년 그 빚은 1300만 원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연하게 전개된 광주의 국채보상운동은 비교적 다른 지역보다 늦게까지 참여 열기...
-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항일 학생운동. 광주학생운동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민족 차별 교육 및 식민지 노예 교육에 반대한 학생들의 시위를 계기로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시작한 곳과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 1929년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 도립전남사범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전개되었다. 광주고등보통학교는 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는 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 광주공립농업학교는 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
-
1660년 광주향교(光州鄕校)의 유안(儒案)에서 56명의 명단을 삭제한 사건. 광주향교 유적도할 사건은 1660년(현종 1) 누군가가 광주향교에 보관된 유안에서 유생 56명의 명단을 삭제한 사건이다. 유안을 훼손한 사람이 누구인지, 사건 후 처리 과정에서의 광주향교 내 갈등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등에 관해서 알 수 없다....
-
일제강점기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시행한 한센인 구제 사업. 구라사업은 일제강점기 전라도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한센인 구제 사업이다....
-
1950년 7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 검속자들이 경찰, 헌병대 등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건.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은 1949년 4월 좌익 전향자를 계몽·교화·지도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조직된 관변 단체였다. 국민보도연맹은 조직의 성격과 명칭, 운영 방침 등 일제가 '불량학생'을 교화하기 위해 만들었던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鮮思想報國聯盟)· 대화...
-
1994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과 신촌동 일대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이 임금 및 단체협약 갱신을 위해 전개한 노동쟁의. 금호타이어 파업은 1994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과 신촌동 일대 노동자들이 임금 및 단체협상을 위해 벌인 노동쟁의이다....
-
1589년 정여립의 모반으로 전라도 광주를 포함한 동인의 사림들이 다수 화를 당한 사건. 기축옥사는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모반으로 사림세력이 화를 당한 사건으로, 약 3년 동안 1,000여 명에 이르는 동인의 사림들이 처형당하였다....
-
1909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전라도와 광주 지역에서 일제가 항일 의병들을 궤멸시키고자 벌인 대규모 군사 작전. 일제는 전국 각지의 의병 활동을 궤멸시키기 위해 대규모 군사 작전을 전개하였다. 특히 호남 지역에서는 1908년 들어 의병 항쟁이 더욱 확산되었다. 호남 지역은 의병들의 교묘한 전술과 출신 지역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지지 기반이 확고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에 대한 배...
-
호락논변을 중심으로 기정진의 저작인 「납량사의」를 둘러싸고 발생된 성리학적 논쟁. 18세기 이후 기호학계의 최대 쟁점이었던 호락논변(湖洛論辨)은 근 2세기에 걸쳐 조선의 학문과 사상을 비롯하여 정치와 사회 등 다방면에서 발생한 논변이다. 조선성리학의 최대 쟁점이었던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이기론적(理氣論的) 해석에서 제기된 성리학적 주제를 계승하고 있다. 19세기에 접어들어 호...
-
1256년 몽골군의 6차 침입 당시 광주 무등산에 주둔한 차라대(車羅大)의 몽골군이 전라도 일대를 약탈하자 몽골군에 항쟁한 사건. 몽골군은 1255년(고종 42) 6차 침입 시 차라대를 앞세워 평안도·황해도·경기도를 거쳐 전라도를 비롯한 광주까지 점거하였다. 담양에 주둔했던 차라대의 군대는 주둔지를 나주로 옮겼다가 무등산 정상으로 옮긴 이후 전라도 일대를 약탈하였다....
-
광주광역시에서 1980년대를 기점으로 일어난 미술인들 중심의 사회 변혁 운동. 대중미술운동은 1980년대 기존의 심미주의적 미술이 주류를 형성한 가운데 일어난 미술계의 사회 변혁 운동이다. 1980년대 초반 미술 소집단이 전통 판화, 민화, 탱화, 무신도, 풍속화, 장승 등의 전통 미술을 걸개그림이나 벽화, 판화 등의 방식으로 재창조한 것에서 비롯되었고, 5.18민주화운동 이후 대...
-
1894년(고종 31)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심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은 처음 교조(敎祖) 최제우(崔濟愚)의 신원운동(伸寃運動)을 통하여 정치운동으로 성장하고, 뒤에 농민봉기와 결합하여 동학농민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정읍 황토현(黃土峴)과 장성 황룡촌(黃龍村)에서 지방군과 정부군을 각각 격파한 후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이후 정부군과 전주...
-
1977년 4월 전라남도 광주시 무등산 덕산골에 있었던 무허가 판자촌 강제 철거 과정에서 박흥숙이 철거반원 4명을 살해한 사건. 1960년대 급속한 산업화·공업화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유입으로 인한 도시의 인구 집중 현상을 가져왔다. 충분한 주거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도시 인구 과밀은 곧 곳곳에 무허가 판자촌을 만들어냈다. 1971년 경기도 광주군 대단지 사건은 박...
-
1989년부터 광주광역시 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무등산을 공유 자원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운동. 무등산 공유화 운동은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을 보존하기 위해 시민들이 공유 자원을 확보하고 운영하고자 하는 시민 환경 운동이다....
-
1989년 이후 광주직할시 무등산의 환경보호를 위해 추진된 시민운동. 무등산 사랑 운동은 1989년 이후 무등산의 환경보호를 위해 추진된 시민운동이다.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무보협]를 중심으로 2021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
무등산의 환경보호를 위해 1990년 온천지구로 지정된 운림온천의 상업적 개발을 반대하는 시민운동. 무등산 온천개발 반대운동은 1990년 운림온천지구 지정 이후 상업적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이다. 무등산 온천 개발 소식에 광주 시민들은 '무등산 운림온천개발저지 범시민연대회의'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여론이 형성되자 무등산 온천 개발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
1943년 광주서중학교의 항일 학생운동 단체였던 무등회를 중심으로 벌어진 동맹 휴학 사건. 무등회사건(無等會事件)은 광주서중학교의 항일 학생운동 단체였던 무등회가 친일 행위를 한 학생을 구타한 것이 밀고되어 주동 학생들이 구속된 것을 계기로 학생들 사이에 동맹 휴학이 단행된 사건이다. 광주서중학교의 전신은 1920년 전라남도 광주군청 객사인 광산관(光山館)에서 설립된 사립 광주고등...
-
1430년 광주목이 무진군(武珍郡)으로 강등된 사건.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처럼 읍리, 민의 수령에 대한 행패나 모반, 강상죄 등을 범하면 그 고을 자체를 폐지하거나 강등, 인근 군현에 병합시켰다. 고을의 강등은 곧 외관의 격이 강등됨을 말하며 이와 함께 읍호의 개칭도 뒤따르게 된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광주목사 신보안(辛保安)과 기생 소매의 간통 사건과 살인자로 광주고을 사...
-
1960년 3월 15일 전라남도 광주시 민주당원 및 시민들이 모여 벌인 정·부통령 선거 부정행위 규탄 시위. 민주주의 장송데모는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로 치러진 것을 규탄하는 시위였다. 3월 15일 전라남도 광주시 민주당원을 포함한 200여 명의 군중은 전라남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민주주의장송성명서」를 발표하였다....
-
1974년 4월 박정희 정권이 전남대학교 김상윤, 윤한봉 등을 포함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관련자들을 국가 전복 혐의로 왜곡·날조하고 구속·기소하였던 공안 사건.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은 1972년 전남대학교 『함성』지·『고발』지 사건, 1973년 남산 부활절 예배 사건, 197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시위 등을 거치면서 전국 대학가와 지식인, 종교인, 재야인사 등으로 점차...
-
조선 중기 이황과 기대승 간에 전개되었던 사단칠정에 관한 논변. 사단칠정논쟁은 조선 중기에 발생한 조선성리학의 대표적인 철학 논쟁으로 기대승(奇大升)[1527~1572]과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8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사단[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칠정[희(喜), 노(怒), 애(哀), 구(...
-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장기집권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전국민적 항쟁. 4.19혁명은 1960년 3월 15일 집권 자유당이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영구화로 획책한 제4대 대통령선거, 제5대 부통령선거의 부정에 맞선 광주·마산의 3.15의거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세계 혁명사상 유일하게 순수 학생들이 중심이 된 전국민 항쟁이며 시민혁명이다....
-
1969년 박정희 정부의 3선개헌을 반대했던 전라남도 광주시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시위. 1963년 12월 개정된 제3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의 연임을 1회로 한정하였다. 이에 제5~6대 대통령을 연임한 박정희는 제3공화국 헌법으로는 더 이상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대통령 3선을 위해 박정희는 헌법 개정에 필요한 ⅔ 의석 확보를 목적으로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부정...
-
1919년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격렬하게 전개된 만세운동. 1919년 일본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을 준비하던 정광호가 「2.8 독립선언서」을 가지고 귀국하여 최한영, 박팔준, 강석봉 등 '신문잡지종람소[이후 삼합양조회로 개칭]' 청년들을 만나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만세운동 준비에 착수하였다. 1919년 2월 말 김필수 목사가 3.1운동 거사준비위원회 광주...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송정리 운수노동조합원들이 노동권을 확보하고 지키는 과정에서 있었던 노동 쟁의. 1926년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 송정리[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운수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확보하고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해 벌였던 파업 사건이다....
-
1932년 전라남도 광주군에 있는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백청단의 활동이 일제에 발각되어 관련자가 체포된 사건.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었던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은 1929년 백청단이라는 이름의 독립운동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었다. 일제는 독서회(讀書會) 관련 수사 중 단원의 일기장이 발각되어 다수의 학생이 검거되었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에 있었던 수피아여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진 신사참배 반대 운동. 일제는 1910년대 관공립학교, 1920년대 초반부터는 사립학교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1925년 조선신궁(朝鮮神宮) 진좌제(鎭座祭) 의식 이후 언론과 기독교계 사립학교가 반발하자 사립학교 학생들의 신사참배 정책은 일단 보류하였다. 그러다 1930년대 들어 일제는 대륙 침략을 재개하면서...
-
1994년 아시아자동차 광주공장 노동조합이 임금 및 단체협상 문제로 일으킨 노동쟁의. 아시아자동차 파업은 1994년 아시아자동차 광주공장의 노동자들이 임금 및 단체협상을 위해 벌인 노동쟁의이다. 아시아자동차는 1976년 기아산업[기아자동차]에서 인수하였고, 기아자동차는 1998년 현대자동차에서 인수하였다....
-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해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전라남도 광주에 영향을 미친 사건.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해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는 광주 제5여단에 예속된 제4연대 가운데 제1대대를 기본으로 하여 창설되었다. 제14연대는 광주의 제4연대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에 서로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었...
-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 1980년대 5월,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 세력에 맞서 광주시민들이 '유신세력 척결', '비상계엄 철폐' 등을 외치며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하여 항거한 사건이다....
-
고려 후기 전라도 광주 지역에 왜구가 침입하여 약탈한 사건. 왜구가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고려에 처음 침입한 것은 1223년(고종 10)이었지만, 1380년(충정왕 2)부터 우왕 대까지 약 40년 동안 가장 침탈이 심하였다. 특히, 우왕 때에는 무려 378회나 침입하여 최고조에 달하였다. 이 시기 왜구가 수도인 개경 가까이에 출몰하자 개경 천도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연해의 주...
-
1904년 전라남도 광주군 효쳔면 양림리에서 시작된 외국인 선교사들의 정착 및 활동.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 선교사는 전라남도 광주군 효쳔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사택에서 최초의 예배를 드렸다. 이후 전라남도 광주 최초의 교회인 양림리교회[지금의 광주양림교회[통합]]를 세우고 본격적인 선교를...
-
노사 기정진이 1878년 작성한 「외필」의 성리설에 관한 노사학파와 여타 성리학자들의 논쟁. 외필논쟁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이(理) 중심의 성리설(性理說) 입장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외필(猥筆)」에 대하여 기호학계 전반으로 확대된 논쟁이다....
-
1978년 6월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이 비인간적·비민주적인 교육정책과 박정희 독재체제를 합리화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교육헌장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우리의 교육지표'를 선언한 사건. 박정희 정권은 1975년 긴급조치 9호 선포 이후 학원에 대한 억압적인 감시·통제 정책을 강화하였다. 학도호국단의 설치, 대학 정기간행물 등록 취소, 새로운 학칙 제정, 교수 재임용제 등 학원 통제 강...
-
1991년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의 운구 행렬이 광주직할시 시내로 진입하는 것을 돕기 위해 광주 시민과 학생들이 경찰에 대항해 벌인 투쟁. 운암동 투쟁은 1991년 학원 자주화 투쟁 중 진압 부대의 무차별한 폭행으로 사망한 명지대학교 강경대 열사의 운구 행렬을 광주 시내로 들여오려는 광주 시민들과 그것을 저지하려고 했던 경찰 사이에서 벌어진 대치 사건이다. 광주 시민과 경찰은 광주...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들 간에 시비가 붙은 사건. 1926년 6월 광주~송정리 간 통학 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 곤도[近藤]가 조선인은 개고기를 먹는 야만인이라고 비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 김기수가 이에 대해 항변하였고, 며칠 후 곤도는 사과하였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나주경찰서장이 통학 열...
-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전국에서 전개된 민주화 운동.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하여 6월 29일까지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독재·민주화 투쟁이다....
-
1964년 박정희 정부의 한일회담 진행 및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여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일어난 시위. 6.3항쟁은 박정희 정부의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여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
1978년 전라남도 광주시 내의 대학생들이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으로 연행된 전남대학교 교수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 1978년 6월 27일 전남대학교 교수 11명은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을 발표한 후, 곧바로 중앙정보부 전남지부로 연행되었다. 이에 전남대학교 기독학생회 및 운동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연행된 교수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반도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북한 인민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전쟁. 북위 38도선[삼팔선] 곳곳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군사 충돌은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총공세를 펼치면서 전면전으로 발전하였다. 북한 인민군은 6.25전쟁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뒤, 미군 제24사단과 싸워 대전을 점령하였다. 7월 하순에 접어들자 북한 인민...
-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1946년 미군정의 미곡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과 시정 요구를 위해 발생한 봉기. 1946년 광복 직후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미군정의 강제적인 양곡 공출, 미곡 정책의 실패 등으로 인해 식량난이 계속되자, 대구·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추수봉기가 발생하였다. 이는 노동자 중심의 9월 총파업, 농민 중심의 10월 인민항쟁으로 이어지는데, 1946년 9~12월에...
-
1971년 4월 27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후보 박정희와 신민당 후보 김대중이 대결하여 민주공화당 후보 박정희가 득표율 53.2%로 당선되었다....
-
1747년 광주향교(光州鄕校)의 향안이 파기된 사건. 전라도 광주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이후에도 오랫동안 기존의 사족들이 향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얼마 후 신향 세력의 도전으로 광주의 향촌 사회에도 커다란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례에 걸쳐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여 전라도 광주를 비롯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임진년에 일어났다 하여 임진왜란이라 하며, 제2차 침략을 정유재란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관군이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지며 한양이 함락되자, 전라도 광주 지역을 비롯한 호남 각지에서 김천일·고경명·김덕령·최경회 등이 의병을 일으켜 이에 대항하였다....
-
1960년 전남방직 광주공장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체결 문제를 두고 벌인 노동쟁의. 전남방직 광주공장에서는 1960년 4.19혁명 이후 활발한 노동쟁의가 이루어졌다. 이는 1950년대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근로조건 개선 등을 중심으로 노동쟁의를 전개했던 경험과 4.19혁명 이후 급증한 노동자 투쟁의 분위기가 맞물린 결과였다. 전남방직 노동조합은 1960년 6월, 1일 노동시간을...
-
2003~2007년까지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주민소환조례제정운동본부 주도로 이루어진 주민소환제 조례 제정운동. 주민소환 조례제정운동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광주광역시 25개 시민 단체로 구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시민협] 주민소환조례제정운동본부 주도로 이루어진 주민소환제 조례 제정운동이다....
-
1995년부터 1998년까지 '푸른광주21협의회'를 중심으로 지역 단위에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시민운동.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SD]'을 위한 행동계획으로 제시된 「의제 21」을 각국의 지방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에 대한민국은 1995년 지방자치단체의 '지속가능한...
-
광주광역시의 도심철도 폐선부지를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환경 운동. 1998년 2월 폐선부지 주변 주민 300여 명은 광주의 도심철도 폐선부지 활용과 관련하여 광주시의회에 ‘폐선부지 녹지공원화 및 자전거도로 설치’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같은 해 1998년 광주환경운동연합은 폐선부지를 친환경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1...
-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되면서 6.3항쟁에 이어 일어난 반대 시위. 한일회담 반대시위는 박정희 정부의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한 시위로, 전라남도 광주시에서는 1964년 6.3항쟁에 이어 1965년 3월 31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시위로부터 시작되었다. 같은 해 8월까지 시위가 계속되었으나 박정희 정부의 위수령 발동으로 일단락되었다....
-
1972년 12월 전라남도 광주시 내의 여러 학교에 배포되었던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함성』지로 인해 8명이 구속되었던 사건. 1972년 유신헌법은 사실상 박정희의 1인 집권을 영구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간접선거로 대통령 선거 방식을 바꾸는 유신헌법의 통과를 위해 그 해 10월 박정희는 국회를 해산하고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으며, 각 대학에...
-
1923년부터 1935년까지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일어난 형평사 운동. 형평운동(衡平運動)은 백정(白丁)들의 인권 존중과 신분 해방을 주창한 운동이며, 1923년 4월 25일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경장 이후 불평등한 신분 질서는 폐지되었으나, 관례에 의한 신분 질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형평운동은 3.1운동 이후 국민 계몽과 인권 운동에 앞장선 지...
-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에 발생하고 현재까지 이어져 온 개신교 영성운동. 호남 영성운동은 이세종(李世鐘)[1880~1942]과 최흥종(崔興琮)[1889~1966], 강순명(姜順明)[1897~1959], 이현필(李鉉弼)[1913~1964] 등이 관련된 자생적인 영성운동으로 실천 중심의 신행일치 신앙을 지향한 한국적 토착 영성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