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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13
한자 李貞幹
영어음역 Yi Jeonggan
이칭/별칭 고부(固夫),효정(孝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안홍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효자
성별
생년 1360년연표보기
몰년 1439년연표보기
본관 전의(全義)
대표관직 중추원사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고부(固夫), 시호는 효정(孝靖). 아버지는 원종공신(原從功臣) 이구직(李丘直)이고, 어머니는 정대부인(貞大夫人) 김씨(金氏)로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김인관(金仁琯)의 딸이다. 부인은 정경부인(貞敬夫人) 문씨(文氏)로 순평군(順平君) 문달한(文達漢)의 딸이다. 슬하에 우통례(右通禮) 이사흠(李士欽), 전성부원군(全城府院君) 이사관(李士寬),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이사신(李士信), 철원도호부사(鐵原都護府使) 이사민(李士敏), 지영암군사(知靈岩郡事) 이사혜(李士蕙)와 세 딸을 두었다.

[활동사항]

이정간(李貞幹)[1360~1439]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으나 과거를 보기 위한 공부는 힘쓰지 않았다. 아버지의 음덕으로 벼슬에 올라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거쳐 1405년(태종 5) 강화부사가 되었다. 강화부사를 역임하는 동안 목장에 호랑이가 뛰어들었는데, 아무런 피해 없이 호랑이를 포획하여 비단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그 후 사헌부의 요직과 내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러 102세의 노모(老母)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자신도 80세의 고령이면서도 어머니를 즐겁게 하기 위해 색동옷을 입고 병아리를 희롱하는 등 출천지효(出天之孝)로 이름을 날렸다.

[저술 및 작품]

어머니 김씨를 위해 1429년(세종 11) 경수연(慶壽宴)과 1432년(세종 14) 영친연(榮親宴)을 베풀었는데, 이때 손님들이 지은 축시(祝詩)를 1509년(중종 4) 후손 이계복(李繼福)이 『경수시집(慶壽詩集)』으로 간행하였다. 1682년(숙종 8) 후손 이만봉(李萬封)이 행록(行錄) 등을 보충하여 재간행하였으며, 이 책을 1918년 후손 이근용(李根容)이 『무오속고(戊午續稿)』를 보충하여 다시 펴냈다.

이 책에는 세종의 어필, 교서와 이에 대한 그의 사전(謝箋), 『경수시집』의 29수, 『영연시집(榮宴詩集)』의 20수, 초간(初刊)과 재간(再刊)의 발문, 그의 행록, 아버지 이구직의 묘갈문(墓碣文), 모친 김씨의 묘표(墓表), 그의 신도비문(神道碑文), 아들 이사관 등 후손이 남긴 시집 『관동제영(關東題詠)』의 16수, 1918년 당시 후손들의 추모시 『무오속고』의 114수, 삼간(三刊) 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묘소]

묘소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경기도 장단도호부(長湍都護府) 임강현(臨江縣) 남촌(南村) 우근동(于勤洞)에 있었다. 그의 신도비문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도비도 같은 위치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양지리에 위치한 송천서원(松泉書院)에서 배향하고 있으며, 경양사(驚陽祠)에서 신위를 모시고 있다. 경양사에는 이정간 유허비도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세종이정간의 효행을 칭찬하며 안석(案席)과 궤장(几杖), 어필을 하사함과 함께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임명하며 성대한 잔치를 베풀게 하였다. 이때 세종의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이라는 어필은 대대로 전의이씨의 가훈으로 전승되었다. 세종은 교지를 내려 그를 칭찬하였고, 당시 우의정이던 맹사성(孟思誠)은 시를 지어 효성을 칭송하였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1. 이정간이 80세(만79세)에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아마 병환인데 80세에 색동옷을 입고 노모를 기쁘게 해드린 것이 맞는지요?
  • 답변
  • 디지털구로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내용은 국역 인물지에 기록된 내용으로 중국의 옛효자 노래자와 같이 후손들에게 효자로 전해 내려오는 인물입니다. 감사합니다.
201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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