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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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景任 |
영어음역 | No Gyeongim |
이칭/별칭 | 홍중,경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명자 |
[정의]
조선시대 구미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菴). 할아버지는 노희식(盧希軾)이고, 아버지는 노수함[(盧守諴), 1516~1573]이다.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열(張烈)의 딸이며, 부인은 풍산유씨(豊山柳氏)로 유운용(柳雲龍)의 딸이다.
[활동사항]
노경임(盧景任, 1569~1620)은 장현광(張顯光, 1554~1637)과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91년(선조 24) 별시에 병과 12등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정자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에 대항하였다. 1594년 사헌부지평을 지냈고, 이어서 예조좌랑·강원도순안어사(江原道巡按御使)·예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이 되어 삼남지방을 순찰하면서 일을 잘 처리하여 신임을 얻었으며, 1597년 이원익의 지시에 따라 전쟁 상황을 상세하게 보고하여 선조의 신임을 얻고 교리로 임명되었다. 1598년 사간원헌납과 종부시전적에 제수되었지만 부임하지 않았고, 그 뒤 지영해부사(知寧海府事)·성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과거에 스승 장현광의 심부름으로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을 만나보고 돌아와 대단히 간사한 인물이라고 말했던 일이 정인홍에게 알려져서 무고한 탄핵을 받고 성주목사에서 파직되었다. 이후 낙동강변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선산(善山)에서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경암집(敬菴集)』이 있다. 사후 승정원도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