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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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濟 |
영어음역 | Gim Je |
이칭/별칭 | 제해,백암,충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일선(一善). 호는 백암(白巖). 아버지는 김원로(金元老)이며, 동생은 농암(籠巖) 김주(金澍)이다.
[활동사항]
김제(金濟)는 고려 공양왕 때 조봉랑(朝奉郎)으로 평해군수에 재직하다가 망국의 소식을 듣고 깊이 통곡하였으며, 중국 제나라 때 나라를 위하여 바다에 빠져 죽은 노중련(魯仲連)의 고사를 본받아 이름을 제해(濟海)로 고쳤다. 이후 시 한 수를 지어 바닷가 큰 바위에 써두고는 떨어진 의관으로 돛단배를 타고 동해로 나아가 종적을 감췄다.
1785년(정조 9) 농암(籠巖) 김주(金澍)의 위패를 모시던 내격묘(來格廟)를 중수할 때 상량문에서 구전되던 내용이 사실임이 밝혀졌고, 4년 후 한 선비의 집에서 『해동시보(海東時譜)』에 기록된 벽상시(壁上詩)가 발견되어 당시의 사실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개(忠介)이며, 1798년(정조 22) 정조가 직접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다. 안동의 고죽서원(孤竹書院), 울진의 충절사(忠節祠)·운암서원(雲巖書院), 곡성의 동진사(東津祠) 등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