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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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義洞 |
영어음역 | Inui-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규택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자연마을로 교동(校洞), 중리(中里), 남산(南山), 마차골[馬車谷] 등이 있다. 교동은 옛 향교가 있었다는 연유에서, 중리는 인동장씨 중리파의 유허지(遺墟地)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은 인동장씨 남산파가 세거한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마차골은 임진왜란 당시 마차가 집결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환경]
천생산 서쪽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 마을이다. 남쪽은 유학산 줄기 끝부분에 해당하는 봉두암산(鳳頭岩山)이, 북쪽은 천생산 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앞쪽은 인의동과 황상동 계곡, 칠곡군 가산면 방면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멀리 낙동강이 보인다. 칠곡군 가산면 방면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은 천생산 남쪽 비탈면 끝자락을 따라 흐르는 하천으로 인의동 앞들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 하천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칠곡군과 구미시 시가지를 연결하는 지방도 903호선이 지난다. 하천 상류부에 자리 잡은 신동(新洞) 아래쪽에는 대규모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 인동군 읍내면(邑內面)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산동, 교동을 통합하여 인의리라 하고 칠곡군 인동면(仁同面)에 편입하였다. 1978년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구미시로 통합됨에 따라 구미시 인의동이 되었다. 황상동, 신동, 구평동과 함께 행정동인 인동동 관할에 있다.
[현황]
2009년 2월 현재 면적은 2.98㎢이며, 총 8,513가구에 18,782명[남 9,431명, 여 9,35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김해김씨, 인동장씨, 전주이씨, 밀양박씨, 경주이씨, 일선김씨, 파평윤씨가 많이 거주한다. 동쪽으로 신동, 서쪽으로 광활한 구미3공단, 남쪽으로 구평동, 북쪽으로 황상동과 접한다.
1960년대까지 논농사와 밭농사 중심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 모습을 유지해 오다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면서 길을 넓혀 포장하고, 다리를 놓고 마을 회관을 짓는 등 외형적인 변화를 겪었다. 1978년 구미시로 승격한 뒤 내륙 최대의 공업 단지로 발전해 나감에 따라 옛 촌락의 모습은 사라지고 현대적인 시가지로 변모하였다.
1990년대 이후 인의동이 속한 인동동의 세대 수와 인구 수, 사업체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구미시 시가지 구역이 낙동강 오른쪽(서쪽)에서 시작하여 왼쪽(동쪽)으로 확장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업체 전체 수에 비해 제조업체 수와 종업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인동동이 공업보다 주택과 상업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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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동의 사회,경제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