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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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堂里 |
영어음역 | Sinda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신당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안귀남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신당리는 서울나들, 원당(院堂), 반월리(半月里), 뒷골, 우항(牛項), 감말(甘末)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신당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감미동, 우항동, 관동, 복래동, 원당동, 신동, 헌덕동, 구미동 각 일부를 병합하고 신동과 원당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서울나들은 영남 선비들이 서울로 과거 보러 갈 때 드나들던 길목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당은 약 30년 전에 원(院)과 사당(祠堂)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시대 국립 여관인 유원(柳阮)이 있던 곳이어서 원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반월리는 마을을 둘러싼 산세가 반월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뒷골은 큰집에서 분가한 사람들이 큰집 뒤에 살면서 큰집을 드나들 때 뒷문으로 출입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분가한 마을 사람들이 알뜰하게 살아 가난을 이겨 내어 마을에 복이 왔다고 하여 복래동(福來洞)이라고도 한다.
우항은 마을 지형이 소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왕동(王洞)이라고도 한다. 감말은 잘살던 윤씨들이 마을 앞에 못을 만들고부터 차츰 못살게 되자 달콤한 시절은 끝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이 복래동으로 옮겨 가서 폐한 마을이 되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선산군 몽대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감미동, 우항동, 관동, 복래동, 원당동, 신동, 헌덕동, 구미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당리로 개칭하고 산동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구미시 산동면 신당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남쪽으로 옥계동, 동쪽으로 봉화봉(烽火峰)을 경계로 인덕리와 봉산리, 서쪽으로 덕곡(德谷)의 고개를 경계로 성수리, 북쪽으로 인덕천(仁德川)과 접한다.
[현황]
2007년 8월 1일 현재 면적은 3.67㎢이며, 총 273가구에 704명[남 393명, 여 31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구미4공단이 조성되는 등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지역으로 밀양박씨, 평해황씨, 안동권씨, 달성서씨 등이 많이 거주한다.
마을에는 쇠똥재와 반월리에 관련된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쇠똥재는 천지개벽할 때 큰비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고 산봉우리가 쇠똥만큼 남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반월리는 예전에 인동읍으로 가던 사람들이 이곳을 인동으로 잘못 알고 찾아들 정도로 컸는데, 마을 중심의 사랑을 헐고 묘지로 바꾸면서 마을이 거의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