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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056
한자 桂室里山神祭-距離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Service for the Mountain God and Ancestral Memorial Services of Gyesil-ri
이칭/별칭 계실리 산신제와 장승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계실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훈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산신제|마을 제사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의례장소 음촌마을 뒷산의 당집[산신제]|마을입구 장승 앞[거리제]
신당/신체 신위와 산신도[산신제]|장승과 선돌 2기[거리제]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계실리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계실리 산신제는 ‘산막 산신제’와 ‘음촌 산신제’로 따로 행해졌다고 하나, 산막에 사는 사람이 많이 줄어서 지금은 음촌 산신제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산신제를 치르는 공주시 사곡면 계실리 음촌은 양촌 밑으로 계실교 건너 마을인데,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음촌이라 부른다.

지금은 사라진 산막 산신제의 산막은 계실리 동북쪽 골짜기로 무성산 아래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산막은 계실에서 제일 오래된 마을이라 하는데, 그만큼 산신제의 역사도 오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거리제는 계실리 길목에 세워진 10여 기의 장승과 선돌 2기 앞에서 지낸다. 산신제와 같은 날 지내는데, 마을 뒷산에서 산신제를 마치면 마을 입구로 내려가 장승제를 지낸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은 계실리 음촌 뒷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산제당이 있다 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산제당골’이라고 부른다. 당집은 처음에는 기와집이었는데, 1966년에 전면과 측면 각 한 칸의 슬레이트 지붕으로 새로 지었다. 산제당의 상량에는 ‘단기사이구구년병오윤삼월초삼일임자사시견주상량묘좌문석규경부(檀紀四二九九年丙午閏三月初三日壬子巳時堅柱上樑卯坐文錫奎敬負)’라고 적혀 있다.

산제당 내부에는 ‘산신위(山神位)’와 산신도가 봉안되어 있고, 그 아래에 제기 등이 보관되어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산신도는 약 100년 전에 심한 폭풍이 불어 산제당이 무너졌을 때도 거센 비바람에 젖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산신도의 영험함을 믿는 사람이 많다. 한편, 지금의 산신도는 30년 전에 새로 그려서 봉안한 것이라 한다. 산신도에 그려진 산신은 마을 뒤에 자리한 무성산(茂盛山)의 산신이라고 전한다. 산신도의 산신은 시동을 거느린 할아버지의 모습이며, 호랑이와 시동을 거느리고 있다. 한편 산신의 머리에는 두광이 그려져 있다.

거리제를 지내는 마을 입구에는 장승 10여 기와 선돌 2기가 도로 양편에 서 있는데, 약 1m 정도 크기의 선돌 2기가 길가 장승 사이에 있다. 마을 길목의 서쪽에 남(男) 장승이, 동쪽에 여(女) 장승이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다. 도로 사이에 장승을 세웠다는 것은 장승 사이에 금줄을 걸고 액(厄)을 미리 막고자 했다는 의미가 있다. 과거에는 오릿대도 세웠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장승과 선돌 2기가 각각 양쪽에 세워져 있다.

나무 장승을 세우는 전통은 약 40여 년 전부터 중단되었으나, 1995년도에 재현하자고 하여 해마다 좋은 나무로 새로 깎아 세운다. 그 옆의 선돌형 장승은 과거부터 있던 것이라 한다. 이 돌을 마을 사람들은 흔히 ‘장승돌’이라고 부른다. 남장승에는 ‘천하대장군’이라는 명문을, 여장승에는 ‘지하여장군’이라고 적었다.

[절차]

산신제는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에 공주시 사곡면 계실리 음촌 뒷산에서 진행된다. 노인회가 주관이 되어 동계 임원의 협조를 받아 진행하는데, 최근에는 마을 사람이 많이 줄고 산신제를 치르는 마을 어른들도 줄어서 절차를 간소화했다. 과거에는 제일(祭日)을 사흘 앞두고 제주·축관·유사를 선출하여 제사를 주관하도록 했지만, 지금은 한 명만을 선정한다고 한다.

간소화된 의례 때문인지 과거에 있던 의례 전 금기도 많이 줄었다. 제비(祭費)는 본래 집집마다 조금씩 쌀을 거두어 사용하였으나, 1990년대 들어서 걸립 대신에 마을에서 공동기금을 마련하여 제의 때 일부를 사용한다. 제물(祭物)은 돼지머리·백설기·삼색실과·과일·술 등이다. 산제와 거리제 제물은 따로 마련한다.

제사일 밤 11시경이 되면 제관이 혼자 산으로 향한다. 지게에 지고 간 제물을 내려서 산제당 내부의 선반 위에 진설한다. 술을 따라 올리고 절을 한 후 곧이어 축문을 읽고, 제당에 소지를 올린다. 제관은 소지를 올린 후 불을 끄고 다시 마을로 내려와, 제관 집에 마련해둔 제물을 가지고 거리제를 지내러 마을 입구의 장승 앞으로 향한다.

장승 앞에 이르면 남녀 장승 사이 도로에 짚을 가지런히 깔고 마을 밖을 향하여 제물을 진설한다. 제사 방식은 집안에서 기제사 지내는 방식과 유사하다. 제관이 술을 붓고 절을 한 뒤, 축을 읽고 소지를 올린다. 제의를 마친 후에 제물을 거두어 다시 제관을 맡은 집으로 들어가는데, 이때 마을 어른들은 제관의 집을 방문하여 노고를 격려한다. 밤이 늦어 보름날 아침에 식사를 마친 후 마을 사람들은 제관을 맡았던 집에 가서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네고 거둔 제물을 음복한다.

[축문]

"이 해의 차례는 무오년인데 정월 열 나흗날 계축에 마을을 대표하는 정순헌은 무성산의 산신령께 감히 아뢰나이다. 엎드려 비옵거니 산막동의 동민 일동이 감히 자그마한 정성을 표하오니 기쁘게 흠향하여 주소서. 엎드려 축원드리기는 산막동 동민이 집안이 태평하고 올해에도 건강를 누리기를 백번 절하고 축원드립니다. 우러러 고하노니 삼가 주과포해를 드림에 흠향하소서(維歲次 戊午正月 十四日 癸丑 代表 鄭順憲 敢昭告于 茂盛山神靈之下 伏以山幕洞民一同 敢表小誠 喜以歆嚮 伏祝 山幕洞一同 家內太平 此歲建亨 百拜 祝願仰告 謹以酒果脯醯 尊獻 尙饗)"

[부대행사]

거리제를 지내기에 앞서 동네의 젊을 사람들은 좋은 나무를 고르고, 솜씨 좋은 사람이 장승을 깎아 세운다. 정월 보름에 앞서 산신제와 거리제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풍물을 치며 엄숙한 제의의 금기를 즐겁게 털어낸다.

[현황]

공주시 사곡면 계실리는 여전히 매년 음력 정월 14일에 산신제와 거리제를 지내는데, 원래 산신제는 ‘산막 산신제’와 ‘음촌 산신제’가 따로 있었으나, 지금은 음촌 산신제만 지낸다. 마을 뒷산의 산신제를 마치면 마을 입구에 미리 세워둔 장승 앞에서 거리제(장승제)를 지낸다. 장승은 매년 좋은 나무로 새로 세운다. 거리제의 규모는 전에 비해 작아졌지만,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계실리의 장승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부정적인 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고 여긴다.

현대화라는 미명 아래 농촌 전통의 민속이 사라지고 있는데, 공동체의 제의가 남아있다는 것은 그만큼 농촌 마을의 공동체 의식이 굳건하다는 것과 전통의 계승이라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농촌 공동체는 예전의 번창과는 다르게 점점 간소해지고 축소되고 있어 민속 전승의 의미에서 볼 때 아쉬워질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3.23 마을명칭 한자 수정 桂實 -> 桂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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