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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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神話 |
영어음역 | Jilmajae Sinhwa |
영어의미역 | Myth of Jilmajae Pas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창영 |
성격 | 현대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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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서정주 |
창작연도/발표연도 | 1975년 |
[정의]
1975년 서정주(徐廷柱)[1915~2000]가 질마재를 배경으로 설화들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시집.
[개설]
『질마재신화』는 서정주가 자신의 고향 질마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상으로 삼아 창작한 여섯 번째 작품집이다. 서정주의 호는 미당(未堂)이며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壁)」으로 등단하였다. 1941년 첫 시집 『화사집』을 출간하였고, 이후 『귀촉도』, 『동천』, 『80소년 떠돌이의 시』 등의 시집을 남겼다.
『질마재신화』의 주요 작품으로는 「신부」, 「해일」, 「상가수의 소리」, 「소자 이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까치 마늘」, 「알묏집 개피떡」, 「말피」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정주는 『질마재신화』를 출간하기 이전인 1972년 『현대문학』 3월 호에 「신부」, 「해일」, 「상가수의 소리」, 「소자 이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 등을 발표하였다. 또한 1974년 『시문학』 2월 호에 「간통사건과 우물」, 「분지러버린 불칼」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후에도 서정주는 1975년까지 『현대문학』, 『시문학』, 『신동아』 등에 질마재와 관련한 작품을 발표하여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서정주는 그동안 각 문예지에 발표했던 질마재 관련 작품을 묶어 일지사에서 1975년 『질마재신화』라는 이름의 작품집을 출간하였다.
[구성]
시집 『질마재신화』는 총 45편으로 구성된 서정주의 현대 시집이다. 질마재는 제도적인 틀에 의해 평가되고 결정되는 완전성을 지향하는 사회가 아니며, 인간의 존재에 대한 불안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지배와 피지배 사이의 관계 역전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절대성의 해체로 인하여 다의적인 가치관이 상존한다. 심지어 마을 존립에 있어서 가치 혼돈을 초래한 이들까지를 수용하는 과감성을 지닌 유동적인 공간이다.
질마재는 불가사의한 사실들과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힘을 발휘하는 세계이며, 주체보다는 절대성 여부로 모든 것이 평가받고 판단되던 시대의 이야기에 해당한다. 서정주의 『질마재신화』에는 주술성이 위력을 발휘하는 흔적들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내용]
토속적이며 주술적인 원시적 샤머니즘이 『질마재신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서정주는 이 시집에서 이미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자신의 내밀한 경험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토속적인 방언과 구어를 활용하여 우리의 전통 세계를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서정주에게 질마재는 인간의 본성이 회복되는 곳이며, 잠재되어 있던 원시성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질마재는 열려진 공간이며, 변화 가능성을 내함하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시인이 질마재를 언급하는 것은 그들을 반추함으로써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논의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이다. 가치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진정한 가치의 의미를 망각한 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깨우침을 주기 위한 것이다.
시인은 질마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 시 전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시인에게 가치의 척도는 부나 명예와 같은 세상의 가치 평가와 거리가 있다. 서정주에게 가치의 척도는 부나 명예와 같은 세상의 가치 평가와 거리가 있다. 그가 질마재의 지배층들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소외받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대상들을 시의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李朝 英祖 때 남몰래 붓글씨만 쓰며 살다 간 全州 사람 李三晩이도 질마재에선 시방도 꾸준히 神 노릇을 잘하고 있는데, 그건 묘하게도 여름에 징그러운 뱀을 쫓아내는 所任으로섭니다.
-「李三晩 이라는 神」 부분
이 땅 위의 場所에 따라, 이 하늘 속 時間에 따라, 情들었던 여자나 남자를 떼내 버리는 方法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읍죠.
그런데 그것을 우리 질마재 마을에서는 뜨끈뜨근하게 매운 말피를 그런 둘 사이에 쫘악 검붉고 비리게 뿌려서 영영 情떨어져 버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 중략 …
그래 아닌게아니라, 밤에 燈불 켜 들고 여기를 또 찾아 들던 놈팽이는 금방에 情이 새파랗게 질려서 “동네방네 사람들 다 들어 보소…… 이부자리 속에서 情들었다고 예편네들 함부로 믿을까 무섭네……” 한바탕 왜장치고는 아조 떨어져 나가 버려다니 말씀입지요.
-「말피」 부분
『질마재신화』에 등장하는 ‘李三晩’이나 ‘말피’는 주술 의미와 함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대상물이다. 이들은 뱀과 정을 끊는 효험이 있다는 사람들의 믿음을 근간으로 하는 것들로, 이성이나 논리적인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민간에서 “情들었던 여자나 남자를 떼내 버리는 方法”으로 사용되는 말피는 그 실효성이 의심됨에도 불구하고 서정주의 시에서는 즉각적인 효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뜨끈뜨끈하고 매운”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매우 감각적이며 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에 그 효과 또한 강력하다. 자신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신의 힘을 빌리는 이와 같은 행위는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이렇듯 질마재에 포진하고 있는 주술성은 서정주의 인식 세계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세계 안에서 이들은 세력을 확보하고, 삶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안 하는 어느 아침에 보니까 上歌手는 뒤깐 똥오줌 항아리에서 똥오줌 거름을 옮겨 내고 있었는데요. 왜, 거, 있지 않아, 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우리네 똥오줌 항아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붕도 앗세 작파해 버린 우리네 그 참 재미있는 똥우줌 항아리, 거길 明鏡으로 해 망건 밑에 염발질을 열심히 하고 서 있었읍니다. 망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털들을 망건 속으로 보기좋게 밀어 넣어 올리는 쇠뿔 염발질을 전잔하게 하고 있어요.
明鏡도 이만큼은 특별나고 기름져서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하던 그 노랫소리는 나온 것 아닐까요?
-「상가수의 소리」 부분
질마재의 상가수, 그는 현실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이승과 저승을 중재하는 자이다. 시인은 죽음을 연계하는 자의 입장에서 비껴 있을 때의 일면을 보여줌으로써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무속의 대리인 차원이 아닌 평범한 농사꾼의 얼굴을 보게 한다. 가장 더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똥오줌 항아리를 특별하고 기름진 ‘明鏡’으로 삼는 생활 속의 미학을 통해 이승과 저승의 연계에 따른 심오한 비밀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미 삭을 대로 삭고 정제된 똥오줌 항아리와 명경의 대치는 마음이 평안한 상태에서 가능한 것으로 내적 평정을 통해 획득된다. 이는 배설의 차원을 넘어섬으로써 정화된 체험에서 건져올린 비옥한 건실함이자, 생활 미학을 반영한다. 이렇듯 질마재에는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 이웃하고 있으며, 경계 허물기를 통해 연속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윤식은 이 작품집에 수록된 「상가수의 소리」라는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이 “뙤약볕 같은 요령 소리”의 경지는 한 사회의 한계 인간에게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똥오줌 항아리를 明鏡”으로 하여 자기 얼굴을 비춰보는 그 기름진 ‘거울’의 생활과 동질적일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나는 예술의 최고 경지란, 할 수만 있다면 “이승 저승을 두루 무성하게 하는 것”에까지 떨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승 저승에 두루’란 ‘시(時), 공(空)의 초월(超越)’이라는 철학 단위와도 꼭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윗길이다.
한국인의 문제라고 생각할 때 나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첫째, 이 심미파 상가수는 변두리 인간에 속한다는 점이다. 떳떳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감추는 듯한 그러한 어두운 생명의 측면이다. 둘째, 그러나 ‘뙤약볕 같은 요령 소리’를 내는 그 ‘예(藝)’와 동질적인 것이 ‘똥오줌 항아리’라는 점이다. 똥오줌 항아리는 유학자나 자연파나 심미파가 함께 집집마다 사용하는 일용품, 필수품이다. 이것은 한국인의 생활상의 공통 기반이다. 셋째, 이 공통 기반의 용도에는 그 기본형이 물론 똥오줌을 담는 것이지만, 오직 심미파만이 이 기본형의 용도에다 심미적 몫을 부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거울’의 용도가 가해졌다는 것은 이 변두리 인간들에게 일시적이거나 우연성일 수가 없다.
위의 지적처럼 시인 서정주는 근대화 속에서 사라져간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과 인간다움에 대해 ‘질마재’ 사람들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반추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법과 가치 있는 세계에 대한 시인의 탐구이자 진지한 모색에 해당한다.
『질마재신화』의 의미는 단순한 과거 재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옛것에 대한 시인의 회고로서의 가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아가 미래의 우리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질마재가 시간의 경과에 의해, 그리고 우리들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우리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근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근대화는 유년 시절의 풍부했던 사적이고 내밀한 기억들을 보편적이고 동질한 차원의 기억으로 통일시켜 버린다.
질마재는 현대인들의 동질화된 삶의 구도를 깨뜨리려는 시인의 의도를 담고 있다. 상식이 상식으로서 가치를 잃어버릴 때, 거기에 개입하는 것은 신화적인 속성이다. 시인이 질마재에 ‘신화’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렇기에 이 공간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이 신비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이 세계에서는 객관적인 사실 대신에 비현실적이고 주관적인 이삼만의 글씨, 전봉준의 일화, 그리고 황먹보 이야기 등이 당연시되고, 이들 대상들은 절대성을 획득하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정주가 과거를 자기 시의 중심 영역으로 내세운 것은 과거로의 복귀나 단순 재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현대가 신화가 상실된 시대이며, 신화를 대체하는 가짜 신화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시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는 이에 대한 해답은 자명해진다. 서정주가 재현해 낸 과거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신화의 진정한 의미를 재확인하고 이를 회복하고 재현해 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기저에는 인류학적 문화의 공감대가 형성됨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근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정주에게 질마재는 자성을 통해 현재를 미래로 이어주게 하는 연결체이자 무너진 우리의 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시공간이라 할 수 있다.
[특징]
『질마재신화』는 시인의 유년 시절 전반을 지배했던 무속적 샤머니즘을 모태로 하여 토속의 세계가 우리 삶을 관통하던 시대의 기록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인의 통찰력과 탁월한 표현력에 힘입어 우리의 친근한 이웃이자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로 재창조되고 있다.
『질마재신화』는 『현대문학』에 「신부」가 연재된 이래 『시문학』[1974~1975]에 게재된 연작시이다. 이 무렵은 새마을운동으로 인하여 근대화가 그 성가를 높이던 시기이며, 근대화와 개발의 이름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모습들이 급속하게 자취를 감추게 된 시기에 해당한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이 급속하게 전파됨에 따라 이전의 것들은 청산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으며, 제거와 도태를 강요당함으로써 사람들은 가치의 혼란과 함께 가치 하락의 심화를 경험하였다.
[의의와 평가]
『질마재신화』는 미당 서정주의 정신 세계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였던 고향 질마재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한국의 토속적인 아름다움을 집약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하여 근대와 문명이라는 변화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린 진정한 우리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그것들이 주는 미덕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