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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282
한자 演劇
영어음역 Yeongeuk
영어의미역 Play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숙희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행해지는 공연 예술 중 무대에서 배우나 그 외 전달 매체의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종합 예술.

[개설]

고창군에서 연극 활동이 활발한 편은 아니다.1995년 연극 「꽃신」이 공연되기도 하였다. 고창에서 공연된 공연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음악극 「천명-동학」]

고창군은 동학 농민 혁명을 주도했던 전봉준의 태생지이다. 또한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은 1894년 3월 20일 동학 농민 혁명군이 창의문을 선포하면서 일개의 지역 봉기에서 벗어나 전국적인 봉기로 출발한 무장 기포의 시발지이기도 하다. 또 손화중포(孫化中包)의 도솔암 마애불 비기 탈취 설화가 현재까지 전승되어 오는 곳이기도 하며, 동학 농민 혁명군의 훈련장이며 숙영지인 여시뫼손화중 도소 및 피체지가 당시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더라도 음악극 「천명-동학」이 동학 농민 혁명을 소재로 하여 고창을 비롯한 전라북도 일대를 배경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은 그 의미가 크다.

창작 창극 「천명-동학」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을 예술적으로 재창조한 작품으로 동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을 중심으로 봉건 체제에 대항하고 외세로부터 민족을 지키려 하는 동학 농민 운동의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천명-동학」은 장르적으로 보면 신창극(新昌劇)이다. 중국에 경극이 있고 일본에 가부키가 있는 것처럼 우리 민족 전통 음악극의 전통은 판소리와 창극이다. 이 작품에 ‘신’이란 말을 붙인 것은 작창자에 의해 이루어진 창극이 아닌, 작곡가의 음악 세계로 만들어진 음악극이기 때문이다.

1. 구성 및 내용

「천명-동학」은 1894년 동학 농민 혁명 100주년을 맞아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애를 중심으로 봉건 체제에 대항하고 외세로부터 민족을 지키려 한 동학 농민 혁명을 민족 음악극으로 기획한 공연이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부가 8장으로 구성되어 총 16장으로 만들어져 있다.

「천명-동학」은 처음과 끝이 같은 수미 쌍관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프롤로그의 전봉준 압송 장면은 후미 에필로그의 전봉준 처형 장면과 이어진다. 음악극은 전봉준녹두장군으로서의 행보와 일반 백성의 가정 중 복례 가정의 불행과 복례의 역사의식이 각성되는 모습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막이 오르면 전봉준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인간 평등과 인본 사상을 주창한 혁명성으로 지배 계급의 거센 탄압을 받던 동학교도들은 차츰 조직화되어 보은에 수만 명이 집결하여 대집회를 연다. 민중들은 보은의 여세를 몰아 서울까지 공격할 것을 주장하지만 해월 최시형은 대포로 무장한 관군에게 저항하느니보다 훗날을 기약하며 해산을 제안하여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그러나 고부군수 조병갑 등 관리들의 폐정과 착취가 나날이 심해져 가자 백성의 절망과 분노를 절감한 전봉준은 결연한 의지로 일어서 의기의 사발통문을 돌린다. 한편, 봉기에 합류할 것을 결심한 동혁은 아내 복례와 어린아이, 홀아버지를 뒤로 하고 고부 관아 습격 대열에 참가한다. 승리를 거둔 농민들 일부가 백산으로 돌아가 훈련에 임하자 안핵사의 역졸들이 마을을 습격하여 농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지른다. 복례는 며느리인 자신을 구하려다 시아버지마저 역졸들의 칼에 쓰러지자 어린 자식을 이끌고 남편을 찾아 백산으로 향한다.

그즈음, 농민군의 가세에 위협을 느낀 조정에서는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고, 청군의 파병에 명분을 얻은 일본군은 나란히 조선 땅에 들어와 황국 군대의 집강소[농민 직접 통치] 설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농민 집강소 통치 4개월 만에 조선 땅에서 외세들의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에서 일본군이 승리하자 전봉준은 관과 민이 힘을 합쳐 왜적을 물리칠 때임을 깨닫고 각처에 전령을 급파하여 제2차 봉기를 명한다. 그러나 일본은 동학군 진압에 조선 관군을 선봉으로 내세울 계략을 세우고,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은 일본군의 우세한 신무기에 밀려 궤멸되고 만다.

남편을 찾아 천신만고 끝에 우금치에 도착한 복례는 시체더미 사이를 찾아 헤매다가 남편의 주검 앞에서 절망을 잊으려 장도를 꺼내 자결하려 하나, 살아남는 것이 백성의 천명임을 깨닫고 죽은 이들의 천명을 후세에 전할 것을 맹세한다.

2. 공연 상황

「천명-동학」은 동학 농민 혁명 100주년이 되는 1998년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국립중앙국장 대극장에서 초연되었고, 1999년 1월 26일부터 27일까지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2월 9일부터 10일까지는 전라북도 전주의 전북대학교 내 삼성문화회관에서 공연되었다. 2009년 1월 10일에는 전봉준 탄생 153주년 기념행사로 고창문화의 전당에서 고창동학농민기념사업회 주최로 공연되었다.

[판소리 오페라 「내 사랑 진채선」]

「내사랑 진채선」은 고창에서 태어난 최초의 여류 소리꾼 진채선과 판소리 여섯 바탕의 사설을 정리하고 판소리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동리 신재효, 문화와 예술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흥선대원군의 이야기를 독창과 합창이 어우러지는 칸타타 형식으로 판소리 목으로 부를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다. 작곡은 김현민, 작사는 진동규가 맡았고, 심인택이 연출하였다.

1. 구성 및 내용

조선 말기 우리나라 판소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신재효·진채선·흥선대원군의 만남과 사랑, 갈등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제1장 모양성의 꿈, 제2장 경복궁 낙성식, 제3장 동리판소리경연대회, 제4장 선운사 도솔암의 마애석불 등 총 4장으로 구성하였다.

여자가 판소리를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흥선대원군 시대에 신재효를 찾아온 진채선은 소리를 배우겠다고 간청한다. 모두들 외면하는 가운데 진채선의 소리에 대한 집념을 본 신재효진채선을 받아들여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채선을 훌륭한 소리꾼으로 키우고, 마침내 경복궁 낙성식에서 흥선대원군에게 선을 보인다. 진채선의 소리에 감탄한 흥선대원군은 그녀를 자기 곁에 머무르게 하고, 진채선은 고향의 신재효를 그리워한다.

「내사랑 진채선」은 한국적 멜로디를 극대화하고, 판소리의 원판을 삽입하여 한국 음악의 특징을 살려냈으며, 조선 후기와 개항기의 시대적 상황을 곡선으로 형상화한 오페라이다.

2. 공연상황

2006년 12월 20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에서 전주판소리합창단에 의해 초연되었고, 2007년 12월 3일 고창문화의 전당, 2008년 전주전통문화센터가 기획한 ‘2008 문화 사업 기획 공연’의 일환으로 5월 29일과 30일에 한벽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의의와 전망]

지방 자치 단체에서 꾸리는 기념사업의 경우 대체로 하드웨어 쪽으로 조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고창 지역을 배경으로 만든 음악극 「천명-동학」은 문화 콘텐츠 개발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판소리 오페라 「내사랑 진채선」은 판소리의 고장인 고창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최초의 여류 명창을 키워 낸 신재효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또 다른 스토리텔링을 구상하게 하였고, 이를 통해 소설적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동안 고창군 자체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작품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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