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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789
한자 黔丹禪師
영어음역 Geomdanseonsa
영어의미역 Geomdanseonsa Buddhist monk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선운사로 250]지도보기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배옥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승려
성별

[정의]

선운사를 창건한 백제의 승려.

[개설]

검단선사(黔丹禪師)는 백제 위덕왕(威德王) 때 활동했던 선사로, 577년(백제 위덕왕 24) 선운사를 창건하였다.

[활동사항]

검단선사와 관련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단지 백제 위덕왕 때 인적이 끊긴 심산유곡의 동굴에서 홀로 초근목피와 흐르는 계곡 물로 허기를 달래며 수도에 정진하는 마흔 후반의 도승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의 검은 얼굴을 빗대어 검단선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검단선사가 어느 날 동굴 속에서 좌선하여 선정에 들었을 때, 금빛 찬란한 후광 속에 관세음보살이 현몽(現夢)을 하였다. 관세음보살은 눈빛처럼 하얀 옷을 입고 왼손에는 감로수 병인 정병(淨甁)을 들고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푸른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서 자비로운 미소로 이렇게 말했다. “검단선사! 그대에게 말세 중생을 구제하려는 제불 보살의 뜻을 전하오. 말세의 유주무주(有主無主) 영혼을 천도할 수 있는 지장보살의 진신이 상주하는 지장 도량을 만들어 주시오. 인연의 때가 도래하였소.”

검단선사는 관세음보살을 친견(親見)하는 감격스러움에 눈물을 흘리면서 합장하여 지성으로 세 번 예배를 드리고, 합장한 채 무릎을 꿇고 거룩한 관세음보살을 우러르며 물었다. “말세 중생이 의지하고 영혼 천도를 할 지장 도량은 어느 곳이옵니까?” 그러자 관세음보살이 “서해안에 있는 도솔산(兜率山)이오. 그 도솔산에 지장 도량의 절을 지어 중생을 인도하여 주시오.” 하였다.

이에 검단선사는 관세음보살에게,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두 가지 어려운 관문을 극복하고 도솔산을 기필코 지장 도량으로 만들겠다고 서원(誓願)하였다. 그것은 첫째, 현재 도솔산에 있는 사나운 산적 무리를 교화하여 그곳을 떠나게 하고 그 자리에 대웅보전을 세우고, 둘째는 말세의 지장 도량이 들어설 성지 도솔산에 용이 되려고 수행하다 승천하지 못한 사나운 암 이무기 한 마리가 악의를 품고 인간들에게 악행을 자행하니, 그 이무기를 악에서 선으로 교화하여 떠나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검단선사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도솔산을 찾았다. 그곳은 첩첩산중의 울창한 숲으로 관리의 행정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당시 이 무법천지에는 장호(張虎)와 장표(張豹)라는 형제가 산적의 무리를 거느리고 온갖 행패를 다 부리고 마을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호와 장표도 지금의 도솔암 근처에는 두려워서 얼씬하지도 못했다. 그곳에 기둥 굵기의 못된 암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이 무서운 이무기의 소문은 공포 자체로 세상에 전해졌다. 어느 달 밝은 밤, 술에 얼근히 취한 장호와 장표는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고 도끼와 창을 들고 이무기의 구역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하여 장호·장표 두 형제는 마침내 어느 바위 위에 고운 옷을 입은 3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자가 홀로 바위 위에 앉아서 달을 우러르며 혼자 흐느끼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장호·장표 형제는 이무기에게 대드는 순간 공이 튀듯이 바위 밑으로 떨어져 온몸에 상처를 입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달아났다. 이때 검단선사가 두 형제를 찾아가서 따뜻이 대하면서 설법을 하기 시작했다. 산적 형제는 점점 검단선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러나 자기들이 터를 이루고 있는 자리에 사찰을 짓겠다는 말에는 눈을 부라리고, 도끼와 창을 무섭게 휘둘러 보이면서 떠나갔다.

그 무렵, 서해안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잔잔한 서해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뉘엿뉘엿 수평선 너머로 기울고 있는 어느 날, 석양 갯벌을 파헤치며 조개를 줍고 있는 아낙네들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배 같은 물체를 발견하고 가까이 접근해 갔다. 그것은 기이하게도 생전 처음 보는 돌[石]로 만든 배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배 가까이 가면 배는 사람들을 피하듯 바다로 물러가고,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면 다시 해변 가까이 다가왔다.

이 소문을 들은 산적들과 동굴 속의 검단선사가 돌배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돌배는 여전히 사람을 기피하듯 피하여 물 위에 떠 있을 뿐이었다. 괴이한 돌배를 본 검단선사는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간절히 부르면서 돌배를 향해 갯벌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람들을 피한다는 돌배가 검단선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배에는 사람은 없고, 단정한 모습의 금빛 지장보살상이 실려 있을 뿐이었다. 검단선사는 지장상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좌정하여 관세음보살에게 지장상이 온 뜻을 알기 위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검단선사의 눈앞에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이 홀연히 나타나서 “검단선사는 들으시오. 돌배의 지장보살상은 말세의 지장 도량을 위해 서천 서역국으로부터 모셔 온 것이오. 하루 속히 도솔산에 봉안하도록 하시오.” 하였다.

이에 검단선사는 소리쳐서 산적들과 갯마을 사람들을 불러 힘을 합쳐 지장보살상을 육지에 옮겼다. 지장보살상을 옮기자 돌배는 사명을 다한 듯 스스로 물러서더니 서해로 사라졌다. 이 일 이후 산적 형제는 검단선사의 신통력에 도끼와 창을 버리고, 그 동안의 무례를 참회하면서 사죄하고 재생의 길을 물었다. 검단선사는 껄껄 웃으며, “중생이 마음 한 번 바꾸면 부처도 되는 법이라네. 여러분이 양민으로 일하며 살 수 있는 터전을 보아 두었지. 내가 여러분에게 호구지책으로 소금 굽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네.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게. 여러분이 지은 죄는 인과의 업보가 되어 세세생생 피할 수 없는 것이라네. 과거를 뉘우치고 소금 굽는 것을 생업으로 삼아 여생을 살면서 세상에 착한 일로 보은하게.”라고 하였다.

마침내 검단선사는 산적 모두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삼인골에서 고창군 심원면의 바닷가 마을로 집단 이주시키고 소금 굽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산적들은 마침내 소금 굽는 양민이 되었고, 그때 양민이 된 사람들은 검단선사의 자비의 은혜를 기리는 마음에서 마을 이름을 검단리(黔丹里)라고 명명하였다. 그들은 해마다 소금을 거두는 철이면 검단선사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선운사에 무상 보시를 하였고, 그 불문율은 수백 년간 지켜져 전해 왔다.

검단선사는 두 번째 관문인 지금의 도솔암 근처에 살고 있는 이무기를 찾아 나섰다. 이무기는 무서운 독아(毒牙)로 검단선사를 한 입에 삼키려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검단선사는 바위에 정좌한 뒤 합장을 하고서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이 담긴 “옴 데세데야 도미니 도데 삿다야 훔바탁” 하는 보검수진언을 큰소리로 외웠다.

진언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우주를 지키는 팔만사천의 신장을 지휘하는 수신장(首神將)이요 보살인 동진보살이, 금빛 갑옷을 입고 보검을 들고 무수한 신장들과 함께 나타났다. 신장들은 동진보살의 지휘로 순식간에 이무기를 겹겹이 포위하였다. 이무기의 주술은 허무하게 깨져 버렸다. 이무기는 눈물을 흘리면서 검단선사에게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암 이무기는 검단선사의 머리 위를 세 번 날아돌며 도솔산이 흔들리도록 소리쳐 경의를 표하고, 지금의 고창 방장산으로 날아갔다. 암 이무기가 도솔산을 떠날 때 도솔산 바위에 굴을 뚫었는데, 그 후 사람들이 그곳을 용문굴(龍門窟)이라고 부른다. 용문굴은 지금의 도솔암 위쪽 바위에 있다.

마침내 검단선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산적이 살던 곳에 선운사를 창건하였고, 이무기가 조화를 부리며 살던 도솔암 인연의 바위 위에 지장보살의 진신 상주를 의미하는 지장보살상을 모셨다. 드디어 도솔산에 말세 중생의 영혼을 천도하는 지장 성지가 열린 것이다.

첫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 오전, 검단선사는 자신의 선실에서 수명이 다했음을 깨닫고, 그를 따르던 사부 대중을 불러 아래와 같이 부촉(咐囑)하였다. “나의 육신은 제행무상에 의해 멸하지만, 영혼은 도솔산의 산신이 되어 영원히 말세 고해 중생의 지장 도량을 지키겠다. 도솔산의 승려들이여, 뼈를 깎는 수행 정진으로 정각을 이루고, 오직 고해 중생을 위해 헌신할 때 말세 불법은 도솔산에서 일어난다. 도솔산의 승려들이여, 제행은 무상하니 방일하지 말고 촌음을 아끼어 수행 정진하고, 중생을 위해 자비를 실천하라!” 그러고는 자신을 애도하는 열반종 소리를 들으면서 호흡을 끊어 대적멸의 세계로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선운사는 3,000여 명의 승려가 거처할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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