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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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弘宇 |
영어음역 | Gim Hongu |
이칭/별칭 | 백용(伯容),백곡(白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노동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희 |
성격 | 의병|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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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노동리 |
성별 | 남 |
생년 | 1539년 |
몰년 | 1598년 |
본관 | 광산 |
대표관직 | 예조정랑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백용(伯容), 호는 백곡(白谷). 증조할아버지는 김명원(金命元)이고, 할아버지는 김기서(金麒瑞)이며, 아버지는 생원 김경희(金景熹)이다.
[활동상황]
김홍우(金弘宇)는 일찍이 윤두수(尹斗壽)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행(文行)으로 이름이 높았다. 1593년(선조 26) 전주에서 치러진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경수(金景壽), 이응종(李應鍾), 김제민(金齊閔) 등과 장성 남문 밖에 의병청을 설치하고 의병과 의곡을 모았다. 이윽고 모은 의곡 500석은 기효증(奇孝曾)으로 하여금 선조가 있는 행재소로 보내고, 의병 800명은 김극후(金克厚)로 하여금 진주성으로 보내도록 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명나라 장군 양호(楊鎬)를 좇아 경기도 소사(素沙)에서 왜적과 싸워 크게 이겼다. 이후 병조와 예조의 정랑을 거쳐, 1598년(선조 31) 남원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에 있는 오산사(鰲山祠)에 배향되었으며,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