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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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山書堂 |
영어공식명칭 | Dosan Village School |
영어음역 | Dosan Seodang |
영어의미역 | Dosan Village School |
이칭/별칭 | 만수당(晩睡堂),섬뜸서당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136[도산1길 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경미 |
성격 | 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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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지붕의 익공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정면칸수 | 4칸 |
측면칸수 | 4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136[도산1길 4] |
소유자 | 김경식 |
문화재 지정번호 |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2호 |
문화재 지정일 | 2004년 6월 8일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교육 기관.
[개설]
도산서당은 인근 학동들을 위한 강당으로 쓰였으며, 도산초등학교 개교 때 교사를 구하기 전까지 1학기 동안 수업을 하던 곳이었다. 따라서 서당 교육과 근대 교육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도산서당은 당대 명사들의 교우의 장이었다. 따라서 교우 관계를 보여주는 많은 시문과 송사 기우만이 쓴 「만수당기(晩睡堂記)」가 만수당 안에 걸려 있다.
[위치]
도산서당 앞에는 넓은 논이 펼쳐져 있고, 서당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다. 도산서당은 외삼문을 통해 들어가면 만수당 외에 회천정사, 정자, 연못 등이 자리하고 있다.
[변천]
진사 오도상이 17세기 후반에 자신의 자제와 인근 아이들을 교육하던 곳이었으며, 예조참판을 역임한 오도상의 사위 정택신(鄭宅臣)이 물려받아 집과 함께 관리하였으나 1862년에 만수 김영철이 매수하였다. 김영철이 옛 서당을 헐고 새 건물을 짓기를 원하자 김영철의 장손인 회천 김재종이 작은아버지 김순묵의 조언을 받아 1907년에 새롭게 강당을 건립하였고, 김영철의 호를 따 ‘만수당’이라 편액하였다.
[형태]
장대석 두벌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았고,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정면 4칸, 측면 4칸의 익공계 팔작집이다. 어칸에는 강학을 위한 대청을 두었고, 좌우칸에는 방을 들였으며, 앞뒤 퇴집 구조로 앞퇴와 뒤퇴에는 전부 마루를 깔았고, 좌우에도 쪽마루를 설치하여 회랑처럼 4면을 연결하였다.
정면 각각의 기둥에 주련을 달았으며, 홑처마 익공계 팔작지붕 집이다. 정면 어칸에 해당되는 2칸은 대청인데, 4분합문을 달았고 좌우 협칸에는 2분합문을 달았다. 건물의 좌우에 면하는 앞 퇴칸의 마루 끝은 궁판을 달아 쪽마루와 구분하였고, 건물의 좌우 측면은 앞뒤 퇴칸을 제외한 2칸이 방에 해당되는데, 2분합문을 각각의 칸에 달았다. 배면의 좌우 칸에는 온돌방을 두었는데, 불을 지피기 위해 어칸 마루보다 높게 설치되었다. 대청은 연등천장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현황]
도산서당의 동쪽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회천정사가 배치되어 있고, 뒤쪽에는 연지를 파고 후원을 꾸몄으며, 연지 옆에는 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다.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지만, 건물 왼쪽 쪽마루에 훼손이 있고, 기단부가 밀려나고 있다. 만수당의 편액은 전라감사 김성근의 필체이다.
[의의와 평가]
도산리에 자리 잡고 있어 도산서당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일명 섬뜸서당이라 불렸으며, 일찍부터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만수 김영철은 송사 기우만이 1895년 명성황후 시해 때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격문을 각 군에 발송할 때 고창 군책에 추대되었으며, 장손인 김재종과 현손인 김정회는 후진 양성과 근대 교육 기관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