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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61
한자 沙津浦
영어음역 Sajinpo
영어의미역 Sajinpo Port
이칭/별칭 사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포구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 있는 포구.

[개설]

사진포(沙津浦)흥덕 북쪽, 부안으로 향하는 반도 안에 자리 잡은 포구이다. 예부터 주위의 들이 넓어 물산이 모여들고 해산물이 풍성하게 잡혀서 일찍이 해창이 설치되었다. 이 때문에 수확기가 되면 왜구가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았다. 1397년(태조 6) 삼도수군절제사와 병조판서를 지낸 뒤 고창에 은거하던 김빈길(金贇吉)사진포에 왜구가 쳐들어오자 병사를 일으켜 맞서 싸워 수천 명을 참살하고 순절(殉節)하니, 조정에서 우의정을 추증하고 양혜(襄惠)라는 시호를 내렸다.

1704년(숙종 30) 전라감사 민진원(閔鎭遠)이 글을 올려, “흥양현(興陽縣) 사진포가 왕자방(王子房)에 절수(折受)되었는데, 진상하는 물종(物種)을 달리 판출해 낼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차인(差人)이 왕래하면서 침학하므로, 포촌(浦村)이 거의 비게 되었으니, 사진포를 본현(本縣)에 환속시켜 주소서.”라고 하였다.

묘당(廟堂)에서 복계(覆啓)하여 윤허할 것을 청하니, 왕이 판부(判付)를 내리기를, “왕자방에 절수한 곳에 대해 이를 파기해 줄 것을 청하는 장문(狀聞)이 전후 잇따라서 거의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매우 온편하지 못하다. 변통시키는 방도가 없을 수 없으니, 어느 아문의 둔전임을 논할 것 없이 합당한 곳 두어 곳을 해궁(該宮)으로 하여금 자청하게 한 뒤에 획급(劃給)하되, 본 아문에서는 전처럼 방색(防塞)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변천]

전라도의 조운과 조창은 덕성창과 법성포창이 중심지였는데, 덕성창에는 함열·용안·전주·임피·김제·금구·익산·만경·여산·금산·진산·태인·옥구·고산·용담 지역에서 거둬들인 세곡을 저장하였고, 법성포창에는 영광·흥덕·부안·함평·무장·장성·정읍·고부·고창·옥과·담양·곡성·창평·순창 등지에서 거둬들인 세곡을 저장하였다.

1788년(정조 12) 전라감사가 중앙에 그렇게 할 것을 청하자 비변사가 왕에게 아뢰기를, “호남 도신의 장청(狀請)에 따라 장성과 고창의 대동미(大同米)를 법성포창으로 봉납(捧納)하지 말고 흥덕 사진포로 봉납하게 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이에 따라 무장흥덕 지방의 세곡을 멀리 떨어진 영광 법성포창으로 운반하지 않고 흥덕사진포로 옮겨 보관하였다가 군산으로 운송하여 경제적으로 절약할 수 있었다.

사진포는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서 “흥덕현의 서쪽 6리에 있다.”라고 한 곳으로 일찍이 흥덕현의 중심 항이 되어 상선들이 정박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흥덕현의 해창이 설치되어 한때 고창·흥덕 지역의 전세·균세·대동미를 수납하여 한양의 경창으로 운반하는 거점이 되었다.

[현황]

사진포는 지금의 흥덕면 사포리 북단에 있는 포구로 조선 시대에 물산이 모이는 곳이었고 왜구의 침입이 잦은 곳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옛 모습이 사라지고 한산한 포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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