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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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神道碑 |
영어음역 | Sindobi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봉숙 |
신도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349-3 이약동 신도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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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양각2리 산111 이약동 신도비2 |
신도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덕전3리 799 박이룡 신도비 |
신도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산49 조위 신도비 |
[정의]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는 왕이나 종2품 이상의 벼슬을 한 인물의 무덤 남동쪽 큰길가에 세운 석비.
[개설]
신도비는 왕 또는 고관의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을 말한다. 신도(神道)라는 말은 사자(死者)의 묘로(墓路), 즉 신령(神靈)의 길을 의미한다. 김천시 『문화유적분포지도』를 살펴보면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신도비는 이약동 신도비1, 이약동 신도비2, 박이룡 신도비, 조위 신도비, 배흥립 신도비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최선문 신도비[구성면 양각리], 좌의정 유후조 신도비[개령면 동부리], 경상도 관찰사 장승원 신도비[대항면 운수리], 효강공 조신 신도비[봉산면 인의리], 연성부원군 이말정 신도비[구성면 상원리] 등이 있다.
[현황]
김천 지역의 신도비는 『문화유적분포지도』에서 조사된 신도비 위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이약동 신도비1[김천시 양천동 349-3]
이약동(李約東)[1416~1493]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춘보(春甫), 호는 노촌(老村)이다. 그는 40여 년 간 청렴결백으로 일관하여 사후에 청백리로 뽑혔으며, 75세에 영면하였다. 양천동 하로에는 신도비와 그를 기리는 노촌당(老村堂)이 있다. 석좌와 옥개형 지붕을 가진 비로, 전면에 ‘지중추부사증시평정공노촌이선생신도비(知中樞府事贈謚平靜公老村李先生神道碑)’라고 새겨져 있다.
2. 이약동 신도비2[김천시 구성면 양각2리 산111]
노촌 이약동은 40여 년 간 청렴결백으로 일관하여 사후에 청백리로 뽑혔으며, 75세에 영면하였다. 양각초등학교를 지나 먹방못에서 100m 지점 두 갈래 길에서 우측 산으로 150m 지점에 2기의 비가 있는데, 그 중 우측에 있는 비가 노촌이선생신도비이다. 비의 크기는 폭 75㎝, 높이 320㎝, 두께 34㎝이다. 옥개 문양이 쌍용 문양이다. 전면에 ‘평정이공신도비(平靜李公神道碑)’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다. 건립 연대는 ‘숭정갑신후이계묘십이월일(崇禎甲申後二癸卯十二月日)[1723]’로 되어 있다. 1993년에 재건되었다.
박이룡(朴以龍)[1533~1593]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들을 모집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왜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9,000여 명의 왜적을 물리쳤다. 비의 크기는 폭 68㎝, 높이 196㎝, 두께 27㎝이다. 옥개형 지붕을 가진 비이다. 비신(碑身)의 전면 최상단에 홈을 파서 ‘학촌박이룡선생신도비(鶴村朴以龍先生神道碑)’라는 비명이 가로로 새겨져 있다. 건립 연대는 ‘선생기몰후삼백이십삼년정사사월일립(先生旣歿後三百二十三年丁巳四月日立)[1917]’으로 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졌다. 현재 비는 보호각 속에 있다.
조위(曺偉)[1454~1503]는 창녕 조씨로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이다. 매형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비석은 현재 조위 선생 생가 유허지에 있다. 비석의 옥개는 사각형이며, 쌍용의 문양이 있다. 농대의 머리는 해태이며, 몸통은 거북이다. 비의 크기는 폭 67.5㎝, 높이 301㎝, 두께 20.5㎝이다. 이 비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다. 비의 전면에 ‘매계조선생신도비(梅溪曺先生神道碑)’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다. ‘자헌대부의정부좌참찬겸세자우빈객이재찬 십사세손병휘근서 상장군탄삼월일(資憲大夫議政府左參贊兼世子右賓客李縡撰 十四世孫秉徽謹書 上章涒灘三月日)’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배흥립(裵興立)[1546~1608]은 본관이 성산(星山)으로 자는 백기(伯起),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배인범(裵仁範)이다. 서체는 해서체이다. 내용은 배흥립의 선조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여 배흥립의 효성스러운 성품에 관련된 일화를 기술하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함께 분투하여 세운 공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비문 후반부는 배흥립의 후손에 대한 내용이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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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3 |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 1) 사후 청백리로 등록되었으며, 75세의 일기로 영면하였다 ->사후에 청백리로 뽑혔으며, 75세에 영면하였다 2) 지중추부사증익평정공노촌이선생신도비(知中樞府事贈謚平靜公老村李先生神道碑)’라고 새겨져 있다 ->지중추부사증시평정공노촌이선생신도비(知中樞府事贈謚平靜公老村李先生神道碑)’라고 새겨져 있다 3) 자혜대부의정부좌참찬겸세자우빈객이재찬 십사세손병휘근서 상장군탄삼월일(資惠大夫議政府左參贊兼世子右賓客李縡撰 十四世孫秉徽謹書 上章涒灘三月日) ->자헌대부의정부좌참찬겸세자우빈객이재찬 십사세손병휘근서 상장군탄삼월일(資憲大夫議政府左參贊兼世子右賓客李縡撰 十四世孫秉徽謹書 上章涒灘三月日) |
2011.08.03 |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 평정공이공신도비(平靜公李公神道碑) ->평정이공신도비(平靜李公神道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