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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908
한자 李應洙
영어음역 Yi Eungs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호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879년 10월 7일연표보기
활동 1919년 3월 1일연표보기
활동 1920년 3월연표보기
활동 1922년 11월연표보기
몰년 1950년연표보기
추모 1990년연표보기
출생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용암리 307
거주|이주지 충청북도 영동
활동지 경상북도 김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조선독립후원의용단 결성 및 경북총무국장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응수(李應洙)는 1879년 10월 7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용암리 307번지에서 일제 침략에 상소 운동으로 맞서다 감옥에서 순국한 성석(醒石) 이건석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국권을 찾지 못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하고자 이응수는 3·1운동 때는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20년 3월 감옥에서 나온 이응수는 문경 지역에서 활동했던 의병장 신태식, 영주의 김찬규 등과 함께 김천군 구성면의 나곡산재(羅谷山齋)에 모여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을 결성하였다.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은 3·1운동 이후 성립된 상해임시정부 등 해외 독립 운동 단체에 대한 후원을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로서, 이응수는 경북총무국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응수신태식, 김찬규, 김규헌 등과 함께 경상북도의 대구·김천·예천·안동과 경상남도 창녕 등지의 부호들을 상대로 조직원을 파견하였다. 조직원들은 김찬규가 입수한 상해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군자금 모금 위임장을 제시하고, 이를 거절할 경우 상해임시정부에서 발행한 사형 선고서 등을 보내 위협하는 방법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여 다섯 차례에 걸쳐 상해임시정부로 군자금을 보냈다. 이후 지속적인 군자금 조달을 위해 상주와 김천에 철공소를 차릴 목적으로 소요 자금을 마련하고자 안동의 이대기에게 문서를 보냈다가, 1922년 11월 이것이 단서가 되어 충청북도 영동군까지 추격해 온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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