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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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冶城宋氏 |
영어음역 | Yaseong Songssi |
영어의미역 | Yaseong Song Clan |
이칭/별칭 | 야로 송씨(冶爐宋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부곡동 |
집필자 | 송영호 |
입향 | 192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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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
입향지 | 경상북도 김천시 부곡동 원골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부곡동 원골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찰방마을 |
성씨 시조 | 송맹영 |
입향 시조 | 송준필 |
[정의]
송맹영(宋孟英)을 시조로 하고 송준필(宋浚弼)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야성은 야로의 별호인데 야로는 경상남도 합천군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 때 적화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야로로 고쳤다. 시조인 송맹영은 고려 목종 때 사람으로 간의대부와 총부의랑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야성군에 봉해졌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야성으로 하여 경상도 야로현에 정착해 세거하다가 송맹영의 10세손인 송구(宋構)가 경기감사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고, 경상북도 성주군 송천으로 이거하고 14세에 이르러 직장공파·상호군공파·대호군공파·현령공파·선전공파 등 크게 5개 파로로 갈라졌다.
시조로부터 9세까지 분묘(墳墓)가 실전되어 1974년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에 9세까지의 제청(祭廳)과 망묘비(望墓碑)를 세워 구정재(九政齋)라 이름하고 매년 한식날에 세제를 지낸다. 김천 지역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조 송맹영의 아들 송창(宋昌)이 고려에서 신호위대장군을 지냈고 손자 송우(宋瑀)는 소부소감을 역임하여 상서호부에 오른 아들 송인서와 함께 가세를 일으켰다. 송구의 아들 송길창(宋吉昌)은 개성부윤을 지내고 야성군에 봉군되어 크게 명성을 떨쳤다.
송희규(宋希奎)는 송방현(宋邦賢)의 아들로 흥해군수와 장령, 상주목사 등을 지냈으며 후에 윤원형(尹元衡)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고산현에서 5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한말에 와서는 송천흠(宋天欽)이 용양위부호군과 상주목사를 지낼 때 선정을 베풀어 관민의 칭송을 받았다.
[입향 경위]
야성송씨의 입향조인 송준필이 성주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고 파리장서에 서명하는 등 활발한 독립 운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렀고, 말년에 김천으로 이거해 교육에 힘써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이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1923년 은거지를 김천시 황악산으로 정하여 가다가 골이 깊은 고성산 자락인 부곡동 원골마을로 은거지로 바꾸어 정착했다.
[현황]
김천시 부곡동 원골마을과 남산동 찰방마을 일대에 송준필의 직계 후손들이 살았으나, 2010년 현재 대부분 타지로 떠나고 원골마을과 찰방마을에 20가구가 정도 살고 있다. 입향조인 송준필을 비롯한 후손 11명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상하여, 독립 유공 가문으로 이름이 높다.
[관련 유적]
김천 지역의 야성송씨 관련 유적은 김천시 부곡동 원골 음지마을에 있는 원계서원(遠溪書院)이다. 원계서원은 송준필이 1932년 세운 원계서당 터에 1986년 송준필을 제향하기 위해 숭덕사(崇德祠)라는 이름으로 사당을 지었다가 1971년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아 강당을 세우고 원계서원이라 현액했다. 숭덕사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