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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717
한자 金一觀
영어음역 Gim Ilkwan
이칭/별칭 덕삼,난계,난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신천리 난곡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종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비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신천리 난곡
성별
생년 1684년연표보기
몰년 1722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대표관직 사헌부집의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삼(德三), 호는 난계(蘭溪), 자호는 난곡(蘭谷). 음성의 시거조(始居祖) 김덕항(金德恒)의 증손이고, 김기제(金起悌)의 손자이며, 삼화부사 김각(金珏)의 둘째아들이다. 부인은 함양박씨로 조부는 현감 박내창(朴乃昌)이며, 아버지는 박상채(朴尙采)이다. 아들은 김중화(金重華)이다.

[활동사항]

김일관(金一觀)[1684~1722]은 7세에 글을 읽는 신동이었고, 한성 정동에서 김창집(金昌集), 이이명(李頥命)과 수학하고 교유하며 지냈다. 1721년(경종 원년) 12월 신축사화가 일어나 김창집 등 노론이 실각하자,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신천리 난곡에 와서 은거하였다.

1722년(경종 2) 신임사화가 일어나자 연좌되어 의금부에서 4차례 고문을 받다가 동년 5월 17일에 향년 39세로 별세하였다. 죄명은 ‘창문 틈으로 이기지(李器之)가 심성행을 힐책하는 밀어(密語)를 들었다’는 것이고, 내용은 ‘역적모의이므로 무고일 수 없다’는 것이다. 가노(家奴)가 시체를 수습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김일관의 죽음을 듣고 부인은 자결하였다 한다.

[상훈과 추모]

1862년(철종 13)에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증직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신천리 큰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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